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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0:20-34 낮은 그루터기의 봄


온전한 신앙이란 오만의 백향목을 내려놓고 씨도리배추처럼 주님의 신실함에 깃드는 생명 사건입니다.


매미들의 쟁쟁한 노랫소리가 뜨거운 한여름의 뙤약볕을 뚫고 대지 위로 쏟아져 내리는 2026년 7월 하순의 어느 날입니다. 장마가 지나간 자리에 가득 찬 대기 속의 눅눅한 습기와 가마솥 같은 열기가 우리의 숨통을 무겁게 짓누를 때면, 우리의 정서 역시 씻겨가지 않는 삶의 피로와 알 수 없는 영적 갈증 때문에 시뜻하게 늘어지곤 합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나의 강함과 쓸모를 증명해 내기 위해 매일 긴장하며 버둥거리지만, 정작 속은 쩍쩍 갈라진 가문 논바닥처럼 메말라 깊은 영적 회의와 외로움을 안고 신앙의 주변부를 서성이고 계실 성도 여러분의 마음에, 사나운 폭풍 속에서도 기어이 평화의 아침을 열어내시는 주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깊은 영혼의 응시로 마주하는 이사야 10장 20절에서 34절의 풍경은, 거대한 숲처럼 우뚝 솟아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 앗수르의 삼엄한 진격과 그 오만의 바벨탑이 일순간에 쓰러져 내리는 장엄한 파국을 아프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 역사의 흙먼지 날리는 폐허 한복판에서, 한낱 밟히는 풀꽃처럼 소박하게 남겨진 자들이 부르는 눈물겨운 부활의 서사시를 들려줍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세상의 힘에 취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앗수르 군대의 긴박한 이동 경로를 지명 하나하나 생생하게 호명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듯 고발합니다. 그들이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고, 마침내 예루살렘의 턱밑인 놉까지 다다라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조롱하듯 오만하게 손을 흔드는 광경은 머릿속에 그려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공포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참된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그 비대해진 오만의 백향목 숲을 결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사 10:33).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던 백향목들이 하나님의 날카로운 쇠도끼에 사정없이 찍혀 쓰러지는 이 서늘한 심판 앞에서, 제국이 자랑하던 견고한 무기들과 화려한 소유의 성채들이 하나님의 호령 한 번에 얼마나 가벼운 입김처럼 흩날리는 허무의 신기루였는지가 낱낱이 드러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옥중서간》에서 "이 땅에는 영속적인 성이 없으며, 우리는 오직 앞으로 올 하나님의 나라에 있을 궁극적인 실체를 갈망해야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이 대단하다고 떠벌리는 번영과 성공의 앗수르 숲은 결국 쓰러질 나무들에 불과함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헛된 자만심을 깨뜨리는 은혜의 시작입니다.


세상을 뒤흔들던 거대한 백향목 숲이 무참하게 쓰러져 버린 그 파국의 자리에서, 예언자는 놀라운 새로운 창조의 비전을 선포합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겨레 가운데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시는 그들을 친 자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만을 진실하게 의지할 것이라"(사 10:20). 예언자가 선언하는 "스알야습", 곧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라는 소망의 언어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적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배하는 앗수르의 무서운 근육질 대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을 진실하게 바라는 소박한 남은 자들을 역사의 새로운 그루터기로 삼으십니다. 이 남은 자들은 '씨도리배추 같은 사람들'입니다. 씨도리배추란 한겨울 모진 설한풍 속에서 겉잎이 다 찢어지고 뭉개진 채, 오직 대지 밑바닥에 실뿌리 하나만을 든든히 박은 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겨울을 버텨낸 가녀린 겨울 배추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초라하고 남루한 모습을 보며 이미 다 끝난 생명이라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봄바람이 다사롭게 불어오는 신새벽이 되면, 그 밑동만 겨우 남았던 씨도리배추의 찢겨진 가슴속에서 놀랍게도 노란 장다리꽃이 가장 눈부시고 청신하게 피어오릅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스스로 백향목 같은 거목이 되어 타인을 지배하려던 제국의 야망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오직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날개 밑에 온전히 깃드는 씨도리배추의 안식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거센 인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말씀 묵상이란 내 옹졸한 욕망을 채워줄 얄팍한 주문 문구를 수집하는 감상적 놀이가 결코 아닙니다. 묵상은 내 영혼을 가리고 있던 세상의 혼탁한 구름을 매일 아침 성실하게 닦아내어, 기어코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을 마주하는 구름 닦기의 성사입니다. 평생을 홀로 가만히 앉아 성경을 읽으며 말씀의 신비에 젖어 살았던 이공 어르신은, 말씀 앞에 엎드릴 때마다 방 안에서 온순하게 대화를 나누셨다 합니다. "아하, 그렇군요. 예, 그러셨던 거군요. 알겠습니다." 그 다정한 고백처럼, 참된 묵상은 내 분주한 이익의 주판알을 멈추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내 생각을 정돈하는 인격적인 사귐입니다. 김교신 선생은 우리 몸에 상처가 났을 때 생기는 딱지는 억지로 떼어내려 하면 오히려 상처가 덧나지만, 안에서부터 단단하고 깨끗한 새살이 밀려 올라오면 묵은 딱지는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말씀의 맑은 물이 우리 영혼의 묵은 땅을 갈아엎고 주님의 사랑이라는 새살을 끊임없이 길어 올릴 때, 비로소 우리를 옥죄던 세상의 탐욕과 불안의 묵은 딱지들은 소리 없이 떨어져 나가고 우리는 참된 영적 자유를 선물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인생의 모든 무게를 나 혼자 짊어지려던 그 팽팽하게 날 선 긴장의 옷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스스로 다듬은 돌과 백향목의 성채를 지으며 오만을 떨던 자들의 교만을 사정없이 꺾으시지만, 겉잎이 다 짓물러져 부끄러워 울고 있는 우리의 보잘것없는 바닥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강인한 백향목이 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넘어지고 흔들리는 우리의 비루한 일상조차 십자가의 붉은 보혈로 씻으시고 기어코 은혜의 아침을 맞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이고 한결같은 긍휼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우리의 상처 많고 불안한 신앙 여정은 거대한 폭풍우가 지나간 뒤, 산산이 부서진 백향목 숲의 그늘 속에서 대지의 온기를 소박하게 머금은 채 아침 안개를 맞아들이는 낮은 그루터기가 새봄을 준비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폭풍우가 불어닥칠 때 살아남으려면 너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거목이 되어 사나운 바람에 꼿꼿하게 버텨 너의 강함을 온 세상에 입증해 보이라고 다그칩니다. 그러나 아무런 자랑할 잎사귀도 없이 대지 밑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소박한 그루터기는 다릅니다. 그루터기는 바람과 맞서 싸우려 꼿꼿이 힘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베어낸 아픔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주님이 선물로 내리시는 새벽의 이슬비와 안개를 고요히 몸으로 향유합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따사로운 하나님의 봄볕이 온 대지를 비추기 시작할 때, 그 버려진 듯했던 옹색한 그루터기의 가슴속에서는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장 찬연하고 푸르른 생명의 새순이 경이롭게 밀려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내 잘남을 증명하려던 모든 헛된 배역의 연기를 멈추고 십자가의 제단 위에 우리 존재를 가만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의 깨어진 삶은 세상을 찌르던 어둠을 녹여내며 지친 이웃의 생명을 다사롭게 보듬어 안는 가장 찬연하고 눈부신 하나님 나라의 생명 도구로 되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초록 기운이 무성하게 가을을 향해 길을 내는 이 7월,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으라는 세상의 매정한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무력함을 있는 그대로 환대하시는 주님의 묵상 처소에 고요히 엎드리며, 나를 조건 없이 품어주신 그 십자가의 은총 안에서 곁에 있는 지친 이웃의 상처를 따뜻하게 괴어주는 다정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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