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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09:22-45 삼 년 뒤에 보내신 영, 소금 뿌린 성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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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하나님이 그와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니, 칠십 형제를 죽인 피의 값이 두 편 모두에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22-25절). 그 틈에 에벳의 아들 가알이 들어와 세겜의 신뢰를 얻고 포도주 잔치 자리에서 아비멜렉을 저주하며 반란을 선동합니다(26-29절). 성읍의 방백 스불이 이를 몰래 알리고 매복 작전을 일러 주자 아비멜렉이 밤에 네 떼로 나누어 숨습니다. 성문 앞에 선 가알은 큰소리와 달리 맥없이 패해 쫓겨납니다(30-41절). 이튿날 아비멜렉은 밭으로 나온 백성을 치고 종일토록 성을 쳐서 점령한 뒤,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립니다(42-4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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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본문에서 요담은 그리심 산에 올라 나무 우화를 외치고 브엘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는 아비멜렉과 세겜이 서로에게서 나온 불로 함께 타리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이 어떻게 이루어지기 시작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만 화자는 요담의 저주가 이루어졌다고 적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으로 시작했다고 적습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 이 이야기의 첫 단추입니다.

# 세겜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 좁은 목에 놓인 성읍이었습니다. 남북을 잇는 길과 동서로 가는 길이 여기서 만나기 때문에 예부터 통행세와 교역으로 살아온 곳입니다. 세겜 사람들이 산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지나는 자를 강탈했다는 말은 그 길을 스스로 막았다는 뜻입니다. 성읍의 젖줄을 끊어서라도 왕에게 손해를 입히겠다는 것이니, 반란은 이미 이 대목에서 자기 발등을 찍고 있었습니다.

# 성읍의 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었습니다. 성벽에서 가장 두꺼운 자리에 여러 겹의 방을 두어 지은 문간은 재판과 계약과 장이 함께 서던 광장이었습니다. 룻기에서 보아스가 장로들을 청해 앉힌 곳도 거기였습니다. 그래서 성문 앞에 선다는 것은 곧 그 성읍의 공적 권위를 대표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같은 표현을 두 번 쓰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 사사기는 예언서가 아니라 내러티브입니다. 화자는 설명 대신 장면과 낱말을 배치해 판단하게 합니다. 아홉 장에는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대신 악한 영이 보내집니다. 사사들에게 임하던 영과 아비멜렉에게 보내진 영이 정면으로 대비됩니다. 왕이 없던 시대의 어둠이 여기서 가장 짙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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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5절 삼 년 뒤에 보내신 영

하나님은 악인의 형통을 잠시 허락하시되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며, 흘린 피의 값을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반드시 물으시는 공의의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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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삿 9: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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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삼 년이라는 시간을 보아야 합니다. 한 바위 위에서 칠십 명이 죽고 요담이 저주를 외친 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삼 년을 흘려보냈습니다. 아비멜렉은 왕 노릇을 했고 세겜은 조용했습니다. 이 삼 년이야말로 성경을 읽는 이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시간을 우리는 늘 하나님의 부재로 읽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삼 년을 잊으신 시간이 아니라 재고 계신 시간으로 적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심입니다. 시편 기자도 악인의 형통을 보며 발이 미끄러질 뻔했다고 고백했지만, 성소에 들어가서야 그들의 결국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삼 년은 하나님께 짧고 사람에게 깁니다.

다음은 악한 영입니다. 히브리 말로 루아흐 라아이며, 사울에게 임했던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과 같은 표현입니다. 성질이 악한 영이라는 뜻보다는 악한 일을 맡아 보내진 영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이 악의 조성자가 되신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악으로 가득한 동맹을 그 악한 성질 그대로 무너지게 놓아두신다는 뜻입니다. 사사들에게는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백성을 구원하게 하셨는데, 여기서는 악한 영이 보내져 악인끼리 무너지게 합니다. 구원의 영과 심판의 영이 나란히 놓입니다. 아홉 장 전체에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말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이 대비를 더 날카롭게 만듭니다.

셋째로 화자가 밝히는 심판의 이유를 보십시오. 세겜이 아비멜렉과 맺은 계약을 어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 때문입니다. 무죄한 피가 심판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그 값은 아비멜렉에게만이 아니라 손을 빌려준 세겜 사람들에게도 돌아갑니다. 돈을 대어 준 손, 눈감아 준 손, 박수를 쳐 준 손이 모두 그 피에 닿아 있었습니다. 가인이 죽인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었듯, 흘린 피는 땅에 스며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의 귀에 닿습니다. 화자가 주동자와 동조자를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묶어 둔 것도 그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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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지난 세월 겪어 온 일들 앞에서 우리는 자주 조급해집니다. 잘못이 분명한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동안 어떤 이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단정하고, 어떤 이는 자기 손으로 갚으려 하다가 같은 자리로 떨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세 번째 길을 보여 줍니다. 기다리는 길입니다. 다만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반드시 물으신다는 것을 알고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기다림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억울한 일 앞에 서 계시다면 먼저 그 일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놓아 두십시오. 셈은 그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쪽도 함께 살펴 주십시오. 내가 어떤 일에 손을 빌려주고 있지는 않은지, 직접 하지는 않았어도 돈을 대거나 눈을 감거나 박수를 쳐 준 자리는 없는지 말입니다. 본문은 주동자와 동조자를 나누지 않습니다. 한 손으로 맺은 일은 한 손으로 갚아집니다. 오늘 하루 우리 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살피는 것이 이 말씀의 첫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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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29절 문 앞에서 커진 입

하나님은 허세로 세운 자리를 오래 두지 않으시는 분이시며, 사람의 마음이 쉽게 옮겨 가는 그 얄팍함까지 아시고 그 위에 심판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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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삿 9: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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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알이라는 이름부터 눈에 걸립니다. 이 이름에는 싫다, 지긋지긋하다, 역겹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아버지 이름으로 소개된 에벳은 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에벳의 아들 가알은 역겨운 종의 아들쯤으로 읽힙니다. 화자는 이 사람에게 지파도 족속도 붙여 주지 않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사람이 형제들을 데리고 들어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했다고 적습니다. 첩의 아들에게 은 칠십 개를 대어 주었던 그 손이 이번에는 종의 아들에게 성읍을 맡깁니다.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 아예 사라진 성읍의 모습입니다.

잔치 장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밭에서 포도를 거두어 밟아 짜 마셨다는 것은 그해 농사가 잘되었다는 뜻입니다. 여섯 장에서 기드온이 미디안 때문에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떨던 것과 견주어 보면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풍요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가 신당으로 들어갑니다. 바알에게 제사하는 자리에서 먹고 마시며 왕을 저주합니다. 여기서 저주한다는 말은 신 앞에서 계약을 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들이 세운 왕을 자기들의 신 앞에서 공식적으로 파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우상의 상을 차리고, 그 상 앞에서 사람을 세웠다 무너뜨립니다.

가알의 말은 더 노골적입니다. 아비멜렉은 여룹바알의 아들이니 세겜과 무슨 상관이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기라고 합니다. 아비멜렉이 외가의 혈연을 내세워 왕이 되었는데, 가알은 같은 논리를 뒤집어 그를 밀어냅니다. 골육이라는 말로 얻은 자리를 골육이라는 말로 잃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우리라고 말합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우리를 입에 달고 세겜 편에 자기를 끼워 넣습니다. 마지막 말은 허공에 대고 하는 도발입니다.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 정작 아비멜렉은 그 자리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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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앞에서 하는 큰소리는 언제나 값이 싸고, 그래서 사람을 쉽게 취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그런 말이 넘칩니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하는 평가,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화면 너머의 단정이 그러합니다. 그런 말은 잠시 통쾌하지만 아무것도 세우지 못하고, 말한 사람의 속을 먼저 비게 만듭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한 가지만 지켜 보십시오. 그 사람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지켜도 공동체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세겜 사람들의 얄팍함도 우리의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그들은 은 칠십 개에 마음을 주었다가 포도주 한 잔에 마음을 옮겼습니다. 사람이 미덥지 못한 것이 아니라 기준이 없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기준이 없는 마음은 가장 최근에 들은 말을 따라갑니다. 말씀을 날마다 붙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제 들은 말씀이 오늘 들은 소문을 이기게 하는 것, 그것이 말씀을 붙드는 사람의 힘입니다. 세겜에는 그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가장 크게 말하는 사람이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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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41절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허세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놓아두시는 분이시며, 크게 벌린 입 앞에 그 말의 값을 치를 자리를 마련해 두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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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읍의 방백 스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하여 사자들을 아비멜렉에게 가만히 보내어 이르되 보소서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의 형제들이 세겜에 이르러 그 성읍이 당신을 대적하게 하니"(삿 9:30-31).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삿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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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불은 세겜의 방백입니다. 방백으로 옮긴 사르는 왕 다음가는 자리를 가리키는 말로, 시스라가 야빈의 사르였고 오렙과 스엡이 미디안의 사르였습니다. 가알은 스불이 아비멜렉의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를 잔치에 불러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스불은 넘어가지 않고 곧장 밀고하며 작전까지 일러 줍니다. 밤에 매복하고 아침 해 뜰 때 엄습하라는 것입니다. 충성처럼 보이지만 이 충성도 결국 아비멜렉의 심판을 앞당기는 한 고리일 뿐입니다. 성경은 이 사람을 칭찬하지도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가 놓인 자리를 보여 줄 뿐입니다.

싸움의 장면은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알이 성읍 문 입구에 섰다고 화자는 적습니다. 성문 앞은 그 성읍의 권위가 앉는 자리이니, 그는 이미 제가 왕이 된 듯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산에서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가알이 이상하다고 하자 스불은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다고 둘러댑니다. 아비멜렉이 더 가까이 오도록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가알이 다시 보니 한 떼는 밭 가운데로,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로 오고 있었습니다. 이 므오느님이라는 말은 대답하는 자들이라는 뜻이어서, 점치는 자의 상수리나무로 옮기는 것이 낫다고 보기도 합니다. 점괘로 앞일을 묻던 자리로 진짜 군대가 밀려오는 셈입니다.

그리고 스불의 한 마디가 떨어집니다.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영어 성경 하나는 이 대목을 네 큰소리가 지금 어디 있느냐로 옮깁니다. 이어서 그는 이들이 네가 업신여기던 그 백성이 아니냐, 청하노니 이제 나가서 싸우라고 합니다. 겉은 정중하지만 속은 조롱입니다. 여기서 물러서면 가알은 거짓말쟁이가 되므로 그는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입이 자기를 몰아낸 것입니다. 전투 자체는 한 절로 끝납니다.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얼마나 맥없이 무너졌는지를 보여 주려는 화자의 솜씨입니다. 그는 싸우다 쫓기고 부상자는 성문 입구까지 널브러졌으며, 스불은 그를 세겜에서 내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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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앞서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 서면 목소리가 먼저 커집니다. 회의석에서, 모임의 앞자리에서, 가족 앞에서 우리는 지킬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크게 말하곤 합니다. 그 조금이 쌓이면 어느 날 스불의 질문이 찾아옵니다.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한국교회도 이 질문 앞에 여러 번 서 왔습니다. 선포한 것과 살아 낸 것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 때마다 세상은 정확히 그 자리를 물었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는 말을 한 뼘만 줄여 보십시오. 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할 수 있는지 한 번만 더 헤아리고, 약속은 지킬 수 있는 크기로만 하십시오. 작게 말하고 그대로 지키는 사람의 말은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크게 말하고 지키지 못한 사람의 말은 아무리 옳아도 가벼워집니다. 믿음의 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말과 삶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말한 것을 지켰는지를 기억합니다. 지켜진 작은 약속 하나가 백 마디 훈계보다 오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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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45절 소금 뿌린 성읍

하나님은 승리가 곧 정당함이 아님을 보여 주시는 분이시며, 이긴 자의 잔인함까지 낱낱이 보시고 그 값을 곧 물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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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과 그 떼는 돌격하여 성문 입구에 서고 두 무리는 밭에 있는 자들에게 돌격하여 그들을 죽이니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삿 9: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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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리를 보십시오. 서른다섯 절에서 가알이 섰던 성읍 문 입구와 마흔네 절에서 아비멜렉이 선 성문 입구는 히브리 원문에서 똑같은 말입니다. 우리말 번역이 조금 달라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입니다. 화자는 같은 낱말을 두 번 놓아 두 사람을 포개어 보게 합니다. 가알이 쫓겨난 그 자리에 아비멜렉이 섰습니다. 자리는 그대로이고 사람만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선 두 사람 모두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합니다. 권력의 자리가 사람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선 사람이 그 자리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을 본문은 두 번에 걸쳐 보여 줍니다.

다음은 아비멜렉의 행동입니다. 그가 친 사람들은 무장한 반란군이 아니라 이튿날 밭으로 나온 백성들이었습니다. 가알은 이미 쫓겨났고 반란의 머리는 사라졌는데, 그는 종일토록 성을 쳤습니다. 목적을 이룬 뒤에도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심판의 도구로 쓰인 사람이 도구의 자리를 넘어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 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더구나 세겜은 그의 어머니의 성읍이며 그를 왕으로 세워 준 곳입니다. 골육이라는 말로 얻은 자리를 그는 그 골육을 죽이는 것으로 갚았습니다. 하나님이 갚으시겠다 하신 포학이 여기서 더 큰 포학으로 되풀이됩니다.

마지막은 소금입니다.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는 장면은 성경에서 여기 한 번 나옵니다. 고대 근동의 기록들에 비추어 보면 정복한 성읍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었다고도 하고, 반역을 억누르는 표시였다고도 하며, 다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하라는 저주였다고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뜻은 하나로 모입니다. 다시는 여기서 생명이 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땅의 미래까지 죽이려 한 손입니다. 그러나 이 장이 끝나기 전에 그는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가 깨집니다. 성을 헐던 손이 돌 하나에 멈춥니다. 요담의 저주가 두 편 모두에게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승리한 자리에서 멈추지 못한 손이 결국 제 머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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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쪽이 옳은 쪽이라는 셈법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착각입니다. 아비멜렉은 이겼고 세겜은 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울에서는 둘 다 진 편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종종 결과로 판단해 왔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옳은 것이고 무너지면 틀린 것이라는 셈이 오래 통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셈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 오늘 어떤 다툼에서 이기셨다면 이긴 다음의 한 걸음을 조심해 주십시오. 이겼으니 조금 더 가도 된다는 마음이 가장 위험합니다. 목적을 이룬 자리에서 멈추는 것이 승리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가정과 일터에서 소금을 뿌리는 말을 하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 다시는 여기서 아무것도 자라지 말라는 뜻의 말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 이제 끝이라는 말이 그러합니다. 그 한 마디가 한 사람의 땅을 몇 해씩 불모지로 만듭니다. 주님은 우리를 소금으로 부르셨으되 땅을 죽이는 소금이 아니라 맛을 내는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

*

# 거둠의 기도

주님,

악인이 잘되는 삼 년을 보면서도

주님이 잊으신 것이 아님을 믿게 하소서.

흘린 피를 기억하시는 분,

때를 재고 계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 손으로 갚으려 하지 않게 하시고

그 셈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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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앞에 서는 날이 오거든

큰소리부터 나오지 않게 하소서.

없는 자리에서 사람을 재단하지 않게 하시고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않게 하소서.

지킬 수 있는 크기로만 약속하게 하시고

말과 삶의 거리를 좁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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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다음의 한 걸음을 조심하게 하소서.

목적을 이룬 자리에서 멈추게 하시고

소금을 뿌리는 말을 거두게 하소서.

사람의 땅을 불모지로 만들지 않게 하시고

다시 자라날 수 있는 말을 건네게 하소서.

맛을 내는 소금으로 살게 하소서.

.

참된 왕이신 주님,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그분을 따라

낮은 자리에서 섬기게 하소서.

우리의 자리가 우리 것이 아니라

맡겨진 자리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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