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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5 - 전원 오프(OFF)


자고로 접속의 시대다. 모두의 손에 거대한 세상과 소통하는 창문을 들고 산다. 전원을 켜면 온라인 상의 자신의 집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정보를 담은 포탈과 타인의 집 그리고 세상 모든 정보를 다 담을 것 같은 검색 사이트가 있다. 누군가가 그리워지면 그네 집에 빼꼼히 들어가서 올려진 사진들을 본다. 그리고 가상의 전쟁과 게임들을 하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재잘 거리기도 하다가 또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주장과 글과 그림에 나의 상식이 무너지기도 하고 선동 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퍼다 나른다. 그렇게 쌓여간 이야기들은 어느새 옷장의 헌 옷보다 더 깊숙히 들어간다. 그러가다고 가끔은 과거의 사진들이 불쑥 불쑥 올라와서 몇 년 지나지 않은 그 날들이 까마득한 옛날 처럼 히죽이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들의 패턴과 활용 이유들은 다양하지만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부정적인 말을 쓰게 될 정도로 그 폐해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가장 밀접하게 다가오는 변화 가운데는 감각의 변화다. 예쁜 그림, 명언, 감동적인 이야기, 짧은 영상들 하나 누군가 올려줄 때면 마음에 감동과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가슴이 따뜻해 지는 일이 잦았다. 그런 이들을 매일 접하면서 누군가에게 그런 글과 그림을 전하는 일을 사명처럼 알고 전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민감한 감각들이 서서이 둔감해져 간다. 그렇게 된 데는 누군가의 이야기의 진위가 거짓으로 판명되거나 딜레마에 빠진 경우를 경험하는 것 때문이다. 카더라 통신의 정보들이 무책임하게 전달될 때 애꿎은 이들이 피해를 보고 후에 진상이 밝혀진다 해도 이미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멀고 피해자는 고스란히 매장되는 일들을 접할 때도 그렇고, 진실에서 먼 이야기인데도 수많은 이들이 동조하여 여론이 형성될 때는 어찌할 수 없는 맘이 극단의 파국으로 치닫는 이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신뢰가 무너져 간다.


그래서 이젠 웬만한 이야기나 그림과 영상에도 이젠 쉬이 동요하지 않거나 감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게 되고 짧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보와 뉴스를 탐한다. 매일 변하는 세상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가오긴 하지만 어느새 둔감한 감각은 무감각으로 치닫는다. 그런 무감각은 무관심으로까지 이어져서 접속은 하지만 접촉은 거부하고 알긴 알지만 행동하지 않고 놀라긴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과 이야기로 치부하여 무심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미디어에 노출된 많은 이들이 두려워해야 하고 경계해야 할 부분임엔 틀림없다.


‘속이지 않고 산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로서 미칠 수 없는 기준을 세우고 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협, 핑계, 상호 조정의 그늘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과연 가면을 쓰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 허무함, 이기심에 절은 모습을 보아낼 수 있겠는가?’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의 말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참 삶의 길을 조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거짓과 부정직함들을 늘상 접하면서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느새 둔감해지고 무감각해져 간다. 그래서 분명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고, 상식이 무너지고 부정한 것들이 판을 치는데도 우리는 눈을 부릅뜨지 않고 짐짓 모른체하거나 시선을 돌려버린다.


‘악이 승리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이라고 에드먼드 버크는 말한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거짓을 가리려 할 때 선한 이들이 그 장막을 들춰서 그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의를 폭로하거나, 정의를 요구하는 일등 위험이 예기되는 일은 하지 않고 나와 상관 있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우리들의 옹졸함과 둔감함과 무감각함들이 쌓여갈 수록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존엄과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게 된다. 이런 옹졸하고 비겁한 모습에서 필자도 그리 멀지 않다.


정의와 진실과 상식이 무너지고 거짓과 부정과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뭔가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런 돈의 전능함이라는 허구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순간, 행복을 구성하는 다른 방법을 알아차리는 순간, 자유와 진리에의 열정이 회복되는 순간, 우리는 부정이 휘몰아가는 맹목적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이웃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진정한 접촉이 시작되고 함께 아파하고 곰감하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는 참 삶의 길이 열린다. 주위를 둘러보라. 내가 지금 어디에 휩쓸려 중독되어 흘러가고 있는지 보일 것이다. 그런 잠시 멈춤, 전원 오프, 쉼표가 있어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웃는사람 라종렬

-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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