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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1:1-16 한 싹의 혁명

온전한 신앙이란 베어진 밑동에서 새 싹을 틔우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온 존재를 의탁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가마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칠월 하순의 무거운 열기와, 장마의 정체전선이 흩뿌리고 간 대지 위의 청라한 습기가 공기 중에 가득 뒤섞인 한여름의 한복판입니다. 사방에 매미들의 쟁쟁한 노랫소리가 뙤약볕을 뚫고 쏟아져 내릴 때면, 우리의 정서 역시 씻겨가지 않는 삶의 피로와 예기치 못한 영적 갈증 때문에 시뜻하게 늘어지곤 합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나의 쓸모와 존엄함을 스스로 증명해 내기 위해 바짝 긴장한 채 버둥거리며 살아가다가, 뜻하지 않은 삶의 붕괴나 신앙적 회의감 때문에 깊고 어두운 고독의 골짜기에서 눈물짓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더 뜨겁고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겨우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아 피로한 하루를 보내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절망의 그루터기에서 기어이 푸른 생명의 기적을 시작하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지나가는 한여름의 들판 길을 걷다 보면, 오래전에 둥치가 밑동째 사정없이 베어져 나가 죽은 고목이라 여겼던 그루터기의 갈라진 살 틈 사이로,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연약하고도 청신한 연초록 잎사귀 하나가 조용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경이로운 풍경을 가만히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가파른 지혜는 그 베어짐이 생명의 끝이자 죽음의 선언이라 낙담했지만, 대지의 심장 깊은 곳에 은밀하게 숨겨진 창조주의 수맥은 그 상처 입은 나무의 바닥에서부터 다시금 눈물겨운 부활의 숨결을 조심스럽게 길어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고요한 영혼의 숨을 죽이며 마주하는 이사야 11장의 풍경이 들려주는 비전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기원전 8세기는, 거대하고 빽빽한 백향목 숲처럼 웅장한 위세를 자랑하던 앗수르 제국의 군사력이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던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그 교만한 도끼날 앞에서 예루살렘의 견고한 기둥들과 인간이 쌓아 올린 오만의 성채들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밑동째 잘려 나가 황무지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모든 소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역사적 파국의 폐허 위에, 주님은 영웅들의 화려한 군마 소리가 아니라 지극히 비천하고 숨겨진 그루터기 하나를 가만히 보여주십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사 11:1). 하나님은 솔로몬 왕궁의 화려한 영광이 아니라, 이새라는 평범한 베들레헴 시골 농부의 부러진 밑동, 더 이상 자랑할 배경도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무덤 같은 그 남루한 바닥에서부터 당신의 새로운 약속을 싹틔우십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솟아난 그 가녀린 한 싹이 바로 아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사야는 이 그루터기에서 피어난 부드러운 싹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권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사 11:2)이 머무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가 다스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겉포장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공평으로 가련한 자를 신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입니다(사 11:3-4). 참된 거룩함이란 높은 자리에 앉아 타인을 함부로 가르고 배제하는 지배의 칼날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를 창조하신 주님의 마음에 온 영혼을 비끄러매어 내 안에 숨겨진 날 선 이기심을 녹여내고, 곁에 있는 지치고 헐벗은 이들의 아픔 속으로 조용히 풍덩 뛰어드는 아프고도 다사로운 환대입니다.

이 싹에서부터 뻗어 나간 생명의 가지는 마침내 온 우주를 가로지르고 있던 약육강식의 비정한 지배 논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장면을 직조해 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사 11:6). 강자가 약자를 삼켜 제 배를 채우는 제국의 먹이사슬 문법 속에서, 예언자는 서로의 존재를 찌르던 날카로운 이빨과 폭력성이 고요히 해독되는 평화의 정원을 보여줍니다. 이 장엄한 평화는 힘센 사자가 소처럼 순하게 풀을 먹으며 제 움켜쥐려던 발톱을 거둘 때, 즉 강한 자들이 스스로 약해져서 타자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자발적인 비움에서 비로소 피어납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그의 시에서 평화를 향한 이 눈물겨운 상상력을 이렇게 노래하셨습니다. "모든 포탄에 뻐꾸기를 발사합니다 무기 공장에 비둘기를 발사합니다." 세상의 이기적인 질서에 눈이 멀어 곁에 있는 동료 인간마저 내 번영을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하려던 타락을 멈추고, 존재 그 자체를 선물로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향유할 때,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모든 적대감의 담장은 소리 없이 스러지게 됩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임이니라"(사 11:8-9). 이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는 우리가 얼마나 완벽한 도덕성을 증명해 내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수많은 상처와 시행착오 속에도 기어코 찾아오셔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온 세상에 당신의 자비로운 지식을 가득히 채우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 때문에 마침내 당당한 현실이 될 것입니다(사 11:9).

나를 지키기 위해 세상이 강요하는 수직적 경쟁의 중력에 몸을 던지던 시끄러운 질주를 멈추고, 이 이새의 싹이 열어내는 평화의 수맥 위에 우리 존재를 포개어 얹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참된 묵상이란 내 욕망을 종교적으로 포장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조종하려던 이기적인 기만을 미련 없이 멈추는 일입니다. 세상의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대한 창조적 이야기에 내 흔들리는 정서를 잠잠히 정돈해 넣으며, 끊어진 영혼의 날줄을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에 고쳐 드리우는 거룩한 안식이자 깊은 사귐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성경 말씀의 주름진 틈새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내면의 소음을 끌 때, 세상이 으스대는 앗수르의 무력과 기득권의 담장이 한낱 찰나의 연기처럼 허망하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게 됩니다. 흩어진 남은 자들을 마침내 돌이키사 큰길을 열어내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평화의 통로로 우리는 부드럽게 빚어지는 것입니다(사 11:10-16).

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차가운 바람에 휩쓸려 사막 한구석 메마르고 좁은 바위 틈새로 홀로 뚝 떨어진 한 장의 가녀린 민들레 홀씨가 싹을 틔우는 방식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처세술과 매정한 제국의 지혜는 그 헐벗은 홀씨에게 "이 거칠고 사나운 메마른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너 스스로 날카롭고 단단한 강철 가시가 되어 곁에 있는 흙을 찌르고 움켜쥐어 네 강함을 온 세상에 입증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강해지려 바짝 힘을 주며 버둥거리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자아는 점점 더 팽팽하게 굳어지다 결국에는 한 방울의 생기도 얻지 못한 채 말라 죽어가는 비극을 맞이할 뿐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신 위대한 농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사납고 딱딱한 가시가 되라고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아무런 자체 힘도 없고 바람에 속절없이 흩날리던 그 보잘것없는 가녀린 홀씨를 가만히 들어 올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라는 마르지 않는 지하 수맥의 틈새 속에 잠잠히 안돈시키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굳세어지려던 모든 헛된 소란과 무기를 내려놓고 말씀의 물길에 우리 존재의 뿌리를 지며리 대고 있을 때, 비로소 사막의 흙먼지 속에서 죽어가는 듯했던 우리의 남루한 일상은, 단단하던 바위마저 부드럽게 가르고 일어나 사막의 그 메마르던 황무지 전체를 온통 찬연하고 은은한 노란색의 평화의 꽃밭으로 풍성하게 뒤덮어내며 목마른 이웃들에게 가장 다사로운 생명의 쉼터를 선사해 주는 은혜의 온상으로 경이롭게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초목들의 초록 잎새가 장맛비에 씻겨 한없이 팽팽해지는 이 눈부신 7월, 나를 증명하기 위해 타인을 이겨내려는 세상의 매정한 수직적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마음을 하나님의 순결한 성품에 조율하는 깊은 묵상의 자리에 고요히 엎드리며,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은혜에 의지해 내 곁에 있는 지치고 슬픈 이웃들의 자리를 다사롭게 지켜주는 찬란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유튜브로 보기 : https://youtu.be/cHLtPhAsz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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