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1-17 들포도 우거진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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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움켜쥠을 내려놓고 말씀의 기류에 온 존재를 얹어 이웃 곁에 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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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의 눅눅한 습기와 한여름의 끈적이는 무더위가 온 산하를 무겁게 가라앉히는 아침입니다. 세찬 소나기가 한바탕 대지를 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싱그러운 초록의 풀비린내가 공기 중에 아련히 퍼져 가지만, 정작 우리의 내면은 가시지 않는 삶의 갈증과 예기치 못한 우여곡절 때문에 시뜻하게 시들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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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잠잠히 응시하는 이사야 5장의 풍경은, 지극히 아름다운 사랑 노래로 문을 열지만, 이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비장한 탄식과 아픈 심판의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예언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분을 위해 한 편의 포도원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나무가 잘 자라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습니다. 돌을 골라내고 가장 좋은 종자를 심었으며, 해로운 짐승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망대를 세웠고, 기쁨의 수확을 예비하며 술틀까지 미리 파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아낌과 돌봄의 결과로 맺힌 것은 시고 떫어서 먹을 수 없는 초라한 들포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비유의 가면을 단호하게 벗겨내시며 그 아픈 실상을 폭로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셨던 극상품 포도는 다름 아닌 이 땅 위에 물처럼 흐르는 정의(מִשְׁפָּט, 미쉬파트)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는 공의(צְדָקָה, 체다카)였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기대가 어그러진 자리에서 들려온 것은, 강자들의 탐욕에 짓밟혀 신음하는 이들의 찢어지는 부르짖음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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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이처럼 이웃과의 연대와 돌봄을 잊은 채 오직 자기 확장만을 위해 질주하는 이들의 결말을 기가 막히게 묘사합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하십니다.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나가 마침내 땅 한가운데서 아무 이웃도 없이 홀로 풍요를 누리려 하는 삶, 그것이 바로 들포도 우거진 세상의 실상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넓은 아파트 평수를 자랑하고 자산 소득을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그렇게 소유를 늘려갈수록 정작 타인을 품어 안을 내면의 공간은 기묘할 정도로 좁아지고 왜소해집니다. 내 몫을 악착같이 챙기기 위해 이웃의 아픔에 귀를 닫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굳은살이 박여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그 소유의 성채는 우리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거대한 감옥이 되고 맙니다. 내 힘과 욕망만을 의지하여 쌓아 올린 성공의 바벨탑은, 창조주 하나님의 호령 한 번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허망하게 사라질 찰나의 환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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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눈에 보이는 물질의 위세에 눌려 영원을 지워버리려는 세속의 거센 중력을 거스르고, 나를 정결하게 빚으시는 주님의 손길에 닿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묵상은 세상의 분주한 소음을 단호히 끄고 말씀의 성스러운 기류 위에 영혼의 날개를 얹어 비상하는 거룩한 활강입니다. 구상 시인은 그의 시에서 내 눈에 끼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는 순간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는다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고요히 말씀의 거울 앞에 정직하게 나를 노출시킬 때, 비로소 자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눈이 멀었던 무명의 백태가 맑게 씻겨 내려가게 됩니다. 말씀의 쟁기날이 우리의 완고하고 굳어버린 돌 같은 마음 밭을 사정없이 갈아엎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구나라는 눈물겨운 자각에 이르게 되며, 곁에 있는 약하고 지친 이웃들의 신음소리가 하나님의 아픈 호소로 들려오는 영적 감수성을 선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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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들포도만 가득한 우리 포도원을 황무지로 만들겠노라 심판을 선언하시면서도, 차마 당신의 자녀를 아주 진멸하지 못해 기어코 눈물 흘리시는 애끊는 마음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구원과 거룩함은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흠결 없이 굳건하게 버티어 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흔들리고 길을 잃어버리는 우리의 가녀린 존재를 온전한 자비의 품으로 안아주시며, 마침내 우리 영혼의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그 다함 없는 은총에 온전히 얹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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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한여름 세찬 폭풍우 속에서도 하나님의 너른 품이라는 둥지 안에 안겨 고요하게 날개를 펴는 독수리의 비상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폭풍우를 만났을 때 살아남으려면 밤새 제 깃털을 바짝 세우고 온 힘을 다해 날갯짓을 퍼덕여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해야만 한다고 다그칩니다. 그러나 위대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아무런 힘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새끼 독수리 같은 우리를 가만히 들어 올리사 당신의 든든한 날개 위에 안전하게 태워주십니다. 우리가 내 잘남을 증명하려던 고집스러운 날갯짓을 단호히 멈추고 말씀의 기류 위에 온 존재를 잠잠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흙먼지 묻어 부서지기 쉬웠던 우리의 남루한 일상은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도리어 비상의 에너지로 삼아 저 장엄하고 맑은 하늘 위를 평화롭게 거닐며 세상을 다사로운 은총의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하나님의 귀한 동반자로 경이롭게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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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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