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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01-08 새 인류의 삶_영적 예배와 지체의 원리(공동체적 측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인류(새 백성, 새 이스라엘)된 이들이 살아야 할 모습을 영적 예배로 표현하고, 그 삶의 구체적 모습을 다루면서 우선 공동체 측면의 지체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 한 줄 묵상 :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영적 예배로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행동하고 은사를 따라 처신하라.



# 로마서의 대칭구조 참조

  (2014년6월 <묵상과설교> 이진섭교수님의 “로마서의 흐름과 메시지” 글에서 발췌)

1:1-7(머리말)

1:8-17(도입)

1:18-11:36(이론)

1:18-3:20(옛 인류)

3:21-11:36(새 인류)

3:21-8:39(새 사람)-3:21-4:25(칭의)

     - 5:1-8:39(성화)

9:1-11:36(새 이스라엘)

 12:1-15:13(실제)

  15:14-33(정리)

16:1-27(맺음말)



# 로마서 1-11장까지의 흐름

ㅇ 1-8장 두 질서의 대비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신학적(복음), 목회적(문제), 선교적(서바나선교)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전하는데 여기에는 교회안에 있는 유대주의자들을 염두하고 시작합니다. 서신의 초반부에서 믿음의 원리(법)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의현 또는 현의) 말하는데 여기엔 우리의 칭의개념도 있지만 더 넓은 의미의 ‘의’에 대해서 이론적인 부분들을 설명합니다.

  1:18--8:39에는 두 질서의 대비를 말하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백성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1:18-3:20까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은 백성 곧 불의한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하나님의 의와 반대되는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서 유기외 심판을 받게 되는 인간, 희망이 없는 인간을 이야기 합니다. 이어서 3:21-8:39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백성의 이야기 곧 하나님의 의가 믿음의 법을 통해서 희망 없는 인간을 새 백성, 새 이스라엘로 만드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문제가 율법(행위 보응의 원리가 잘 나타나 있는)에 비춰 보았을 때 잘 드러나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 곧 유기와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말했습니다(1:18-3:20).

  3:21부터는 그런 곤고한 인생(7장)을 향해 하나님은 다른 길 곧 하나님의 의(메시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 예수님의 신실함(예수 사건) 통해 하나님을 믿는 새로운 이스라엘이 등장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새 백성으로 만들어 의롭다 하시고 또한 점차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가십니다(8장까지)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를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먼저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생명을 얻게 되는가를 서술하고(3:21-8:39), 이어서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로 등장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9:1-11:36).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를 ‘새 사람 됨’과 ‘새 이스라엘 됨’으로 말한 것입니다.

ㅇ 9-11장 이스라엘에 대한 개념 정리

  그런데 약속과 선택을 통해서 새 이스라엘 만들어 가시는 것이라면 이스라엘 민족은 여기에 동참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폐기되는 것이냐(9장) 하는 질문에 답변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지식으로 율법과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10장),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 통해 원래부터 혈연이 아니라 약속과 선택을 통해서 참 이스라엘이 구성되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아무도 새 백성이 되지 못하고 끝난 것인가 하는 질문에 하나님의 방법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않은 가운데 두시고 그들을 구원해 가시는 것으로 이는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 동일한 원리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시기의 원리로 설명합니다. 11장에서 말하는 비밀(신비)은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한꺼번에 돌아온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참 이스라엘 또는 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시기의 원리 통해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구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11:33-36).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전의 옛 인류에 대한 묘사(1:18-3:20)는 결국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되는 새 인류의 모습(3:21-11:36)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배경 역할을 합니다. 아담적 실존을 사는 사람은 결국 죄와 사망으로 나아가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의 삶은 그와는 대조적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를 이루시고 생명을 가져다 주신다는 점을 3:21-11:36에서 분명히 한다. 이 부분은 로마서에서 바울의 복음을 가장 자세하게 설명한 곳입니다.



# 12:01-15:13의 문맥 흐름 - 실제 :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인류의 삶

A. 12:1-2 새 백성의 마땅한 삶 : 영적 예배

B. 12:3-15:13 새 백성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

   1. 12:3-21 원리 제시 : 새 백성의 삶의 원리 제시  - 개별적, 공동체적인면 함께 생각하라

     1) 12:3-8 공동체 측면 : 지체의 원리

     2) 12:9-21 개별적 측면 : 사랑의 원리

   2. 13:1-15:13 새 백성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권면

     1) 13:1-14 로마 사회에서 사는 문제

     2) 14:1-15:13 로마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문제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



# 이론(1-11장)과 실제(12-15장)

  12장 부터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백성(약속과 선택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여 만든 새 이스라엘)의 모습의 현실적 실제적 모습을 다룹니다. 이는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고도 말합니다.

  11장까지의 내용이 복음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었다면 이제 12장부터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 백성(새 사람, 새 이스라엘, 새 인류) 된 이들이 몸으로 드리는 예배(영적 예배 혹은 합당한 예배)를 말합니다. 즉 11장까지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비하여 논리적으로 복음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한 것이고, 12장부터는 그것이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개인 구원의 서정으로 이해해서 마치 12장 이후의 삶이 구원과 무관한 옵션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울의 관점을 오해한 것입니다. 12:1-15:13까지는 하나님이 아들의 복음이 로마교회에 현실적으로 주는 적용점과 교훈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입니다. 12:1-21에서 새 백성의 삶의 원리를 제시하면서 가장 먼저 공동체적 측면(12:3-8)을 먼저 다루고 이어서 개별적 측면(12:9-21)을 다루고 있는 점도 우리가 로마서를 개인 구원의 서정으로 이해한 것이 바울의 의도를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철저하게 개인과 공동체적인 면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치우치지 않는 이해로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서신에 비해 로마서가 이론(1-11장)보다는 실제(12-15장)의 분량이 적은 것은 첫째 복음에 대한 설명을 우선 목표로 했다는 것과 둘째 로마교회를 직접 목회하지 않았지만 알게 된 문제에 대한 짧지만 의미 있는 답을 주는 정도로 언급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 12:01-08의 구조

A. 12:1-2 새 백성의 마땅한 삶 : 영적 예배

B. 12:3-15:13 새 백성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

   1. 12:3-21 새 백성의 삶의 원리 제시

     1) 12:3-8 공동체 측면 : 지체의 원리

        (1) 12:3 요지 :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2) 12:4-8 구체적 설명

            - 12:4-5 지체와 직분이 있다

            - 12:6-8 각 직분의 종류와 마땅한 태도



1-2절 새 백성으로서 영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이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새 백성된 이를 향하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 제물로 드리라 합니다. 이것을 영적 예배라고 맗바니다.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

12:3-15:13까지 새 인류(새 백성, 새 이스라엘)된 이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요약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아울러 ‘그러므로’로 표현되는 전환은 단순하게 11장만 받는 것이 아니라 1-11장까지 소개한 하나님의 자비(의, 사랑, 긍휼)에 대한 설명을 말하고 나서 ‘그러므로’이제 이렇게 살라고 권면하는 전환문구입니다. 그래서 시간순서로 이해하는 거은 부적절합니다. 율법에 있는 하나님의 요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새롭게 만드시는 것으로 이루셨습니다. 이제 새롭게 된 새 인류(새 백성, 새 이스라엘)된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라는 말은 첫째 1-11장까지 우리를 새 인류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지혜와 지식을 담은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비하신 마음으로 이렇게 살라고 권면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 가지 의미 모두 바울의 이 ‘권면’이 단순한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그런 삶이 나타나야 하는 명령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권한다’라고 한 이유는 자동적으로 기계처럼 된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우하기에 권한다는 것이지 다른 길로 가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닌 무거운 권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강압적으로 기계처럼 새 인류를 만드시는 것이라면 예수사건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의 마음의 할례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적으로 우리를 향하여 권하는 이 명령을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바람직하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정도로 가벼이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배은이라 할 만합니다.

이스라엘은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든 요소를 다 포함합니다. 그래서 제사가 삶이었고 삶이 곧 제사였습니다. 이제 새 이스라엘 된 이들이라면 동일하게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막과 성전이 없는데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이제는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제가 아니라 우리의 몸을 드리는 제사가 삶으로 드리는 제사이고 그것이 거룩한 제사이며 진짜 예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적 예배’는 벧전 2:2에는 신령한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신약에서 두 번 나오는 표현입니다. 신령한, 영적인, 합당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문자적으로 ‘합당한 예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그래서 11장까지 이론적인 부분에 대한 복음을 통해 우리가 새 이스라엘이 된 것을 안다면 이제는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얘기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마치 자신을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그래서 15:14이후에 제사장의 직무를 이방인을 향하고 교인들을 하나님 앞에 이끌어 나오게 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제사장의 마음으로 ‘제사장’과 ‘몸을 드림’을 말합니다.

공적 예배 혹은 공동체 예배와 우리 삶의 예배의 비중을 함께 둬야 합니다. 주일이나 여타의 시간에 우리가 공동체로 함께 드리는 예배는 삶의 예배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 서로 돕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 사는 존재로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기에 두 예배 모두 비중을 두고 함께 가야 합니다. 보통 예배를 공동체, 개인, 삶의 예배로 나눠볼 수 있는데 어느 것 한 가지만 빠져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공동체 예배가 빠지면 신앙이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이기적 신앙이 되고, 개인 예배가 빠지면 사람들이 보는데서만 경건하고 자신은 변화되지 않는 이상한 신앙인이 되고, 삶의 예배가 빠지면 신앙과 삶이 분리된 이중적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예배가 함께 균형있게 드려지는 삶이어야 온전한 예배자의 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2절에서는 바른 예배의 삶을 사는 방법을 두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른 삶의 소극적 측면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가진 삶의 방식과 원리와 처세술등입니다. 곧 로마서 1:18-3:20까지 나온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은 사람들의 삶의 원리인데 그들의 모습으로 살면 그들에게 속한 사람들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또 그런 모습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바른 삶의 적극적 측면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으라 합니다. 이미 이러한 의미는 8장에서 성령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으로 표현했고, 새 영을 통한 새 창조의 의미로(겔 36:26), 마음의 할례등의 표현으로 설명했습니다. 곧 믿음의 원리를 통해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 되게하고 새 생명을 가진자로 살게 하셨기에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통해서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 이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이루시기에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겔 36, 롬 8장).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 보내신 성령을 환영하고 충만해지도록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대의 사고방식이 문제인지 알고 성령의 따라 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 뜻을 아는 것이기에 그 뜻을 잘 알 수 있는 말씀의 충만과도 연결됩니다. 지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변화가 지정한 변화와 성숙으로 이어짐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합니다. 성령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받는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 단수한 차원이 아닌 복합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각도로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다양한 경우들을 다루고 여러가지 지식이 요구되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합적인 생각을 통해서 온전히 분별하기 위해서 바울이 제시한 마음의 변화 곧 성령의 역할과 말씀의 이해를 고려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습니다.

*

새 인류(새 백성, 새 이스라엘)로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길 원하시는 모습이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합당한 예배자로서의 삶과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삶의 기준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는지, 그것을 추구하는지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과 내용을 매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쉽다고도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된다고도 하지 않고, 간단하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또 힘들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가능한 길이 있다는 것도 제시해 주었습니다. 주님이 새 인류로 만들었기에 우리는 이러한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가능하다고 또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면 허락하심을 따라 묵묵히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공동체 속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공동체 예배(공예배), 개인 예배(묵상), 삶의 예배(실천)가 일치된 온전한 예배자이길 원합니다.



3절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권면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

새 백성의 마땅한 삶을 위한 두 가지 원리(공동체적, 개별적) 중에서 공동체적인 원리의 요지를 제시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똑같지 않고 다 다릅니다. 그 분량을 알고 자신의 위치, 역할, 수준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의 첫 번째 원리는 지체 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과 수준을 잘 판단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소극적으로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이에게 너의 분수를 알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닫혀서 중요한 것을 그리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는 각 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에 차이가 있다는 것도 역시 말합니다. 앞선 조언처럼 내게 주신 만큼 한다는 태도로 사역도 하고 살아가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것을 분량에 맞게 감당하되 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생각하시는 길인지 평가하고 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세우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고 세우시는 것이 마땅한 길이고, 그것을 잘 확인하고 바른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 기도의 첫 번째는 간구는 하나님이 뜻을 깨닫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두번째 기도는 깨달은 그 뜻을 따라 잘 순종하며 살아갈 능력을 구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나의 분수를 알고 욕심내지 않고 허락하시는 만큼 행하고, 또 그 수준에 안주하지 않고 더 성장 성숙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일이 우리가 깨어 지속적으로 간구하며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이러한 자기 분수 이해에 있어서 공동체 안에서 가져야 할 자세를 이어서 설명합니다.



4-5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공동체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는 데, 각 지체마다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습니다.

*

우리는 한 몸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몸 된 공동체라는 얘기입니다. 그 몸에는 각기 다양한 지체가 있고, 지체마다 기능들이 다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과 기능을 따라서 행동하고 책임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다른 지체의 건강을 좌우하고, 몸 전체 곧 공동체의 건강을 좌우합니다. 서로 시기할 필요도 없고, 서로의 특징을 따라 행도하되 나보다 더 만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고, 힘있는 자가 연약한 자를 돌보고 도움을 받는 자의 입장에서도 당연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감사하면서 또 다른 지체를 섬길 수 있는 부분들을 함께 돕는 것입니다.

*

부부도 공동체도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서로의 부족함들을 서로서로 돕고 채워주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 다양함이 많을 수록 공동체는 더욱 풍성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다양함속에서 일치하지 않고 서로 자기 주장을 하고 시기하고 질투한다면 공동체는 또 더없이 많은 잡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다양한 지체의 한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형제 자매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웃을 향한 사랑은 결국 나와 공동체 모두를 살리는 일이고 함께 자라 가게 되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6-8절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행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릅니다.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 긍휼등의 은사를 소개하고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새 백성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과 신앙의 환경은 각자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필요한 은사도 각각 다르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는 같고 은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이 은사는 공동체를 온전하게 세우는 일에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에 대한 활용의 원칙입니다. 이 은사를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오용하게 되면서부터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이 원칙을 지킨다면 소위 은사주의의 잘못된 폐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은사주의자들은 당연히 교회를 위해 은사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들의 분량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란트 비유의 전제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은사는 다 좋은 것이고 부족함이 없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경중과 고저와 많고 적음을 따질 필요가 없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대신 서로 협력할 때 온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도 교회도 그 규모와 역할도 다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 몸의 각 지체의 역할이 다른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의 역할도 다릅니다. 그 은사는 공동체에 나눌 때에 바람직하게 사용하고 섬기고 쓰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각각의 은사를 먼저 말하고(~면) 이어서 그 은사를 어떻게 쓰는지 방법을 말합니다(~대로). 이렇게 주어진 역할과 그에 맞는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어진 역할에 맞지 않는 다른 방법과 영역을 침범하게 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대언하는 일은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합니다(앞서 욕심 내지 말라고 수준에 맞게 하라고 했습니다). 섬기는 일이면 당연히 섬기는 일에 해야하고,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위로하는 자는 위로하고 구제하는 자는 성실하게 행해야 구제 받는 이가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는 소외되는 이 없이 부지런히 살피고 찾고 돌봐야 합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자고해서도 안되고 소홀해서도 안되고 불쾌함으로도 안됩니다. 도움을 베푸는 것도 받는 것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 일을 즐거움으로 하라고 합니다. 생색도 내지 말고 억지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즐겁게 감당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어떻게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행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

주의 은혜만으로도 감사한데, 이제 혼자만 그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하여 그 은혜 곧 사랑을 나누는 일에는 각자에게 받은 은사를 따라 합당한 방식으로 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체의식에 방해가 되는 것은 유행을 다라하고 경쟁하려 하는 의식들이 문제입니다. 시대마다 교회마다 사람마다 부르심과 은사와 그 역할과 방식이 수준과 분수와 분량들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함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공동체를 섬기며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내가 한 몸 공동체의 지체로서 해야 할 부분들, 채워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의 유행을 따라 몰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주신 직분의 역할을 찾아서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양하게 채우고 행하길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잘되고 크게하려고하고 욕심 부리고 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량을 따라 역할과 방식을 잘 감당해 나가는 일이 새 백성된 한 몸 공동체 안의 한 지체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합당한 예배자의 삶의 자세와 원리들입니다.

[엡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기도

우리를 새 인류(새 백성, 새 이스라엘)로 삼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 베푸사 예배자로 세워주시고,

성령을 허락해 주셨으며, 은사를 주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몸을 주님이 기뻐하는 산 제물로 드리기를 기뻐하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주께서 허락하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따를 수 있는 지혜로 채워주옵소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품지 않게하옵시며

믿음의 분량을 따라 지혜롭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다른 지체를 향한 존중과 사랑을 잊지 않고

허락하신 은사에 다른 책임있는 행동을 통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는 일에

성실하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예배자임을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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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6 마태복음 05:01-12 하나님나라 백성이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복 웃는사람 2019.01.22 775
215 마태복음 04:12-25 천국 복음으로 부르심 웃는사람 2019.01.22 619
214 마태복음 03:13-04:11 새출애굽의 완성과 광야의 승리 웃는사람 2019.01.22 649
213 마태복음 03:01-12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 웃는사람 2019.01.22 637
212 마태복음 02:13-23 새 출애굽을 완성하신 예수님 웃는사람 2019.01.22 593
211 마태복음 02:01-12 경배와 소동 웃는사람 2019.01.22 641
210 마태복음 01:18-25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웃는사람 2019.01.22 729
209 마태복음 01-01-17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웃는사람 2019.01.22 677
208 로마서 16:17-27 맺음말_문안과 권고 2 웃는사람 2018.10.06 639
207 로마서 16:01-16 맺음말_문안과 권고 1 웃는사람 2018.10.03 587
206 로마서 15:20-33 정리_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2 웃는사람 2018.10.03 786
205 로마서 15:14-19 정리_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웃는사람 2018.10.03 600
204 로마서 15:01-13 새 인류의 삶_사랑으로 행해야 할 이유 웃는사람 2018.10.01 673
203 로마서 14:01-12 새 인류의 삶_연약한 자 받고, 서로 비판하지 말라 웃는사람 2018.09.29 793
202 로마서 13:01-14 새 인류의 삶_로마 사회에서 사는 문제 2 웃는사람 2018.09.28 735
201 로마서 12:09-21 새 인류의 삶_사랑의 원리(개별적 측면) 1 웃는사람 2018.09.27 890
» 로마서 12:01-08 새 인류의 삶_영적 예배와 지체의 원리(공동체적 측면) 웃는사람 2018.09.26 753
199 로마서 11:25-36 새 인류_새 이스라엘_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2 웃는사람 2018.09.25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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