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01-10 새 인류_새 이스라엘_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1
이스라엘이 잘못된 지식과 열심으로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실패했다는 사실 앞에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원의 길은 없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 한 줄 묵상 : 하나님은 약속과 택하심을 통해 세우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남겨두신 자들을 은혜로 구원하십니다.
<03:21-11:36 논지> 새 인류
ㅇ 03:21-08:39 새 사람
- 03:21-04:25 칭의(주장3:21-26/ Q&A3:27-4:15/ 정리4:16-25)
- 05:01-08:39 성화(논지5:1-21/ Q&A6-7장/ 정리8:1-39)
ㅇ 09:01-11:36 새 이스라엘(도입9:1-5/ Q&A:9:6-11:32/ 정리11:33-36)
# 9-11장의 문맥 흐름 :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이스라엘
1. 도입 : (근심) 이스라엘 민족으로 근심이 있다. (9:1-5)
2. Q&A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 (9:6-11:32)
(1) 역사적 약속의 문제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9:6-29)
(2) 역사적 현실의 문제 :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와 해결 (9:30-11:32)
1)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 (9:30-10:21)
2)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 남은 자의 회복 (11:1-32)
① 이스라엘 민족의 남은 자 (11:1-10)
②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11:11-32)
3. 정리 : (찬양) 하나님의 구원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 (11:33-36)
# 11장 전체 구조
1. 11:1-10 이스라엘 민족의 남은 자
1) 11:1a 질문 :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버리셨는가?
2) 11:1b 답(요약) : 그렇지 않음 선택된 자가 남아 있음 - 이스라엘 민족 중 선택된 자
3) 11:1c-6 구체적 설명 : 두 가지 예
a. 11:1c-2a 첫 번째 예 : 바울 자신의 예
b. 11:2b-6 두 번째 예 : 엘리야 시대의 예, 그 외에 많은 사람 있다
4) 11:7-10 결론 : 선택된 자는 얻었고, 나머지는 완악해짐
- 요점(11:07) / 근거(08-10) 8절-사 29:10, 9-10절-시29:22,23
2. 11:11-24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1) 11:11a 질문 :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여 이제 다시는 회복 없는가?
2) 11:11b-12 답(요약) : 그럴 수 없음, - 시기의 원리, 유대인의 회복 가능성
3) 11:1113-24 구체적 설명 : 두 가지 예
b. 11:13-16 첫 번째 예 : 바울 자신의 예 - 유대인 초점
c. 11:17-24 두 번째 예 : 가지 접붙임의 예 - 이방인 초점
3. 11:25-32 완악한 유대인이 다시 돌아옴
1) 11:25a 요지 : 이 비밀을 알기 원한다
2) 11:25b-26a 내용 : 온 이스라엘의 구원
3) 11:26b-32 근거 제시 : 순종하지 않을 때, 긍휼로 구원함
a. 11:26b-27 인용 : 이사야 59:20, 27:9
b. 11:28-32 해석 : 하나님의 긍휼하심
4. 11:33-36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 - 9-11장 전체를 마무리 하면서
# 11:1-10(이스라엘의 남은 자) vs. 11:11-32(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서로 짝을 이뤄 대조되고 있습니다. 두 문단 모두 ‘하나님이 버리셨는가?’라는 비슷한 주제의 질문을 이야기 하고, 문단의 구조도 비슷하게 전개합니다.
- 문단의 구조
1) 질문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11:1<>11)
2) 답 : 11:1b-10 <> 11:11b-24
① 요지 <그럴 수 없느니라> 11:1b <> 11:11b-12
② 두 가지 예 : 11:1c-10 <> 11:13-24
③ 결론 정리
1-2a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미 전파된 복음을 거절한 이스라엘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버리신 건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전개합니다.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우선 자신을 예로 들면서 자신도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 베냐민 지파라고 소개하고,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가지 것을 받았습니다(9:4-5 양자 됨, 영광, 연악들, 율법, 예배, 약속들, 조상들, 그리스도). 그렇게 약속과 선택으로 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바울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는 것을 예로 우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약속과 선택을 통해서 세워진 참 이스라엘을 결코 버러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양육하시며 함께하셔서 끝까지 구원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역사에 혜택을 입은 자로 살고 있는 바울 자신이 그 증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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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님의 몸된 교회인 우리들도 하나님의 언약과 선택으로 된 참 이스라엘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사도처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과 선택으로 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고백할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합당한 언행심사를 소유하지 않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고 있진 않습니까? 우선은 택하여 세우심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부르심에 합당한 삶과 누림이 증인됨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b-6절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대결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명되고 크게 이긴 사건 이후이 이세벨에게 쫓겨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이스라엘을 고발하면서 선지자와 제단들이 다 무너졌고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운 지경에 있다고 원망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행위(의 법 9:32에서 믿음(의 법)과 행위(의 법)가 대조되는데 여기서는 은혜와 행위(의 법)가 대조된다)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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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약속과 선택을 통해서 참 이스라엘을 세우시는데 많은 이스라엘은 이 복음을 듣고 알고도 순종치 않고 거절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약속)와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남겨 두셨다는 얘기를 엘리야 시대의 칠 천의 남은 자를 통해 말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때도 하나님께서 남기신 것처럼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을 남기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은혜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 당시의 칠천의 사람들의 행위가 적합해서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에 의해서 남겨진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 가운데서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절하고 불순종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은혜를 따라 자기 백성을 남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사야 선지자도 동일하게 예언했음을 확인했습니다(9:27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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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과 선택의 은혜를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우리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우리가 자격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어 한없이 감사하게 되고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해 주시고 믿게 해주셔서 택한 백성 제사장 나라 보배로운 소유로 삼아 주시고, 주님이 몸된 교회로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모든 이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된 남은 자의 은혜을 입은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약속과 선택의 은혜로 남겨주신 남은 자입니다.
7-10절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이 잘못 알고 율법을 따라 의를 얻으려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고, 여기에 제외된 자들은 우둔해(완악해) 집니다. 이어서 신명기 29:4과 이사야 29:10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완악해졌던 것과,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완악함에 대해 증거합니다. 또한 시편 69:22-23 다윗의 기도를 인용하면서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불순종이 예언되었음을 말하면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고 있는 것을 언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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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9:31(의의 법(율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의 진정한 목적)에 이르지 못하였느니)에서 이미 이스라엘은 잘못된 지식을 가진 열심으로 결국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율법이 자신들을 살려준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에서 제외된 남은 자(이스라엘)은 우둔(완악해짐)해져서 끝까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습니다.
[신 29: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 하나님이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를 보고도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알지 못한 광야의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 이 구절은 ‘신적인 가리움’을 표현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스라엘이 깨닫지 못하고 완악해 진것을 표현합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과오를 하나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은 이미 주신 기회에 오래도록 돌이키지 않게 되면 결국 스스로 완악해져서 더이상 듣지 않으려 귀를 닫아 버리게 됩니다. 이를 하나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며, 결국에는 이러한 완악함과 교만에 대한 말로는 패망임을 하나님께서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와 오래참으심 앞에서 속히 돌이키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지, 완악해 지면 결국 교만해져서 스스로 눈과 귀를 닫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이 결국 스스로의 눈을 어둡게하고 완악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 69:22-23]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 밥상과 평안은 악을 저지르면서도 일상에서 풍족함과 평안을 누리는 대적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이 모습은 쓴 식물과 식초로 차려진 밥상과 근심이 가득한 시인의 모습(20-21절)과 대조를 이루어 시인의 일상의 평안을 앗아간 대적의 악행을 상기 시킵니다. 23절은 대적의 눈이 멀고 허리가 흔들려 육체가 쇠진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현재 악인의 육체적 건강은 그들의 핍박 때문에 울부짖고 금식하여 목이 쉬고 눈이 침침해지고 몸을 가눌 수도 없게 된 시인의 상태(2-3, 10절)와 대조됩니다(<묵상과 설교> 2016년 9-10월호에서 발췌). 악인을 향한 심판을 간구하는 다윗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악인의 눈을 가려 달라는 기도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당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는 유대인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의 말로를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아주 작은 차이일 수 있지만 하나님과 복음의 진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 그리고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는 말씀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세워가는 삶이 추구하는 것의 결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은 생사를 가르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영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의 법을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로 내어주셨는데, 우리의 교만과 완악함이 불순종의 길을 가면서도 무지하여 돌이키지 않고 각기 제 길로 간다면 그 결과는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그리고 역사를 민감하게 분별하고 깨닫지 못하면 우둔해지고 완악해 집니다.
주님이 택하여 남은 자의 길에 선 하나님의 백성인가요? 아니면 무지하고 완악하여 잘못된 신념으로 왜곡 된 신앙을 가진 남은 자의 길에 선 자인가요? 겸손히 주님 앞에 긍휼과 은혜를 구하고 약속과 선택으로 세우신 복음을 바르게 듣고 알고 믿어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서 완악하여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아니하고 마음을 부드럽게하여 주의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며 그 말씀의 빚으심에 맡겨 살기 원하며, 주께서 끝까지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 기도
우리를 택한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여전히 약속의 외인으로 있는 이들을 향하여
증인되게 하옵소서.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을 남겨두셨음을 감사하오며
그가운데 있게해 주신 줄 믿고 또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앞에 더욱 겸손히 살겠습니다.
이 은혜가 또한 믿지 아니한 친지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길 간구하오며
이 여정이 축복의 통로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분별하지 못하여
마음이 완악하여지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빚어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