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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4-25  존재의 기쁨, 그 넉넉한 생명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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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는 텅 빈 우주를 기계적인 법칙으로 채우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선물을 주시고 뭇 생명과 더불어 ‘존재의 축제’를 누리게 하신 은총의 사건입니다.

*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잠 못 이루는 벗님들, 평안하신지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분주히 움직였는데, 막상 자리에 누우면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생산하고, 성취하고, 남들에게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갑니다.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세상의 차가운 요구 앞에, 우리의 영혼은 자꾸만 작아집니다. 그런 우리에게 창세기 1장의 말씀은 아주 오래된, 그러나 전혀 새로운 위로를 건넵니다.

넷째 날, 하나님은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을 두시어 사시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습니다(창 1:14).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Chronos)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미건조한 텅 빈 우주에 ‘계절’이라는 리듬을 부여하셨습니다. 별들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달이 차오르고 기우는 그 신비로운 순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닳아 없어질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거대한 리듬 속에 초대받은 존귀한 손님이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알 수 없는 그리움과 경이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심겨진 영원(Eternity)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입니다.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의 풍경은 더욱 벅찹니다. 하나님은 물속에 생물을 번성하게 하시고, 공중에 새가 날게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창 1:22). 이 말씀은 우리에게 더 많이 생산하라는 노동의 명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명을 향한 축복이자,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하나님의 사랑 고백입니다.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가 무슨 업적을 쌓습니까? 하늘을 나는 새가 무슨 공로를 세웁니다? 그들은 그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기운을 따라 존재함으로 창조주를 찬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자신의 가치를 ‘유용성’으로 측정하려 듭니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창조의 클라이맥스에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보시며 “보기에 좋았더라”고 탄성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훌륭하게 해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숨 쉬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경쟁의 투기장’이 아니라 ‘생명의 향연장’입니다. 때로는 삶이 우리를 속이는 것 같고,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여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저 하늘의 별들이 당신을 위해 빛나고 있고, 이름 모를 들풀도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자라납니다. 하물며 당신이겠습니까?

부디 오늘 하루는 자신을 다그치던 채찍을 내려놓고, 창문 너머 불어오는 바람에, 혹은 밤하늘의 별빛에 가만히 마음을 기대어 보십시오. 그리고 묵묵히 우리 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그 넉넉한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살아있음이 곧 기적입니다. 그 은혜의 품 안에서 부디 평안하십시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14-25  아득한 혼돈을 가로지르는 리듬, 그 정교한 사랑의 무늬

창조의 연대기 속에 새겨진 해와 달, 그리고 수많은 생명의 숨결은 권력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의 압도적인 ‘좋음(Tob)’의 통치 아래 우리가 놓여 있음을 증언하며, 이 은총의 리듬에 우리 영혼을 조율할 때 비로소 비루한 일상은 장엄한 기적으로 변모합니다.

*

반갑습니다. 한 해의 문턱을 넘어 우리 앞에 당도한 일상은 때로 안개 자욱한 길처럼 모호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과 효율이라는 '직선의 속도'에 몸을 싣고 달리느라 영혼의 숨 가쁨을 호소하곤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말씀은 우리를 전혀 다른 '생명의 리듬' 속으로 초대합니다.

하나님은 넷째 날, 하늘에 광명체들을 두어 낮과 밤을 나누고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14절). 고대 바빌론 사람들에게 해와 달과 별은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인 '신'이었지만, 성경의 이야기꾼은 그것들을 그저 세상을 밝히는 '하늘의 등불'이라 명명합니다. 이것은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세상의 어떤 거대한 힘도 우리를 억압하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은총의 도구일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 같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주님은 그 광대한 우주의 리듬을 바로 우리를 위해 조율하고 계십니다.

이어지는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 바다와 공중과 땅은 온갖 생명들로 술렁이기 시작합니다(20-25절). 하나님은 단색의 단조로움이 아니라 다채로운 다양성 속에서 당신의 기쁨을 발견하십니다. 물결치는 바다 생물부터 날갯짓하는 새들까지,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좋음(Tob)'이라는 인장(印章)이 찍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존재가 하찮게 여겨질 때, 이 장엄한 창조의 현장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우주적 기적이며, 우리는 이미 그 '원복(Original Blessing)'의 세계에 초대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여러분의 무릎을 꺾어 놓을 때, 고요히 말씀의 여울가(Hagah, 묵상)에 앉으십시오. 묵상은 말씀을 온몸으로 씹어 소화하는 '영혼의 훈련'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마음이라는 기준음에 우리 삶을 조율할 때, 비로소 부박(浮薄)한 세상의 소음은 잦아들고 우리 내면에는 하늘의 평화가 깃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작품(포이에마 Poiema)’으로 여기시기에 우리는 충분히 존엄합니다. 이제 낡은 자아의 껍질을 벗고, 우리 삶의 혼돈 속에 질서의 빛을 비추시는 그 가없는 은총의 부력(浮力)에 온전히 몸을 맡기십시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아슬아슬한 절망을 넘어, 찬연한 생명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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