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1:1-21 은혜가 쌓인 자리
가슴을 채운 은혜의 기쁨은, 계산과 의무를 넘어선 자발적인 삶의 헌신과 나눔으로 흘러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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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산하는 마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쉬이 낙심하고, 타인에게 베푸는 것마저도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거래'가 되기 쉽습니다. 소유에 대한 불안은 우리 영혼을 얕게 만들고, 마음의 곳간은 늘 비어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거대한 영적 축제를 막 끝낸 유다 백성의 모습은 이와는 사뭇 다릅니다(역대하 31:1). 그들은 방금 전까지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30:18)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도록 허락받은 이들입니다. 율법의 규정으로는 '부정하다'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연약함을,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 "고치셨습니다"(30:20). 이 예상치 못한, 조건 없는 은혜의 환대가 그들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였습니다.
그 뜨거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가장 먼저 무엇을 합니까? 그들은 유다와 베냐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 흩어져 있던 주상들과 아세라 목상들, 산당과 제단들을 "다 제거하여 없앱니다"(31:1).
이것은 왕의 강압적인 명령에 따른 숙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은혜 입은 자'의 자발적인 응답이었습니다. 참된 빛을 만난 이들이 스스로 어둠을 걷어내는 몸짓이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을 옭아매고 불안하게 했던 거짓 신들, 풍요와 안정을 약속하며 실은 영혼을 잠식했던 우상들로부터의 결별 선언입니다. 시인 릴케가 아폴로 조각상 앞에서 "너는 너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깊은 울림을 들었던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 앞에서 자신들의 낡은 삶을 부수는 결단을 감행합니다.
기쁨의 응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백성의 몫을 가져오라 명했을 때(31:4), 백성들은 "풍성하게" 가져왔습니다(31:5).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 그리고 모든 소산의 십일조가 모이고 모여 "더미를 이루었습니다"(31:6). 셋째 달부터 일곱째 달까지, 그들의 감사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것은 세금이 아니었습니다. 의무의 이행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낭비'였습니다. 은혜로 영혼이 충만해진 이들이, 자신의 소유가 더 이상 자신을 규정하지 못함을 깨닫고 기꺼이 흘려보내는 환희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발로였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혹 신앙을 차가운 의무의 목록으로 오해하고 계신 이웃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의 목록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먼저 '무엇을 받았는가'를 깊이 사유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고치시고' 받아주신 그 크신 은혜가 먼저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 가슴에 차오를 때, 우리는 비로소 계산하는 마음을 멈출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을 짓누르던 헛된 우상들을 기꺼이 깨뜨릴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나의 소유를 '더미'로 쌓아 나누면서도 아까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도리어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은혜로 우리를 넘치게 하사 자발적인 기쁨의 응답자로 세우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 은혜가 쌓인 자리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을 다하여' 행하는(31:21) 형통한 삶이 무엇인지 맛보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