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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8:1-14 피조물의 합창, 그 먹먹한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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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은 의무가 아니라, 비루한 우리 삶이 거대한 우주적 사랑에 잇대어 있음을 발견하는 벅찬 경탄입니다.

*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였던가요? 블레즈 파스칼은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편 148편의 시인은 그 침묵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함성을 듣습니다. 해와 달, 빛나는 별들, 심지어 하늘 위의 하늘과 깊은 바다 속의 용들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창조주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때로 고단합니다. 광양제철소의 뜨거운 쇳물처럼 삶은 치열하고, 거친 바닷바람처럼 시련은 매섭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 보이고, 신앙조차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말합니다. 찬양은 만사형통할 때 부르는 노래만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본문은 우박과 눈, 안개와 광풍조차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노래합니다. 우리 인생에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의 시간들조차, 결국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악보의 한 소절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저 높은 하늘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14절은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뿔'은 힘과 구원을 상징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뿔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뿔을 '높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세상의 소음에 짓눌려 신음할 때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가까이 하는 백성'이라 부르시며 친히 일으켜 세우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애써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를 둘러싼 만물의 합창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이름 모를 들꽃의 흔들림과 밤바다의 깊은 숨소리 속에 깃든 하나님의 숨결을 느껴보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그 압도적인 사랑의 신비 앞에 '경탄'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한숨은 기도가 되고, 우리의 비루한 일상은 가장 아름다운 찬양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시편 148:1-14 온 우주가 부르는 화답의 노래, 그 지극한 환대 안에서

우리의 작음과 고독이 우주의 거대한 찬양에 합류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 자체로 긍정하시는 ‘높여 주시는 은총(헤세드)’으로 마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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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끝자락에 다달았습니다. 거대한 우주의 침묵 앞에 서면 우리는 때때로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자신의 초라한 실존을 마주하며 어지럼증을 느낍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갈 것만 같은 공허함, 그리고 신앙에 대한 회의가 안개처럼 밀려올 때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 시편 148편은 이 부박(浮薄)한 물음에 대해, 온 우주를 가득 채운 장엄한 찬양의 선율로 답합니다.

시인은 하늘의 천사들로부터 시작해 해와 달, 별들, 그리고 땅의 바다 괴물과 모든 생물에게 “주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합니다(시 148:1-7).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무를 강요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만유(萬有)가 하나님의 숨결로 지어졌으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존재함 그 자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는 ‘존재의 기쁨’에 대한 선언입니다. 시인 구상 선생님이 노래했듯, 마음의 눈을 뜨면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울타리 한구석에 피어난 개나리꽃도 부활의 시범을 보듯 황홀한 기적”이 됩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길에서 비틀거리거나 무력감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가 무엇을 성취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가없는 은총(Hesed) 안에 초대받았음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 자체로 ‘향유’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과 의심조차 하나님은 “버릴 것 없는 생의 재료”로 삼아 아름다운 무늬를 빚어내십니다.

진정한 신앙은 내 힘으로 성벽을 쌓는 투쟁이 아니라,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Hagah, 묵상) 말씀을 온몸으로 씹어 소화하며 주님의 마음과 접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등불을 밝히고 낮은 곳을 향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짐에서 지켜 주시고 그 뿔을 높여 주시는”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 주십니다.

이제 “이게 아닌데”라는 탄식을 멈추고, 온 우주가 연주하는 ‘사랑의 레가토’에 우리 삶을 조율합시다. 지극히 작은 것들 속에 깃든 하늘의 숨결을 느끼며 살 때,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적막강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일렁이는 거룩한 성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친 사막을 걷는 순례자에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시원한 샘물’과 같습니다. 우리는 샘을 만들기 위해 고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마련된 샘물에 목을 축이며 다시 걸어갈 용기를 얻는 복된 존재들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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