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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5 - 역사는 ‘우연’이 아닌 ‘필연’의 연속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고 ‘내가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싱가포르의 영자 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보도되었다.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는 16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으로 1909년 12월2일 5면에 이 기사가 있다고 한다. 안중근의사는 이토 처단 직후 “이토는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를 어지럽혔기 때문에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사살했다. 적장을 죽인 것이므로 국제공법에 따른 포로로 대우하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안중근의사는 재판에 앞서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관동도독부 미조부치 타카오(溝淵孝雄)에게 신문을 받을 때부터 이토를 저격한 15개의 이유를 밝혔으며 모든 조사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이같은 입장을 강조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처단한 15가지 이유는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1905년 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셋째.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넷째,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다섯째, 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째,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여덟째,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아홉째,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열 번째, (제일은행) 은행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열한번째, 한국이 300만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열두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열세번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열네번째,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이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대동공보사에서 전해들은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자원했다. 10월 26일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하얼빈에 도착했다. 안중근은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후, 러시아어로 “코레야 우라!(Корея! Ура!)” 라고 크게 외쳤다. 이 외침은 한국 만세라는 뜻이었다. 그 날 이후 36년 만인 1945년에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


김재규는 1926년 3월 6일에 경상북도 구미에서 아버지 김형철과 어머니 권유금 사이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정희의 고향 후배이자 육사 2기 동기이기도 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일시 감금되었으나 박정희의 명령으로 석방된 이후에 그의 수하가 되어 적극 협조하게 되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1961년 호남비료 사장, 1963년 6사단장이 되었다. 6사단장 시절이던 6.3사태 당시 계엄군을 지휘하여 박정희에게 더 큰 신임을 받게 된다. 1973년 유신정우회 소속의 제9대 국회의원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고 동년 중앙정보부 차장, 1974년 건설부 장관을 역임하다가 1976년 12월 4일부로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된 이후 대통령경호실장인 차지철과 꾸준히 권력 암투를 벌이며 대립해왔다. 그 권력다툼에서 김재규가 계속 밀리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불안한 정국 사태를 지켜보면서, 유신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시국 수습책을 둘러싸고 강경파인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차지철과 그를 옹호하는 박정희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가지게 되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에 서울 궁정동에 위치한 중앙정보부 안전가옥에서 박정희와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 및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과의 식사 도중 박정희와 차지철을 권총으로 사살하며 10.26 사태를 일으켰다.


위의 두 사건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공교롭게도 사건 발생 일이 같을 뿐이다. 1909년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적의 장수를 처단한 날이고, 1979년 10월 26일은 자신의 부하로부터 대통령이 안가(무슨 일이 하던 곳인지 이제는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에서 저격당해 죽은 날이다. 또한 이토 저격 36년 후에 해방된 날인데, 박정희 저격사건이 벌어진 지 36년째 되는 해가 2015년 올해다(‘김빙삼’이란 필명의 인터넷 논객이 올린 트윗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독립을 위한 저격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사태가 벌어진 날이 수년이 지났는데 공교롭게도 근자에 친일 매국노들의 후손들이 다시 판을 치면서 역사쿠데타를 획책하고 있다. 부끄러운 가족사를 덮겠다고 역사를 고치겠다고 한다(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불가함을 외치는데도 강행하는 데는 그 저의를 의심케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는 데는 꼭 이면의 숨은 뜻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두 눈 부릅뜨고  깨어서 지켜봐야 할 일이다. 잘못된 전철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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