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9 14:55

메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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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 메기의 추억


께기, 논메기, 마귀, 매거지, 매기, 머거지, 머기, 메거지, 메게, 메끼, 메어기, 메에기, 메역, 멕이, 며기, 뫼기, 물메기, 무미기, 뭬기, 미거지 미그지, 미기, 미떼기, 미애기, 미어기, 미억이, 미에기, 미여기, 미역이, 미역쟁이, 미유기, 미이기, 미익이, 황메기…. 이상은 ‘메기’가 가지고 있는 각종 방언 이름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불리는 이유는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서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중에서 먹는 메기들은 대부분 양식이지만 어릴적엔 한여름 보양식으로 닭백숙 만큼 메기가 단연 최고였다.


다양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만큼 지역마다 잡는 방법이 다양한 것으로 안다. 그물로 잡거나 낚시 그리고 맨손으로도 잡는 경우들도 보았다. 하지만 메기는 단연 낚시로 많이 잡았었다. 메기 낚시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나무와 전용 낚시 바늘이었다. 적당한 길이의 대나무를 구하고 끝 부분에 낚시줄은 30센티 정도면 충분했다. 대신 좀 단단한 줄이어야 했다. 미끼로는 주로 굵은 지렁이를 사용했다. 해질녘에 텃밭에 매 놓은 풀을 뒤적이면 손가락만씩한 지렁이들을 깡통에 담아 메기낚시 미끼를 준비했다. 이것으로 준비 끝이다. 랜턴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 달빛이나 조그마한 라이타 불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메기낚시는 주로 잠에 했다. 그래서 해가 진 후에 저녁을 먹고서 어둑 해지면 그제야 냇가로 향했다. 달빛에 의지하여 냇가로 들어서면 깊지 않은 웅덩이 부근 바위 틈으로 지렁이 미끼를 끼운 대나무 낚시대를 집어 넣고서 바닦에 그대로 눌러 대고 있으면 된다. 그렇게 몇 분만 있으면 메기가 입질을 시작한다. 대나무 끝이 조금씩 끌려가면서 바닥을 긁는 느낌이 그대로 손으로 전해진다. 많이 끌고 가는 것 같으면 그대로 낚시대를 들어서 달빛에 들어올린다. 어느새 메기가 퍼덕이며 낚시대 끝에 매달려 있다. 그렇게 잡히는 것이다. 따로 고기를 닮을 용기가 필요치 않았다. 메기는 버들가지를 하나 길게 꺾어서 아가미를 꿰어서 들고 다녔다.


보통은 서넛이 함께 가지만 나이드신 어른들은 한 둘 내지는 혼자 가신다는 애기를 많이 들었다. 동네에서 메기낚시 좋아하시는 어른은 그렇게 혼자 가셨다가 도깨비를 만나거나 개홀치라는 삵이나 산짐승을 만난 이야기도 가끔은 해 주신다. 높은 바위 위에서 모래를 뿌려 댄다거나 눈에 불을 켜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거나 스치듯 스윽 지나가더란 이야기들을 해주시면 손에 땀을 쥐면서 메기낚시 가기가 무서워지기도 했었다. 일부러 메기를 많이 잡지 못하게 겁을 주시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 시절엔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여름에 필요할 때면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잡은 메기가 한 주름이나 잡히면 밤에 잡아 온 대로 손질을 해야 한다. 배만 따서 내장만 도려내면 나머지는 통채로 매운탕을 끓인다. 애호박에 방앗잎이랑 잰피를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해서 깊은 밤에 먹는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한번 더 끓이면 더 깊은 맛이 우러나와 훨씬 더 맛이 있어진다. 필자는 매운탕은 메기로만 끓이는 줄 알았었다. 지역마다 매운탕을 끓이는 재료들이 달랐는데 되도록이면 다른 재료들이 많이 들어가지 않고 메기의 특유의 향이 그대로 남아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았다. 여느 지역에서는 시레기를 너무 많이 넣거나 다른 향료를 많이 넣는 바람에 아예 메기 고유의 맛과 향을 전혀 느낄 수 없게 끓이는데, 그것보다 특유의 향이 조금 있는 것이 훨씬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잡은 것 중에서 좀 큰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 두 시간 정도 말리면 약간 삐득삐득하게 말려진다. 그럼 석쇠에 올려서 양념을 조금씩 발라가면서 숯불에 구워내는 메기구이도 일품이다. 대부분 매운탕으로 다 소비하지만 이 구이는 정말 귀한 요리 중에 하나였다. 정말 크고 누런 메기는 잘 손질한 후에 백숙처럼 죽을 끓여 주었다. 어른들 말씀으로 산모의 젖이 마를 때는 메기 죽이 좋다고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누런 메기로 죽을 끓이면 맛이 꼭 닭백숙 후에 먹는 닭죽과 유사한 맛이 난다. 그래서 비리지도 않고 단백하게 맛있다. 더 없이 귀한 보양죽이 되는 것이다.


입맛이 많이 변한다. 이런 옛맛을 아는 것도 추억으로 뭍혀가고 퓨전음식들에 입맛이 길들여져 간다. 먹는 것이 달라지만 문화도 생각도 달라진다 한다. ‘메기의 추억’이라는 노래가 있다. 캐나다 죠지존슨이라는 사람이 죽은 자신의 부인 메기클라크에 대한 추억을 그린 시인데 우리나라에선 ‘옛날에 금잔디’라는 노래로 개사되어 불려졌다. 공교롭게도 친일행적이 있는 윤치호의 작사다. 이 가사에 나온 ‘메기’가 사람이 이름인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는 웃지 못할 사실. 살아오고 배워온 것 중에 모르고 듣지 못한, 잘못 알고 있는  역사가 너무도 많다. 지켜야 할 것, 찾아야 할 것, 그리고 밝히고 재조명하고 바로 세워야 할 것들 역시 너무도 많다. 메기의 추억만큼 잊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더 분명하게 밝혀 지켜야 할 역사 바로 세우기에 결코 소홀함 없길 바란다.


웃는사람 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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