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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3 - 자식 농사(農事)


“다 정리하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는 일들이 팍팍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가끔 하거나 듣는 말이다. 농사를 모르는 이들은 막연하게 솔깃해져서 귀농을 동경하지만, 조금이라도 농사를 아는 이들은 대번에 반색한다. “농사나?” 어디 농사 짓는 일이 쉬운 줄 아느냐고, 아무나 농사 짓는 것 아니라고, 그런 정신으론 턱도 없다고 말한다. 아예 농사를 모르고 귀농해서 처음부터 개척해 나가 소위 말하는 성공하는 경우들도 없진 않다. 하지만 보편적이진 않다.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뼈저린 후회를 경험한다. 직접 농사일에 관여하거나 어깨 너머로 부모의 농사를 보거나 배웠던 이들은 잘되는 경우들보다 농사 현실의 어려움들이 훨씬 더 크기에 쉽게 생각진 않는다. 하지만 실패를 너무 두려워 아예 시도도 않거나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진 않는다.


농사는 보통 가업을 잇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특수작물 재배나 특이한 농법 등을 개발하는 이들이 많은데 예전에는 농사 하면 논 농사, 밭 농사를 보편적으로 생각한다. 또 대량 재배나 생산 그리고 축산의 경우까지 생각하면 어업을 제외 하고서라도 농사의 범위는 방대해진다. 자식농사라 함은 이런 대량 생산이나 재배 그리고 어업에 대한 말보다는 예전의 일반적인 농사를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생각해보면 소농으로 생각하던 자식농사와 대량 생산(?)을 하는 자식농사는 분명 차이가 있다.


무엇을 생각하든 농사일에는 변하지 않는 철칙들이 있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 철칙 또한 변해가는 것도 있겠지만 오래도록 이어오며 세워진 전통에서 그리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뿌린 만큼 거둔다”라는 말이다. 논과 밭에 어떤 작물을 키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부모의 가업을 이어가는 일만 생각할 수 없다. 자급자족한다 하더라도 무엇을 얼마나 심어야 하는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미 낳은 자식의 선천적인 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가르치고 양육해 가는 일은 심고 뿌리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먹이고 재우는 일 뿐 아니라 부모의 말로도 심고 행동거지로도 뿌리게 된다.


자식 땅에 부모가 심고 뿌린 것은 어떤 형태로든 싹을 틔우는 법이기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좋은 것 심어주고 싶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뿌려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좋다고 이것 저것  많이 심고 뿌리더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뿌린 종자가 잘못되는 경우도 있고 너무 많이 심어서 탈이 나는 경우도 있고, 뿌린 것이 너무 적어서 부족한 경우도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면서 자란다고 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로 이미 자식에게는 많은 것들이 심고 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자식 농사에 관심이 있다면 부모는 언행심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농사일에 문제가 되는 경우 중엔 단연 잡초와 병,해충들과의 싸움이 크다. 논과 밭에 심은 것만 자라면 좋겠지만 늘상 어디서 온 것인지 잡초가 자라고 병도 생기고 해충의 피해도 입는다. 부모에게서도 잘못된 씨앗이 뿌려진 경우도 있겠고, 밖에서 보고 들으며 심어진 것들도 있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먹은 불량 식품으로 병이 나고 탈이 나는 경우들도 있다 하겠다. 부모의 특별한 손길이 필요한 때다. 작물 스스로 그런 병해충을 이길 수 있을 때까지는 잡초도 제거하고 병해충도 이길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다. 초기에 발견하고 미리미리 예방한다 하더라도 발생하는 것이기에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그래서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느냐에 따라서 자생력과 극복의 수준이 결정된다. 너무 손을 많이 타면 자생력이 떨어지고 너무 무신경하면 아예 제대로 크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들도 생기기에 늘상 관심을 갖고 적절한 조치와 처방을 병행해 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농사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봄에 뿌리고 가을에 거두든지 뿌리고 나서 거둘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 하거나 느긋해 하면 농사일을 망친다. 욕심 부려도 안될 일이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잘 자라도록 적절한 거름과 햇빛과 물을 공급받고 온도와 바람과 여타의 조건들을 충분하고 적절하게 채워야 제대로 결실하는 것이다. 조기 교육한다고 욕심 부리고, 빨리 많이 자라라고 학원 보내며 혹사 시키다가는 전혀 엉뚱한 결과를 맞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에겐 이 조급함과 욕심이 많은 것을 잃고 망치게 한다.


그렇게 오랜 수고 끝에 수확 철이 되면 생각처럼 잘 자라주거나, 때로 뜻하지 않게 잘 자란 경우들도 있지만 정성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못자란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잘나고 못나도 애지 중지 지은 농산물은 다 귀하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잘나도 못나도 자식이다. 아니 그런 기준은 비교에서 생기는 것이다. 비교하지 않으면 자식에게 잘나고 못나고가 없다. 부모에겐 모두가 귀한 자식인 법이다.


“자식 농사” 결코 녹녹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왕에 시작한 일이라면 잘 심고, 잘 보살피고, 끈기 있게 기다려주며 때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부모 만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주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부모의 그 사랑이 험한 이 세상에서 그들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웃는사람 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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