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13 흑암을 품어 안으시는 하나님의 숨결
.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의 완벽함을 요구하는 호령이 아니라, 혼돈과 공허 속에 있는 우리 존재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시어 기어이 생명을 틔워내시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앙의 문턱에서 서성이는 벗님들, 평안하신지요.
우리는 저마다 가슴속에 씻기지 않는 얼룩 하나쯤 품고 살아갑니다. 남들에게는 번듯해 보일지 몰라도, 홀로 있는 시간이면 밀려오는 공허와 알 수 없는 불안에 몸을 떨기도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높이 오르라고, 더 많이 소유하라고 채찍질하지만, 그럴수록 우리 내면은 황무지처럼 메말라갈 뿐입니다. '과연 내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회의가 짙은 안개처럼 피어오를 때, 우리는 비로소 성경의 첫 페이지를 펼쳐들 자격을 얻습니다.
창세기 1장은 장엄한 교향곡처럼 시작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슬픔과 어둠이 배어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창 1:2)는 말씀은 태초의 지구 모습이기도 하지만, 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적나라한 자화상입니다. 질서가 잡히지 않은 마음(혼돈), 채워지지 않는 갈증(공허),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흑암)이 우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비루한 상태를 폐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운행하다'라는 히브리어 '라하프(rachaph)'는 어미 새가 알을 깨우기 위해 날개를 펴고 부드럽게 떨며 품어 안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엉망진창인 상태를 혐오하며 등을 돌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 입고 깨지기 쉬운 우리를 당신의 가슴으로 덮으시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 주시는 분입니다. 창조는 심판이 아니라, 포용에서 시작됩니다.
그 따뜻한 품 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이것은 명령이라기보다 사랑의 초대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던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어,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고 색깔을 부여하십니다. 이 빛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 정죄하는 서치라이트가 아니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봄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당신이 비추시는 그 은총의 빛을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빛이 스며들자 혼돈의 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땅을 향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창 1:11)고 하십니다. 삭막했던 우리의 일상에 생명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성취가 아닙니다. 흙투성이인 우리 존재 속에 이미 생명의 씨앗을 심어두신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악다구니를 쓰며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나의 약함과 혼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우리 위를 덮고 계시는 하나님의 숨결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흔들림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생명 있음의 증거입니다.
신앙생활이 버겁게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지십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완벽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닿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기에 사랑하십니다. 흑암 같은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해주시는 그 넉넉한 사랑이, 오늘 여러분의 삶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 은혜의 빛 속에서 다시 한번, 살아야 할 용기를 내어보시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1-13 혼돈의 수평선을 넘어 비치는 ‘태초의 빛’, 그 눈부신 선물
새해의 진정한 시작은 무거운 결심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혼돈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원복(Original Blessing)’을 발견하고, 그분의 말씀을 전 존재로 씹어 소화하는 ‘하가(Hagah)’를 통해 영혼의 기준음을 다시 조율하는 데 있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2026년의 첫 아침이 기적처럼 우리 앞에 당도했습니다. 반칠환 시인이 노래했듯 황새는 날아서, 거북이는 걸어서, 굼벵이는 굴러서 저마다의 보폭으로 달려왔지만 우리는 모두 한날한시 ‘새해 첫날’이라는 기적의 영토에 도착했습니다. 혹시 지난 한 해의 남루한 기억과 풀리지 않는 삶의 숙제들로 인해 마음이 ‘가리산지리산’ 어지러우신지요? 신앙에 대한 회의가 안개처럼 밀려오고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왜 내 삶은 여전히 혼돈인가”라고 묻는 이들에게, 창세기의 첫 대목은 정답이 아닌 ‘장엄한 사건’으로 응답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이는 단지 우주 발생의 기록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기라는 ‘신산(辛酸)스러운’ 어둠 속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던 이들에게 들려준 희망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Chaos)를 질서(Cosmos)로 바꾸시는 분이며, 그 창조의 도구는 다름 아닌 ‘말씀’이었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그 한마디는 무(無)에서 유(有)를 이끌어 내는 숭고한(Sublime) 선언이었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길에서 비틀거리는 까닭은 ‘원죄’의 무게에만 눌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원복(Original Blessing)’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려 창조를 시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텅 비어 있고 어두운 우리 실존의 틈새로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시며 매일의 창조를 지속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우리는 그 가없는 은총의 세계에 초대받은 손님들입니다.
이 은총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말씀 묵상’입니다. 묵상은 촛불 아래 정적으로 앉아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Hagah), 말씀을 온몸으로 씹고 삼켜 내 피와 살로 만드는 ‘동물적인 치열함’입니다.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주님의 마음이라는 기준음에 우리 영혼을 조율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부박(浮薄)한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던” 그 본래적인 자아와 대면하게 됩니다.
새해 첫날,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향유’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등불을 밝히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은혜의 강물에 뿌리를 내릴 때, 우리 삶은 세상을 정화하는 ‘맹그로브 나무’가 되어 피어날 것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손길이 여러분의 새해를 포근하게 감싸 안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겨울 한복판에 돋아나는 작은 새순과 같습니다. 비록 여리고 약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굳은 지각을 뚫고 올라와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일 장엄한 생명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