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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0:5-19 도끼는 자랑할 수 없다


샬롬! 오늘은 이사야 10장 5절에서 19절까지 말씀으로 '도끼는 자랑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묵상에세이를 나누겠습니다.


온전한 신앙이란 도끼의 오만을 내려놓고 창조주의 손에 온 존재를 내어 맡기는 은혜의 몸짓입니다.


칠월의 대기는 무겁습니다.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잠시 숨이 트이는 듯하다가도, 이내 후텁지근한 공기가 다시 온몸을 짓누릅니다. 이 눅눅한 계절, 우리 영혼 역시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팽팽한 다그침 아래 가쁜 한숨을 내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나의 강함과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자아의 성벽을 높이 쌓아 올리면서도, 정작 속은 쩍쩍 갈라진 가문 논바닥처럼 메말라 깊은 영적 회의와 외로움을 안고 신앙의 주변부를 서성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내 힘으로 이룩하려던 헛된 소란을 잠재우고 다사롭게 찾아오시는 주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이사야 10장 5절부터 19절의 풍경은 시리도록 예리합니다. 역사 속에 거대하게 솟구쳤던 제국 앗수르의 야망과 그 비참한 파국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동시에 그들을 당신의 진노의 막대기로 쓰셨던 창조주의 엄위하신 주권이 어떻게 인간의 오만을 꺾으시고 은혜의 자리를 마련하시는지를 장엄하게 들려줍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저릿한 한숨을 받아 적듯 첫마디를 떼어놓습니다.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의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사 10:5).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완고한 죄성을 깨뜨리시고자 당대 지중해 세계를 호령하던 강대국 앗수르를 당신의 가벼운 도구로 빌려 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쥐인 몽둥이에 불과했던 앗수르 왕은 자기 존재의 한계를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으스댔습니다. "이것은 모두 나의 힘으로 한 일이다. 내가 지혜롭고 똑똑해서 거두어들인 내 지략의 결과다." 나라의 경계선을 지워버리고 재물을 약탈했으며, 둥지에서 새알을 줍듯 온 땅의 부를 손아귀에 움켜쥐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예언자는 그 의기양양한 제국을 향해 벼락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사 10:15). 도끼는 찍는 자 위에서 스스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우리의 비루한 마음을 깊이 찌릅니다. 우리 역시 손에 쥔 조그마한 힘과 지식, 세상이 부러워하는 재산과 자리를 내세워 "이것이 내 힘으로 짜낸 인생의 전리품이다"라고 으스대곤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도끼날을 더 날카롭게 벼려 타인을 상하게 하고 너의 우월함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라고 다그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나를 중심에 놓고 타인을 도구로 삼는 영적 맹인이 되어, 피로감 속에 하루하루를 고갈시켜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제 힘을 과시하며 기형적인 괴물로 자라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사 10:16). 앗수르가 자랑하던 살진 용사들은 일순간에 파리하게 마르고, 그들이 높이 쌓아 올린 영화로운 성채들은 하나님의 불길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겨우 몇 그루의 나무만이 남는 황무지가 됩니다(사 10:19). 겉보기에는 가혹한 재앙 같지만, 실상 이것은 인간다운 존재의 참된 기원을 잊어버린 채 날뛰던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복된 아픔이요 눈물겨운 자비입니다.


내 힘으로 인생의 집머리를 든든히 세워보려던 팽팽한 긴장의 끈이 뚝 하고 끊어지고 내 무력함의 바닥이 고스란히 폭로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내가 강자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품이 간절히 필요한 연약한 피조물임을 눈물겹게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한 점의 흠결도 없이 강인하게 버텨내야만 기뻐하시는 차가운 관념이 아닙니다. 앗수르의 매질 앞에 찢기고 상처받아 헐벗은 채 주저앉아 우는 우리의 가련한 신음을 온몸으로 감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상한 눈물을 닦아주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라는 가장 비참한 역사적 변두리로 내려오셔서, 온갖 오해와 조롱의 사슬을 당신의 몸으로 받아 안으시며 우리를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렇듯 세상의 거센 인력을 거스르고 나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향해 삶의 닻을 내리기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할 때, 참된 묵상이란 율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읊조리며 내 번영을 간구할 주문을 수집하는 감상적 놀이가 아닙니다. 묵상은 내 이기적인 자아의 중력을 박차고 올라가, 말씀의 하늘 위에 흐르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의 기류에 내 온 영혼의 날개를 포개어 얹는 거룩한 활강입니다.


구상 시인은 그의 시 「말씀의 실상」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눈에 끼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는 순간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고요히 말씀 앞에 엎드려 마음의 온갖 요란한 소음을 끌 때, 우리 눈에 가득 끼어 있던 세상 자랑과 욕망의 백태가 맑게 씻겨 내려갑니다. 비로소 앗수르의 칼날과 성채가 한낱 찰나의 연기처럼 가볍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게 되며, 오직 나를 용납하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얼굴빛 안에서 참된 평화와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밑힘을 얻게 됩니다. 더 완벽한 사랑의 실적을 내 힘으로 증명해 바쳐야만 하나님이 비로소 내 방패가 되어 주실 것이라는 율법의 무거운 멍에를 이제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우리의 구원과 존엄은 우리의 완벽함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넘어지고 의심하며 어긋난 길로 도망치는 우리의 가녀린 실존조차 온전한 자비의 품으로 안아주시며, 기어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수치를 덮어 "너는 내 마음에 새겨진 귀한 내 작품이란다"라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그 다함 없는 자비에 우리는 온전히 잇대어 있습니다.


우리의 상처 많고 불안한 신앙 여정은 위대한 화가의 아뜰리에 구석에 가만히 누워 있는 작고 해진 모필 붓의 의탁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그 작은 붓에게 "네 온몸의 털을 꼿꼿이 세워 화판 위를 거칠게 칠해 너의 존재감을 온 세상에 증명해 보이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화가가 되려 꼿꼿이 힘을 주며 버둥거리지만, 결국에는 붓끝이 사정없이 꺾이고 갈라져 제 본래의 부드러움마저 잃어버리는 비극을 맞이할 뿐입니다. 그러나 붓은 스스로 그림을 그려내지 않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아무런 힘도 없고 자랑할 무늬도 없는 그 보잘것없는 작은 모필 붓을 가만히 들어 올리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라는 거룩한 은총의 물감에 붓끝을 다사롭게 적시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림의 주인이 되려던 모든 헛된 고집과 긴장을 멈추고 말씀의 손가락 끝에 우리 존재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흙먼지 묻어 버려지기 쉬웠던 우리의 남루한 일상은 이 차갑고 거친 도화지 같은 세상 한복판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평화와 생명의 풍경화를 가장 찬연하고 눈부시게 그려내는 주님의 귀한 대리인으로 경이롭게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으라는 세상의 매정한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고, 말씀 앞에 고요히 엎드려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은혜에 의지해 내 곁의 지치고 소외된 이들의 다정한 고향이 되어주는 눈부신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모든 성도가 매일성경으로 매일 묵상하는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 라종렬 목사였습니다. 묵상의 여정에 있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Q5xCDSQ3b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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