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사기 16:15-31 밀린 머리털 위에 다시 돋는 은혜, 무너진 다곤의 집

*

들릴라가 날마다 조르자 삼손은 마침내 나실인의 비밀을 털어놓고,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든 사이 머리털이 밀리며 힘이 떠납니다(15-19절).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떠나신 줄도 모른 채 붙잡혀 두 눈을 뽑히고 가사의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됩니다(20-21절). 그러나 화자는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고 조용히 적어 둡니다(22절).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이 원수를 넘겨주었다며 큰 잔치를 벌이고 삼손을 불러 웃음거리로 삼습니다. 두 기둥 사이에 선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자 신전이 무너지고, 그가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보다 많았습니다(28-30절). 그는 아버지의 장지에 묻히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낸 삶이 거기서 끝납니다(31절).

*

# 앞 장면에서 삼손은 가사의 기생에게 들어갔다가 한밤중에 성 문짝과 두 문설주와 빗장을 뽑아 헤브론 앞 산꼭대기까지 메고 올라갔습니다. 힘은 여전했으나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는 점점 잊혀 가고 있었습니다. 이어 그는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를 사랑하게 되었고, 블레셋 방백들은 그녀에게 각각 은 천백 개를 주겠다며 삼손의 힘의 비밀을 캐내라고 합니다. 삼손은 새 활줄과 새 밧줄과 베틀의 머리털 이야기로 세 번 그녀를 속였고, 세 번 모두 블레셋 사람이 들이닥쳤다는 외침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네 번째 밤에서 시작합니다.

# 나실인의 서원은 민수기 6장에 정해져 있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서원한 기간 동안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입니다. 삼손은 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자의 주검에서 꿀을 떠먹었고 잔치 자리에 앉았으며 수많은 주검을 만졌습니다. 세 가지 표지 가운데 두 가지는 이미 무너졌고 남은 하나가 머리털이었습니다. 머리털 자체에 마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머리털이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라는 마지막 표였던 것입니다.

# 가사는 블레셋 다섯 성읍 가운데 가장 남쪽,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 곳이었습니다. 삼손이 성 문짝을 메고 나오며 조롱했던 바로 그 도시에 이제 그는 눈먼 죄수로 끌려갑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다곤은 곡식과 풍요를 주관한다고 여겨진 신으로, 뒷날 법궤 앞에 엎드러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진 채 발견되는 바로 그 신입니다(삼상 5:4). 사사기의 삼손 이야기는 결국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다곤 가운데 누가 참 신인가를 묻는 무대에서 막을 내립니다.

*

# 15-21절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한 사람

성부 하나님은 우리가 가볍게 여긴 구별의 표지를 끝까지 존중하시되, 그 표지를 스스로 내어 준 자리에서는 조용히 물러나시어 우리의 교만을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삿 16:20-21).

.

들릴라의 말은 사랑의 언어로 포장된 추궁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는 말은, 앞서 딤나의 아내가 수수께끼의 답을 캐낼 때 울며 했던 말과 거의 같은 결입니다. 삼손은 같은 방식으로 두 번 무너집니다. 날마다 조르매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옮긴 표현은 직역하면 그의 영혼이 짧아져 죽을 지경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블레셋 군대도 끊지 못한 사람을 한 여인의 끈질긴 말이 끊었습니다. 가장 강한 사람의 약점은 대개 힘이 아니라 마음의 자리에 있습니다. 삼손은 마침내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것이 이 장에서 처음인데, 그 첫 고백이 가장 소중한 것을 넘겨주는 말이 되었습니다. 방백들은 손에 은을 가지고 올라옵니다. 거룩한 비밀이 은과 맞바꾸어지는 장면입니다.

19절의 괴롭게 하여라는 말은 원문에서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표현입니다. 여기 쓰인 시작하다라는 동사가 삼손 이야기를 꿰는 실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했고(13:5), 여호와의 영이 마하네단에서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13:25). 그런데 이제는 들릴라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이야기를 사람이 다른 시작으로 덮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문장이 이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눈여겨볼 것은 이야기 전반부에서 여러 번 언급되던 여호와의 영이 16장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이 떠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했습니다. 습관은 남아 있었으나 능력의 근원은 이미 거기 없었습니다.

자기 눈에 좋은 여자들만 좇던 사람이 결국 눈을 잃습니다. 눈이 욕망의 통로였으니 그 통로가 막힌 것입니다. 성 문짝을 메고 헤브론 쪽으로 올라갔던 사람이 이제 가사로 끌려 내려가 맷돌 일에 매입니다. 들릴라는 이 장면을 끝으로 이야기에서 사라집니다. 다섯 방백이 각각 은 천백 개씩 약속했으니 그녀가 쥔 것은 막대한 재물이었고, 목적을 이룬 뒤 그녀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삼손의 사랑은 끝까지 짝사랑이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사랑을 속삭이지만 결국 우리를 은 몇 개와 바꾸고 돌아서 갑니다. 윌코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손이 이스라엘을 대표한다면 유혹하는 이웃 나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미심쩍은 관계가 여기서 한 여인과 한 남자의 관계로 그려졌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읽으면 한 영웅의 사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

오늘 본문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야 할 문장은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셔도 우리의 일상은 한동안 그대로 굴러갑니다. 예배의 순서도 그대로이고, 늘 하던 기도의 말도 입에 붙어 있고, 교회의 일정표도 빼곡합니다. 한국교회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교인 수의 감소보다 이 깨닫지 못함입니다. 영이 떠난 뒤에도 습관만으로 한동안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가 해마다 행사를 치르는 교회보다 날마다 그분의 계심을 확인하는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개인의 삶에서도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내 안에 들릴라처럼 날마다 조르는 목소리가 있는지, 그 목소리에 영혼이 짧아져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주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그것은 스마트폰 화면일 수도, 승진의 조급함일 수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구별의 표지는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닙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 아침에 말씀을 여는 일, 가정에서 함께 드리는 짧은 기도가 우리 시대의 머리털입니다. 그것을 하나씩 내어 주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날 전과 같이 나가 몸을 떨쳐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날이 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오늘 내가 지키고 있는 작은 표지 하나를 다시 붙드십시오. 또 한 가지, 들릴라의 무릎이 은으로 값이 매겨진 자리였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가장 편안하게 기대는 자리가 사실은 나를 팔아넘길 준비를 하고 있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편안함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편안함이 경계를 녹여 버릴 때 우리는 잠든 사이 가장 귀한 것을 잃습니다. 오늘 내가 가장 오래 머리를 기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두는지 멀리 두는지 조용히 살펴보십시오.

*

# 22-25절 맷돌 곁에서 다시 자라는 것

성령 하나님은 사람이 다 끝났다고 여기는 옥중의 맷돌 곁에서도 새 시작의 싹을 틔우시고, 조롱받는 자리 한복판에서 은혜의 시간을 이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삿 16:22-23).

.

22절은 사사기에서 가장 짧고 가장 조용한 은혜의 문장입니다. 기도했다는 말도, 회개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다만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고만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도 앞에서 본 시작하다라는 동사가 쓰입니다. 들릴라가 괴롭히기 시작한 자리에서 이제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죄가 가로챈 이야기를 하나님은 거기서 끝내지 않으십니다. 다시 자라기로 옮긴 히브리 말은 땅에서 싹이 돋아나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에서 왔고, 비유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옥에 갇힌 사람의 머리 위에서 봄의 싹이 돋듯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박유미 교수는 이 한 절이 새 나실인 서약의 시작이며, 하나님이 삼손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니라는 표시라고 풀이합니다. 머리털 자체에 마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기회를 가리키는 상징이라고 읽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분명한 것은 은혜가 삼손의 결단보다 먼저 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우리의 회개를 기다려 출발하지 않고,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부르기 위해 먼저 출발합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머리털이 자라는 것은 보았겠지만, 그들이 알지 못한 분이 계셨습니다. 오래전에 이 아이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분입니다(13:7). 삼손이 그 약속을 가볍게 여겼어도 약속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십니다(딤후 2:13).

그러나 같은 시간 가사의 다른 쪽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방백들이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는데, 그들의 노래에는 우리라는 말이 가득합니다.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는 것입니다. 대적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신다는 말은 사사기에서 늘 여호와께 쓰이던 표현인데, 그 말을 이제 이방인이 자기 신에게 돌립니다. 삼손 한 사람의 실패가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이어 그들은 삼손을 불러내 재주를 부리게 합니다. 재주를 부리다로 옮긴 말은 웃다라는 동사의 강의형으로 그들을 웃게 만들다라는 뜻이니, 눈이 뽑힌 사람이 끌려 나와 웃음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자라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곤의 잔치가 가장 시끄러울 때 하나님의 일은 가장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싹을 가리키는 이 동사는 더 먼 곳까지 우리를 데려갑니다. 장차 오실 이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라 부른 예언이 그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삼손에게 다시 돋은 것은 한 번의 힘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돋은 것은 다시는 밀리지 않는 생명입니다.

.

삶이 맷돌 곁에 앉은 것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한때 힘 있게 일하던 자리에서 밀려나고, 자기 잘못으로 잃은 것들이 너무 커서 다시 일어설 생각조차 들지 않는 때입니다. 그런 때 우리는 하나님도 나를 떠나셨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도 성령께서는 무언가를 다시 돋게 하십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몇 해 동안 세상의 조롱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회의 실패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만든 일도 있었고, 그 책임은 분명히 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나 조롱의 잔치가 무르익는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은밀히 새 싹을 틔우고 계십니다. 광양사랑의교회가 그 조용한 싹을 알아보는 눈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넘어진 가족을 향해서도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자녀가 무너졌을 때, 배우자가 스스로 만든 옥에 갇혔을 때, 우리는 쉽게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밀린 자리에서 다시 자라게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싹이 돋는 동안 곁에서 비웃지 않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일터에서도 한 번 실패한 동료를 다곤의 잔칫상 앞의 웃음거리로 만들지 마십시오. 사람을 웃음거리로 삼는 자리는 늘 무너지기 직전의 신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회개보다 먼저 출발한다는 사실을 붙드십시오. 머리털은 삼손이 기도하기 전부터 자라고 있었습니다. 내가 먼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미 당신의 머리 위에서 은혜가 자라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돌아갈 자격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은혜에 응답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

# 26-31절 두 기둥 사이에서 드린 마지막 기도

성자 하나님은 원수와 함께 죽기를 구한 삼손과 달리, 원수를 위해 기도하시며 홀로 죽으심으로 사망의 집을 무너뜨리시고 우리를 살리신 분이십니다.

.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삿 16:28).

.

삼손은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의지하게 해 달라 부탁합니다. 한때 성 문짝을 메던 사람이 소년의 손에 이끌려 다닙니다. 그는 자기 의도를 다 말하지 않았고, 읽는 사람도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합니다. 화자는 곧 신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고, 지붕에 있는 남녀만 삼천 명가량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삼손을 구경거리로 세웠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를 자기 이름을 드러내실 무대로 쓰십니다.

그리고 삼손이 부르짖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이 부르짖음에 쓰인 동사가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쓰인 말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화자는 그 외침을 공동체의 호소가 아니라 한 사람의 곤경에 대한 호소로 구별해 둡니다. 앞 절에서 블레셋이 그를 조롱하려고 불러냈다는 말도 같은 동사입니다. 원수가 그를 불렀고 이제 그가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의 첫 간구는 나를 생각하옵소서입니다. 생각하다로 옮긴 말은 기억하다라는 뜻으로, 방주 속의 노아를 기억하시고 성전에서 울던 한나를 생각하셨다고 할 때 쓰인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기억하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다음 말은 삼손다운 말입니다. 문자적으로 옮기면 내 두 눈의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 달라는 뜻에 가까워, 그의 관심이 끝까지 개인의 복수에 머물렀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힙니다. 몸을 굽히매로 옮긴 말은 본래 뻗다라는 뜻이어서, 두 기둥을 힘껏 밀어냈다고 보는 편이 알맞습니다. 화자는 그가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고 적습니다. 이 장면을 삼손의 큰 승리로 읽는 이들이 있고, 전성민 교수는 살아 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은 삶이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로 읽습니다. 두 읽기는 함께 붙들어야 할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온전치 못한 동기까지 쓰셔서 다곤의 집을 무너뜨리셨으나, 그 동기의 책임은 삼손의 것이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시체를 거두어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를 처음 움직이기 시작하신 그 땅, 시작의 자리로 돌아와 묻힌 것입니다. 그 이십 년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블레셋의 통치 아래 있었으니, 삼손은 구원을 시작했을 뿐 끝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무덤 앞에서 또 한 분을 떠올립니다. 삼손은 원수와 함께 죽기를 원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를 위해 죽으시며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그분의 두 팔은 원수까지 끌어안으려 십자가 위에 벌려졌고, 그 죽으심으로 사망의 권세 자체가 무너졌습니다(히 2:14).

.

삼손의 마지막 기도에서 배울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기도에는 늘 섞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내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고, 주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내 두 눈의 억울함을 앞세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것은 우리 기도가 옳아서가 아니라 그분이 기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섞인 기도라도 드리십시오. 다만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해서 내 동기가 정당해졌다고 여기지는 마십시오.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쓰셨으니 괜찮다는 말로 많은 잘못을 덮어 왔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의 욕심이 묻혔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의 부족함까지 쓰신다는 은혜를 감사하되, 그 은혜를 핑계 삼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 삶에서 원수와 함께 무너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갈등이 길어질 때 우리는 차라리 다 무너져도 좋으니 저 사람만은 대가를 치르게 해 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가정의 오랜 갈등도, 일터의 억울함도 그렇게 끝을 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원수와 함께 죽는 길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길을 부름받았습니다. 오늘 내 마음에 가장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면, 그 이름을 두고 저들을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한 줄만 드려 보십시오. 그리고 삼손이 결국 묻힌 곳이 처음 성령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신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였다는 것도 기억해 두십시오. 우리 인생도 결국 처음 부르심의 자리로 돌아가 셈을 하게 됩니다. 그날 남는 것은 내가 무너뜨린 원수의 숫자가 아니라, 처음 주신 부르심에 얼마나 머물렀는가 하는 물음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그 처음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

# 거둠의 기도

주님,

날마다 조르는 목소리에

영혼이 짧아져 버린 저희를

오늘 아침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떠나신 줄도 모른 채

전과 같이 몸을 떨치려던

저희의 습관을 깨뜨려 주옵소서.

.

머리털을 다시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맷돌 곁에 주저앉은 자리에서도

주의 은혜가 먼저 돋아남을 믿습니다.

세상이 조롱의 잔치를 벌일 때에도

주께서 조용히 새 일을 시작하고 계심을

보게 하옵소서.

.

나를 생각하옵소서 부르짖던

섞인 기도까지 기억하시는 주님,

원수와 함께 무너지기를 구하는 마음을

원수를 위해 비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두 팔을 벌려 저희를 품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게 하옵소서.

.

밀린 자리마다 새 싹을 틔우시고

무너진 삶 위에 다시 시작을 주시는 주님,

오늘 하루 작은 구별의 표지를

끝까지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사사기 16:15-31 밀린 머리털 위에 다시 돋는 은혜, 무너진 다곤의 집 new 평화의길벗 2026.10.02 15
1284 사사기 16:01-14 성문을 멘 어깨가 베틀에 묶이기까지, 한 올씩 내어 준 구별됨 new 평화의길벗 2026.10.02 10
1283 사사기 15:01-20 되갚음의 사슬 끝에서 터뜨리신 부르짖는 자의 샘 평화의길벗 2026.09.30 30
1282 사사기 14:01-20 내려가는 걸음, 뒤따르는 손 평화의길벗 2026.09.29 31
1281 사사기 13:15-25 이름을 묻는 손, 기묘자라 하신 분 평화의길벗 2026.09.28 40
1280 사사기 13:01-14 부르짖음이 빠진 사십 년 평화의길벗 2026.09.27 32
1279 사사기 12:01-15 흐르는 강을 막아 선 나루턱 평화의길벗 2026.09.26 36
1278 사사기 11:29-40 값없이 주신 승리, 값을 치른 서원 평화의길벗 2026.09.25 40
1277 사사기 11:12-28 그 사사이신 여호와께서 평화의길벗 2026.09.24 50
1276 사사기 11:01-11 돕 땅에서 불려 온 머리 평화의길벗 2026.09.23 24
1275 사사기 10:01-18 일어난 사사들, 짧아진 하나님의 마음 평화의길벗 2026.09.22 53
1274 사사기 09:46-57 언약의 신 신전에 숨다, 손에 익은 돌 하나 평화의길벗 2026.09.21 53
1273 사사기 09:22-45 삼 년 뒤에 보내신 영, 소금 뿌린 성읍 평화의길벗 2026.09.20 30
1272 사사기 09:07-21 제 열매를 버리지 않은 나무들, 그늘 없는 그늘 평화의길벗 2026.09.19 44
1271 사사기 09:01-06 골육이라 부른 입, 한 바위 위의 피 평화의길벗 2026.09.18 52
1270 사사기 08:22-35 왕은 아니라 하고 금을 거두다 평화의길벗 2026.09.18 52
1269 사사기 08:1-21 떡 한 덩이를 거절당한 밤 평화의길벗 2026.09.16 54
1268 사사기 07:15-25 칼 없는 손에 들린 나팔과 횃불 평화의길벗 2026.09.15 47
1267 사사기 07:01-14 삼백으로 줄이신 손, 보리떡으로 이르신 말씀 평화의길벗 2026.09.14 52
1266 사사기 06:25-40 밤에 헐린 제단, 밤에 내린 이슬 평화의길벗 2026.09.13 5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65 Next
/ 6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