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18-30 들포도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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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움켜쥠을 내려놓고 말씀의 기류에 온 존재를 맡기는 거룩한 멈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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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나간 자리에 세상은 다시 초록으로 물들지만, 이사야가 바라본 포도원은 달랐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기름진 산에 돌을 골라내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으며, 망대를 세우고 술틀까지 미리 파 두었습니다. 그 모든 정성의 끝에 맺힌 것은 시고 떫어 먹을 수 없는 들포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비유의 가면을 벗겨내시며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그 간극에서 하나님의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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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18절 이하에서 예언자는 그 들포도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낱낱이 펼쳐 보입니다. 거짓을 수레줄처럼 끌고 다니는 자들, 낮부터 술을 탐하며 독주를 쫓는 자들,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자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어그러짐의 뿌리에는 가옥에 가옥을 잇고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탐욕의 충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 남을 지배하는 것이 성공이라 믿는 자본의 논리는 예언자의 시대만이 아니라 우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맹렬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소유를 늘려갈수록 타인을 품어 안을 내면의 공간은 좁아지고, 정작 이웃의 신음은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쌓아 올린 성채는 어느 순간 우리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감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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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는 "기독교 공동체의 꿈을 기독교 공동체 자체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아무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헌신적인 사람이라 해도, 결국 모든 기독교 공동체의 파괴자가 되고 맙니다"라고 썼습니다. 이웃 없이 홀로 서려는 욕망은 공동체를 허물 뿐 아니라 결국 자신도 허물고 맙니다. 이사야는 경고합니다. 화려하던 가옥들이 황폐해질 것이며, 넓은 밭을 일구어도 기껏해야 기름 한 바가지, 보리 한 자루를 거두는 결핍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내 힘과 욕망으로 쌓아 올린 성공의 탑은, 창조주의 호령 한 번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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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심판의 선언 안에서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들포도만 가득한 포도원을 향해 비조차 내리지 않겠다고 선언하시면서도, 차마 당신의 자녀를 아주 진멸하지 못해 애끊는 마음으로 돌아서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심판의 언어 안에 자비의 핏줄이 흐르고 있습니다. 스스로 강해지려다 텅 비어버린 우리의 부끄러운 밑바닥을 다 아시면서도 내치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낮고 헐벗은 땅으로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붉은 자비의 강물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흠결 없이 버티어 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흔들리고 길을 잃는 가녀린 우리를 온전한 자비의 품으로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그 다함 없는 은총에 우리는 얹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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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은 말했습니다. "내 눈에 끼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는 순간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참된 묵상이란 바로 이 백태가 씻겨 내려가는 사건입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정직하게 나를 노출시킬 때, 이기적인 욕망으로 눈이 멀었던 자아의 백태가 맑게 벗겨지고, 곁에 있는 지치고 슬픈 이웃의 신음이 하나님의 아픈 호소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움켜쥐던 손을 조용히 펼치고 말씀의 기류 위에 온 존재를 내어 맡기는 그 거룩한 멈춤 속에서, 들포도만 가득하던 우리의 척박한 마음에 기어이 생명의 싹이 다시 돋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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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당신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말씀이라는 청신한 거울 앞에 가만히 서서, 그분이 기다리시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묻는 자리에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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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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