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1-7 가장 깊은 밤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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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가장 짙은 어둠 한복판에서, 한 아기로 오신 평강의 왕을 알아보고 그 빛을 향해 몸을 돌이키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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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을 코앞에 둔 칠월의 끝자락, 한낮의 열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열대야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새벽 네 시, 세상이 가장 깊이 잠든 그 시각에 창밖을 내다보면, 아직 해는 뜨지 않았어도 동쪽 하늘 끝이 아주 미묘하게 옅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밤이 가장 깊어진 바로 그때가, 실은 새벽이 가장 가까운 때입니다. 삶의 밤이 너무 길어 이제는 아침이 오기나 할까 의심하며 뒤척이는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어둠을 뚫고 기어이 밝아오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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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8장은 온통 캄캄한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말씀을 버린 백성이 점쟁이를 찾아 헤매다가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사 8:22) 속으로 쫓겨 들어가는 절망. 거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성경은 참으로 서늘한 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을 넘기자마자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어둠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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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그 빛이 비치기 시작한 자리입니다.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앗수르 군대에게 제일 먼저 짓밟혀 가장 오래 어두웠던 변방, 스불론과 납달리, 이방의 갈릴리였습니다(사 9:1). 세상의 셈법대로라면 회복은 중심부부터 시작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의 은혜는 늘 가장 낮고 가장 어두운 변두리에서 먼저 동틉니다. 그래서 칠백 년 뒤, 바로 그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셨을 때, 마태는 오래된 이 예언을 떠올리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마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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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크고 무거운 어둠을 어떻게 물리치실까요. 대군을 일으키실까요, 천사의 군단을 보내실까요. 본문의 대답은 뜻밖에도 이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사 9:6).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것, 밤새 울고 젖을 물어야 하는 갓난아기 하나로 세상의 모든 어둠을 이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시몬 베유는 "지극히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연약함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힘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구유에 뉜 아기의 연약함 속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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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기에게 붙여진 이름을 가만히 불러 봅니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 9:6). 지상의 어떤 왕도 이 이름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본래 하나님께만 돌려지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름이 한 아기에게 함께 주어졌다는 것은, 그 아기가 곧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 임마누엘 자신이라는 고백입니다. 7장에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하신 그 임마누엘이, 여기서는 어깨에 온 세상의 정사를 메고 다스리는 평강의 왕으로 자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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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왕의 다스림은 세상의 왕들과 정반대입니다. 세상의 왕은 군림하지만 이 왕은 섬기고, 세상의 왕은 짓밟지만 이 왕은 짊어지며, 세상의 왕은 칼로 평화를 강요하지만 이 왕은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사 9:7)합니다. 무기를 더 쌓아 이룬 힘의 균형이 아니라, 군화와 피 묻은 옷을 아예 불살라 버리는(사 9:5) 참된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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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어쩌면 가장 긴 밤을 견디는 일과 같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침묵의 밤,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의 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상실의 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둠이 영원할 것처럼 느끼지만, 성경은 단호히 말합니다. 밤이 가장 깊은 그 자리가 바로 큰 빛이 비치는 자리라고. 그리고 그 빛은 멀리 있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한 아기, 우리 손을 잡아 주시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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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나의 열심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사 9:7)으로 이루어진다는 마지막 한 마디가, 지친 우리에게 가장 깊은 위로입니다. 나라를 세우는 힘도, 어둠 속의 나를 끝까지 붙드는 힘도, 결국 하나님의 뜨겁고 끈질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밀어붙여 기어이 아침을 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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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가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 이 여름밤, 삶의 밤이 너무 길어 아침을 의심하게 되는 날에는, 어둠을 세느라 밤을 지새우지 마십시오. 도리어 동쪽 하늘 끝을 바라보십시오. 흑암에 행하던 백성에게 비친 그 큰 빛, 한 아기로 오신 평강의 왕을 깊이 신뢰하며,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위에 서서 반드시 밝아올 아침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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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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