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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1-20 마당 밟기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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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마당만 밟는 공허한 의식을 내려놓고 욕망의 백태를 씻어내어 붉은 자비의 초대에 온 존재로 응답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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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숲의 적막을 깨우며 대지의 초록 기운을 한껏 팽팽하게 길러내는 한여름의 눈부신 아침입니다. 대기 속에 가득 찬 뜨거운 열기가 우리의 숨을 가쁘게 만들듯, 거칠고 무정한 세상 속에서 내 힘으로 삶의 영토를 지켜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남몰래 숨죽여 흐느끼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내 안의 연약함과 끊임없이 일어나는 신앙적 회의 때문에 진리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무한한 하늘의 넓이만큼이나 넉넉한 품으로 우리의 작음을 안아주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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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강자가 되라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여 아래를 내려다보는 지배자가 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고요히 마주하는 이사야 1장의 풍경은, 이처럼 힘의 논리로 무장하여 스스로를 전능자라 여기며 날뛰던 오만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깊은 탄식과 애끓는 자비가 어떻게 흘러오고 있는지를 장엄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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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무렵이 되면 우리는 아기 예수가 누우신 마구간 구유 곁에 소와 나귀 인형을 꼭 등장시키곤 합니다. 마구간이니까 으레 있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그 아름다운 풍경의 배경에는 예언자 이사야의 깊고 아픈 탄식이 서려 있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사 1:3). 미련해 보이는 짐승조차 자신을 돌보고 먹여 키우는 주인의 손길을 알아보는데, 정작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음을 받고 해방을 경험한 백성들은 영적인 치매에 걸린 듯 생명의 주인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고발입니다. 시인 김현승 선생은 그의 시 감사하는 마음에서 감사란 "내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리는 마음"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내 존재의 뿌리와 기원이 나 자신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인간은 나를 중심에 놓고 타인을 도구로 삼으려던 옹졸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감사와 평화의 세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은 언제나 비대해진 욕망에 사로잡혀 이웃의 생기를 빼앗고 살맛을 잃게 만드는 전도된 길로 내닫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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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영적 망각증에 걸린 이스라엘이 택했던 자구책은 종교적인 화려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모여 무수한 짐승의 피를 흘리고, 값비싼 분향을 올리며, 절기와 성회를 성대하게 지켰습니다(사 1:11-14). 눈에 보이는 종교적 업적과 제사 행위로 하나님의 눈을 가리고 자신들의 탐욕을 거룩하게 포장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 문을 닫아걸고 싶다며 진노하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참으로 소름 돋도록 두려운 일침입니다. 일평생 열심히 교회를 드나들며 헌금하고 봉사했는데, 예언자를 통해 들려오는 주님의 평가는 "너는 한 번도 나와 대화한 적이 없고, 그저 성전 마당의 흙먼지만 밟고 지나갔을 뿐이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입니다. 참된 신앙은 자아의 철저한 깨어짐 없이 겉포장만 그럴듯하게 치장하는 종교적 위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쟁기날이 우리의 완고한 마음 밭을 사정없이 갈아엎어,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성한 곳 없이 상처투성이인 우리의 실존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만들 때에야 비로소 참된 예배가 시작됩니다(사 1:5-6). 우리가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순결한 성품 앞에 우리 자신을 단독자로 비추어보는 영적 멈춤, 그것이 참된 묵상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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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은 그의 시 말씀의 실상에서 "내 눈에 끼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는 순간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말씀 묵상이란 단순히 척박한 세상을 견디게 해줄 달큼한 위안의 구절을 수집하는 종교적 유희가 아닙니다. 묵상은 우리의 온 영혼에 가득 끼어 있는 욕망의 백태를 말씀의 맑은 물로 씻어내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신비와 섭리를 투명하게 응시하게 만드는 영적 정화의 도정입니다. 우리가 이 묵상을 통해 영혼의 눈을 맑게 씻어낼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수직적인 종교적 열심을 넘어 이웃을 향해 수평적인 거룩함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6-17). 나만을 온 우주의 중심에 놓으려던 얄팍한 고집을 꺾고, 내 곁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가난하고 연약한 타자의 신음에 예민하게 감응하여 기꺼이 그들의 설 땅과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결하고 온전한 삶의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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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위하고 눈물겨운 삶의 요구 앞에 설 때, 우리는 툭하면 넘어지고 이기적으로 돌아서는 스스로의 보잘것없는 바닥을 마주하며 짙은 회의와 절망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나는 이토록 이기적이고 흠결이 많은데,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겠는가 싶어 주저앉고 싶어집니다. 바로 그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힘으로 내리누르거나 가차 없이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지치고 상한 우리 영혼을 향해 한없이 부드럽고 다사로운 목소리로 속삭이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여기서 변론하자는 말씀은 죄의 잘잘못을 낱낱이 가려내어 정죄하겠다는 법정의 서늘한 언어가 아닙니다. 이는 자식의 상처를 끌어안고 함께 마음 아파하시는 어머니의 맹렬하고도 애끓는 사랑의 대화로의 초대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거룩함은 우리가 얼마나 흠결 없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생의 옷감을 짜내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매며 상처를 자초하는 우리의 그 비루하고 남루한 일상 한복판에 부활의 새 아침으로 친히 찾아오셔서, 십자가의 붉은 보혈이라는 영원한 자비의 강물로 우리의 허물을 남김없이 덮으시고 기어코 흰 눈처럼 씻어내어 품어 안으시는 하나님의 그 압도적이고도 다함 없는 자비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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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칠흑 같이 어두운 대성당의 한구석에 깨진 채 방치되어 있던 빛바랜 유리 조각들이 위대한 장인의 손길을 거쳐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로 거듭나는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흠집 하나 없이 투명하고 매끄러운 통유리만이 가치 있고 쓸모 있는 것이라 소리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깨어짐과 상처를 감추기 위해 영혼의 화장을 한 채 긴장하며 버둥거리곤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흠 없는 완벽함을 가져오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히려 죄와 시련으로 인해 붉은 진홍빛 얼룩이 지고 산산이 부서진 우리의 비루한 인생 조각들을 가만히 주워 모으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거룩한 은총의 띠로 그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엮어 내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장엄한 구원의 창을 빚으십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온전해지려던 헛된 소란을 멈추고 주님의 연주대 위에 우리 존재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겉으로는 그저 어둡고 남루해 보였던 우리의 붉은 상처들은, 하나님의 찬연한 아침 햇빛이 그 속을 뚫고 통과해 들어오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다사롭고 신비로운 하늘의 평화와 구원의 무지개를 온 대지 위에 가득 비추어내는 가장 경이로운 은혜의 성소로 눈부시게 되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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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증명하고 내 성채를 높이 쌓으라 다그치는 세상의 매정한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고단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다정한 숨결을 들이마시는 묵상의 자리에 고요히 엎드리며,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시는 그 붉은 자비에 기대어 곁에 있는 지친 이들에게 선선한 그늘을 내어주는 눈부신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당만 밟는 소란을 멈추고,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의 다사로운 초대 앞에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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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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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BFiDVpOj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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