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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09-21 새 인류의 삶_사랑의 원리(개별적 측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인류(새 백성, 새 이스라엘)된 이들이 살아야 개별적 측면의 구체적 삶의 원리인 사랑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 한 줄 묵상 : 사랑이 진짜가 되도록 힘쓰고 원수와 사랑으로 싸워서 승리하라


# 12:01-15:13의 문맥 흐름 - 실제 :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인류의 삶

A. 12:1-2 새 백성의 마땅한 삶 : 영적 예배

B. 12:3-15:13 새 백성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

   1. 12:3-21 원리 제시 : 새 백성의 삶의 원리 제시  - 개별적, 공동체적인면 함께 생각하라

     1) 12:3-8 공동체 측면 : 지체의 원리

     2) 12:9-21 개별적 측면 : 사랑의 원리

   2. 13:1-15:13 새 백성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권면

     1) 13:1-14 로마 사회에서 사는 문제

     2) 14:1-15:13 로마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문제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


# 12:09-21의 구조

A. 12:9 요지 : 사랑, 선과 악

B. 12:10-21 자세한 설명

   1. 12:10-13 교회 내적 : 성도와 관련된 사랑

   2. 12:14-21 교회 외적 : 핍박 자에게 사랑으로

        (1) 12:14 요지 :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2) 12:15-21 구체적 설명

            - 12:15-16 타인의 상황에 동참하며 교만하지 말라

            - 12:17-21 원수와 사랑으로 싸워 승리하라



9절 사랑이 진짜가 되게 해야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삶입니다.

사랑이 진짜가 되게 해야합니다. 참 사랑은 악은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롬8:4) 것, 율법의 정신과 내용은 결국 사랑입니다(마 22:34; 골 1:13; 롬 13:10). 사랑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이고,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악에 속하지 않고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는 사랑인데,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그런다고 불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의 실천이 3:21-26에 있는 믿음의 법을 통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참사랑으로 사랑하시며 끝까지 사랑해 주셨고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며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사랑함에 있어서 거짓이 없이 진짜가 되어야 합니다.

동기도 과정도 결과도 악과 연관되어서도 안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는 선에 속한 행실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 함에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필요를 채우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 백성 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듭났으니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하나님처럼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

온전한 성도, 성숙한 그리스도인, 새 사람, 새 백성, 새 이스라엘등등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빚어가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며 이에 반하는 것이 악이며 순종하는 것이 선입니다. 우리 삶의 내용 전체는 이 사랑을 받고 나누고 전하고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우리 삶의 동인이며 목적이며 완성임을 믿습니다.


10-13절 사랑으로 이웃 섬기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열심히 주를 섬기고, 소망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고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면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합니다.

*

공동체(교회와 가정을 포함하여) 안에서 함께한 가족들을 사랑하는 일은 서로 먼저 사랑하기가 중요합니다. 황금율처럼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단계는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새 사람이기에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기에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조건과 이유를  무론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도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존경을 포함해야 합니다. 일방적이어서도 무례해서도 상대를 무시해서도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실천에 있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향한 사랑의 섬김도 열심을 품고 하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예배인데, 이 사랑이 종교적 제의에만 국한되지 아니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더 적극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순종합니다. 그런 신앙이 결국 여러가지 환난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고, 그렇게 어려운 중에도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도움을 구하는 기도에 힘써야 여전히 사랑할 수 있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성도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말로만 따뜻하게 하라 무얼 먹으라 걱정 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내게 남은 것이 아니라 내가 쓸 것도 부족할 지라도 나누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또한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우리가 그런 나그네와 같은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셨기에 우리가 본향을 찾고 살 수 있게 되었기에 이것을 상기하여 감사하게 되면서 동시에 그런 이들을 살리는 사명이기에 나그네 대접을 힘쓰라 한 것입니다. 이웃과 주님과 나그네를 향한 처신의 모든 기초가 사랑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사랑으로 거듭났으며, 우리는 사랑으로 살 수 있으며, 우리는 사랑으로 소망을 품고, 우리는 사랑으로 이 광야 여정을 함께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붙여주신 가족들을 그리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 그것이 결국 주님을 열심을 품고 사랑하는 적극적 행동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붙여주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먼저 사랑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필요를 공급하여 사랑하고 힘쓰는 날이길 소망합니다.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도록 내 안에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셨음을 충만하게 믿게 하옵소서.



14, 17-21절 박해하는 이들을 향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박해하는 자(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는 사랑을 하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을 도모해야 합니다(17, 21절). 악을 선으로 이기는 방법은 가능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유지하고(18절) 원수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입니다(20절).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 소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

로마의 박해가 진행중이며 또한 예상되는 상황에서 새 백성된 그리스도인을 향한 직접적인 권면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며 폭력과 강요에 의해 주어진 악으로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어지는 평화는 사랑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대하는 일에 있어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더 적극적으로 원수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라고 합니다. 곧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이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악을 이기는 삶의 방식을 악으로 행한다면 우리 또한 박해하는 악인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그들과 화목하라 하고 그래서 가능한한 평화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또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해서 그들이 그 사랑에 녹아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수치와 후회를 불러 일으켜 돌이켜 깨닫도록 하라는 것입니다(숯불을 머리에 쌓아 놓으라는 의미에 대한 해석).

19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부르면서 자신 또한 새 백성으로서 사랑하며 사는 자로서 로마교회를 향하여 그렇게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성경을 인용하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는데 바울 사도는 우선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밝히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지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원수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물론 우리 믿음의 선조들 중에서는 정말 그런 사랑을 행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믿는 자만이 그렇게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한다면 아직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 원수를 미워해야 할 이유, 원수를 갚아야 할 이유는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해야 할 이유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우리 주님의 사랑의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들은 마침내 심판하는 날에 그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다면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강퍅한 마음을 녹여 약속과 선택으로 말미암은 새 백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에 사랑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누구보다 이러한 원수 사랑의 가장 큰 수혜자는 사도 바울 자신이었습니다. 주님과 주님을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는 죄인 괴수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서 땅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이 원수까지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

시대마다 성도를 향한 악인들의 핍박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고 원수 갚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힘이 있다면 언제든 폭력으로 응징하여 원수를 갚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폭력이 결국 또 다른 폭력을 양산하여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음을 이미 봤습니다. 악을 악으로 폭력을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악을 선으로, 사랑으로 녹이고 이긴 방식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이 이런 삶의 방식은 상당한 긴장과 깨달음과 확신을 가져야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여차하면 이러한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욕심과 조급함으로 악과 폭력을 행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하고 선으로 이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사랑을 맛보게 해 주셨고, 동시에 원수 갚는 일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악을 방치하거나 용납하지 않으실 것을 천명하면서 소망가운데 인내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할 때라야만 우리 앞의 원수드를 향하여서 넉넉하게 사랑으로 품어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미워지고 우리 마음에 분노가 치밀거든 어느새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품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품고 있음을 자각하고 속히 주앞에 나아와 부복하며 그 사랑에 맡기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15-16절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겸손하고 지혜로운 처신을 해야 합니다.

새 백성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합니다. 서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지혜롭게 처신하라 합니다.

*

이웃의 아픔과 처지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하는 일은 우리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이웃을 붙여주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들은 내가 사랑을 주든지 받든지 해야 할 존재이지 이용과 경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아픔과 즐거움에 함께 공감하는 일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공감만으로도 슬픔을 위로하고, 기쁨을 배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그냥 보통 이웃이나 핍박하는 이들을 바라볼 때에도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대해야 하고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판단이 선과 악의 판단 기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자리에 서서 우리 기준을 따라 판단하고 정죄하고 지혜있는 척 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이 주권을 인정하면서 겸손하게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처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세, 그래서 함께 울고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 자리에서길 힘쓰고, 우리가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리에 서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의 뜻을 따라서 할 수 있는대로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 곧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랑하는 일을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함께 울어주어야 할 사람, 함께 즐거워 해야 할 사람 있습니까?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정죄와 판단의 자리가 아닌 공감하는 자리에 서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길 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베푸신 참사랑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사랑 받은 만큼 이웃을 먼저 사랑하고 존경하며

부지런하고 열심으로 사랑을 행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소망중에 사랑을 행하고

이웃과 나그네의 필요를 채우는

희생적 사랑을 아낌없이 행할 수 있는 믿음도 주옵소서.

박해하는 원수를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는 믿음도 주시옵고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게 하옵소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끝까지 인내와 소망중에 선으로 이기게 하옵소서.

지금 정죄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원수를 사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풍성하게 경험케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원수의 죄악이 심판 받는다느 것을 알고서

원수를 사랑하되 주리고 목마른 이에게

먹고 마실 것을 베푸는 사랑을 행할 능력 주시옵고

우리의 사랑을 받은 원수들이

마음이 녹아 주께로 돌아오는 보람도

경험케 하옵소서.

그래서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랑의 능력을 가진 새 백성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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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는사람 2018.09.27 19:24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며
    전념해야 할 최고의 과업은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삶은 사랑을 배울 기회로 넘쳐나지 않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매일
    수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세상은 놀이터가 아니라 교실입니다.
    삶은 휴일이 아니라 수업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영원한 학습 과제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믿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했는가 '입니다.
    종교 심판, 곧 최후의 종교 심판은
    종교성이 아니라
    사랑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 위대한 날에 있을 종교에 대한
    최후 심판의 기준은
    종교성이 아닌 사랑입니다 .
    내가 한 일도 내가 믿은 것도
    내가 성취한 일도 아닌,
    살면서 일상적 자비를
    어떻게 이행했는가입니다.

    헨리 드러몬드의 <사랑,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IV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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