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14-19 정리_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교회를 칭찬하면서 서신을 쓴 목적을 언급하고, 바울 자신이 특별히 이방인에게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름받아서 지금까지 달려왔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 사명을 감당한 하나님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서신을 마무리해 갑니다.
# 한 줄 묵상 :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해야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 로마서의 대칭구조 참조
(2014년6월 <묵상과설교> 이진섭교수님의 “로마서의 흐름과 메시지” 글에서 발췌)
1:1-7(머리말)
1:8-17(도입)
1:18-11:36(이론)
1:18-3:20(옛 인류)
3:21-11:36(새 인류)
3:21-8:39(새 사람)-3:21-4:25(칭의)
- 5:1-8:39(성화)
9:1-11:36(새 이스라엘)
12:1-15:13(실제)
15:14-33(정리)
16:1-27(맺음말)
# 1:8-17 & 15:14-33
이제 바울사도는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1:8-17)을 통해서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목적에 따라 복음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1:18-11:36)과 그에 합당한 실제적 권면(12:1-15:13)을 마무리하고, 서신 전체를 정리합니다.
1:8-17 VS 15:14-33 이 두 본문은 서로 대칭 구조로 되어 있는데 1장에서도바 15장에서 더 힘있게 이야기 합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내용을 통해서 서신의 목적에 대한 부분들을 설명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두 본문에 반복된 점들을 살펴 보면 1장에서 로마 성도들을 칭찬하고, 15장에서도 칭찬이 내용이 나옵니다. 1장에서도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 하고, 15장에서는 복음을 전하고 생각나게 하려 했다고 합니다. 1장에서 신령한 은사를 말하고, 15장에서도 은혜(은사)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1장에서 여러 계획에 대해 언급하고, 15장에서도 로마방문 계획이나 예루살렘 방문계획등에대해서 언급합니다. 두 본문의 차이점은 15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계획까지 말합니다.
# 15:14-33 문맥 흐름
1. 15:14-15[16] 편지를 쓴 목적 : 복음 설명
2. 15:17-32 바울의 사역 소개
1) 바울의 과거 사역 동반구 사역(15:16-19)
2) 바울의 미래, 현재 사역(15:20-33)
(1) 사역 설명(15:20-29)
<1> 바울의 미래 사역 계획 : 서바나 로마사역(15:20-24)
<2> 바울의 현재 사역 : 예루살렘 교회 구제헌금(15:25-29)
(2) 사역을 관련 기도 부탁(15:30-32)
3. 축복 기도 :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15:33)
14-15절 은혜의 복음 안에서 함께 거룩한 공동체로 자라가는 교회여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교회가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것을 알고 칭찬합니다. 하지만 다시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의 복음을 전하면서 로마교호가 복음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서신을 썼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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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회는 바울 사도가 직접 복음을 전하거나 목회한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서 로마교회 안에서의 문제들이 결국 복음에 대해 오해하고 잘못된 지식과 열심으로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신을 통해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이러한 부분들이 자칫 오해의 소지나 월권으로 비춰질 수 있기에 자신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러한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로마교회 안에서 율법이나 여타의 문제로 논쟁이 있으며, 이를 방치해서는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목적을 가지고 이 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로마교회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고 칭찬했는데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의미와 로마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살고 있다는 의미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에서 로마교회의 믿음을 칭찬했었는데 이로 보건데 로마교회가 나름대로 알고 있는 복음을 따라 교회공동체로 함께 모여 살고 있는 부분을 다시금 재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모든 지식이 차서 나름대로 여러가지 이론들을 따라서 처신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 바른 지식이라고 할 수는 없고 때로는 잘못된 지식도 있다는 것을 언급했기에 이렇게 말하면서 나름 로마교회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의 지식과 신앙을 통해서 서로 가르치고 교훈하고 격려하면서 자라고 있긴 하지만 역시 그런 칭찬 안에 이런 권함이 때로 과한 주장으로 갈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로마서를 통해서 다시금 복음에 대해 생각해서 로마교회가 알고 따르는 복음의 한계를 점검하고 바울 사도가 하나님께서 은혜가운데 허락하신 바른 복음 곧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에 대해서 그리고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파생되는 율법이나 여타의 갈등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서신을 쓰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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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개척하지 않고 사역하지 않은 교회를 향하여 신앙적 권면을 할 때 바울사도는 공동체를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서신을 시작하고 또 가르침의 내용들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권면했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오늘 교회 안에서의 교육과 여러 교회간의 관계속에서 그리고 성도 상호간의 대화 속에서 우리가 배우고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 곧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과 겸손으로 무장하고, 조급해하거나 무례히 행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은 사랑으로 행하라는 가르침에 부합됩니다. 바울사도는 거룩한 새 백성의 삶의 자세를 가르치면서 자신 또한 가르친 대로 행하고 전하고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다른과 다양성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다른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틀린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보다 오히려 혼란케하고 분열케 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는 가장 기초에는 바른 복음에 의해서입니다. 그 기초위에 세우지 아니한 어떤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국 복음의 진리의 터 위에 서지 않은 공동체를 주님의 몸된 교회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복음을 확신하고 이 복음을 통해서만이 로마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음을 알기에 애정 가득한 마음으로 썼음을 피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몸된 교회인 우리들도 복음에 대한 바르고 풍성한 이해를 가져야 하며 그런 복음에 입각한 새 백성으로, 또한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합당하게 주님을 따르는 거룩한 공동체로 자라가길 힘써야 할 것입니다.
16절 은혜의 복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심은 축복의 통로되라는 뜻입니다.
바울사도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자신을 이방인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사명을 받았으며, 마침내 열방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을 충성되이 감당하므로 이방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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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을 핍박하던 바울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통해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그렇게 부르신 이유가 이제 이방인들 곧 약속의 외인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며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자신은 예수의 일꾼 곧 예수님께 보냄을 받았으며(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세워진 사도됨) 마치 제사장처럼 이방인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거룩한 제물로 드리도록 하는 일에 부름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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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복음을 허락하심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불의한 인간으로 유기와 심판아래 소망 없는 인생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믿음의 법)을 통해서 새 사람, 새 백성, 새 이스라엘, 새 인류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소위 우리가 구원을 받게되어 하나님을 믿고 왕이 바뀌었으며 우리의 소속과 가치관과 세계관과 정체성들이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그렇게 우리를 새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러한 데서 더 나아가 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또한 부르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만 은혜를 입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새 백성을 세워가는 일에 동참하도록 사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만 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도 복있는 자 되도록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것이었음을 분명히 알고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신 그 뜻대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또한 지금 이 로마서를 쓰게 된 이유도 바로 그러한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로마서 1:5에서 ‘은혜와 사도의 직분으로 이미 언급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레위지파는 아니었지(베냐민지파)만 이방인과 관련해서 제사장의 책무를 느낀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 표현이 이곳이고 또한 12:1입니다. 12:1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하는데 이는 제사를 드리도록 도와주는 제사장의 책무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이 복음에 합당한 제물로 드리도록 제사장으로서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서신을 통해서 로마교회뿐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가르치고 전파하며 사역해 온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바울처럼 가르침을 통해서 그 의미를 가르치고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축복의 통로로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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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이방인 사도권에 대한 의식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특별한 사도직으로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도라는 의식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당시 유대인은 아직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이들이 별로 없지만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복음이 이방인에게 가는 자체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고넬료 만나고 돌아올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토합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믿는다는데,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데 난들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입니다. 왜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고, 성령의 가시적 경험을 하게 하셨는가? 그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힐난한 자들을 입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반론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쉽게 수용 못하기에 베드로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 설득하기 어려운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 하나되기가 쉽지 않았을 때에 기근을 주어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게 해서 마음이 풀려 하나되게 하시는 조치를 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단초를 만드십니다. 장벽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런 특별한 조치를 통해 계기를 마련하고 풀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방인들을 향한 생각들이 쉽지 않았던 때에 이런 장벽을 뛰어넘고 이방인의 사도 되고, 이방인을 수용하고 유대인의 핍박을 감당하며 하는 것은 쉽지 않고 불가능할 정도의 일인데 그런 상황에서 바울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산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고상해 보이지만 그 당시는 아무도 가지 않고 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고 모두들 싫어하는 그 길을 바울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이냐? 만일 바울사도가 그 길을 가지 않았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울이 순종하고 갔기에 교회가 2천년동안 살아 남은 것입니다.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끝나고 유대인 흩어지고 교회가 흩어 졌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지만 교회의 생명력은 세상 곳곳으로 스며듭니다. 새로운 길로 나갈 수 있도록 꽃피우도록 앞서서 마르고 닳도록 뛴 바울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사도로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담대히 그리고 묵묵히 뛰어온 그 길이 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신학적일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귀했습니다. 모두가 틀렸다고 자기가 사역한 교회에서조차 반역하는 상황에서도 로마까지 나아가려는 바울의 모습은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바울을 읽고 바울을 보고 배우면서 신학도 목회도 선교에 대해서도 바르게 정립해 가야 할 것입니다.
17-19절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제 바울사도는 지금까지 자신이 동반구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 곧 선교사역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 역사하시고 성령을 통해서 말과 행위 표적과 기사의 능력들을 허락하여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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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새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신 일입니다. 또한 그런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한 일입니다. 복음은 불의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대속하고 새롭게 창조해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만들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백성으로 만드신 일입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통해 역사하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바울 사도만 그렇게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에게 있어서 이 일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며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되도록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여정 가운데 자신이 능력과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합니다. 더 자세하게 자신의 선교여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말과 행위 표적과 기사와 능력들을 성령을 통해서 자신에게 허락하셨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전하지 않고 그에 합당한 살을 통해서 전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능력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났던 수많은 표적과 기사도 모두다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능력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전한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변화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되도록 한 것도 역시 성령의 능력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삼위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역사하심이 이러한 모든 일들이 가능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빠짐없이 두루 전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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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새 백성됨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요, 성령의 능력으로 인함인 줄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복음을 전파하여 믿어 순종케 하는 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우리 하나님의 역사하신 그 은혜와 사랑만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주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누리고 전파하는 복음의 사람, 복음의 일꾼으로 그리고 새 사람 새 백성 새 이스라엘로 택하시고 세워주심 감사드립니다. 내 평생 소원과 자랑도 이것 뿐이길 기도합니다.
# 기도
우리를 새 백성으로 택하시고 불러주신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명 주신 하나님
이 은혜의 복음을 바르고 풍성하게 알고
복음 안에서 바른 정체성과 사명을 따라
합당하게 살기 원합니다.
부르심에 충성되이 살았던 바울의 여정을 묵상하며
나의 부르심을 또한 분명히 알고
충성된 일꾼으로 잘 감당하기 원합니다.
이 모든 역사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에
모든 삶의 순간마다 그 능력을 구합니다.
하나님을 믿어 순종하며 사는 이 복된 길을
함께 동역 동행하는 이들을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배려와 용납과 겸손함으로 감당하길
또한 원합니다.
복음의 제사장으로, 복음의 전파자로서
우리도 또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며
날마다 우리 몸(삶)이
주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물로
부족함 없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