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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7:1-20 별을 세시는 분이 우리의 상처를 싸매실 때

우주의 광대함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가장 내밀한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지시는 섬세한 치유자이십니다.

*

겨울바람이 제법 매섭습니다. 앙상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마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깊은 탄식처럼 들리는 요즘입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도심의 불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저 너머에는 여전히 수억 개의 별들이 차가운 어둠을 지키며 빛나고 있을 겁니다. 광대한 우주 앞에 서면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입니다. 파스칼은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 기자는 그 두려운 침묵을 깨고 놀라운 고백을 터뜨립니다. 그는 하늘의 별과 땅의 상처를 하나의 시선으로 연결합니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4, 3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대조입니까? 온 우주를 운행하시며 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시는 그 크신 하나님이, 동시에 남몰래 흐느끼는 '상심한 자'의 찢어진 마음을 기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심한 자'는 바벨론 유배 생활에서 돌아왔으나 무너진 성벽과 황폐한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오늘 우리들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관계의 단절, 경제적 곤궁, 육체의 질병으로 마음이 산산조각 난 이들이 바로 상심한 자들입니다.

세상은 '깨진 것'을 싫어합니다. 흠집 난 그릇은 버려지고, 패배한 인생은 잊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깨진 마음을 당신이 거하실 성소로 삼으십니다. 별을 세시는 그 전능하신 손길이, 의사가 환부(患部)를 다루듯 우리의 아픔을 섬세하게 어루만지십니다.

시인은 이어 세상이 숭배하는 가치를 전복시킵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10절).

'말의 힘'과 '사람의 다리'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군사력, 즉 세상이 말하는 '능력'과 '스펙'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근육 자랑에 감동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사람은 자기 힘을 과시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11절)입니다.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물이 낮은 곳을 찾아 흘러들어 마침내 바다를 이루듯, 하나님의 은총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텅 빈 마음에 임합니다.

후반부에 시인은 자연의 섭리를 노래합니다. 눈을 양털같이,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는 하나님, 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던지시는 하나님(16-17절). 인생에도 혹독한 겨울이 찾아옵니다. 꽁꽁 얼어붙어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빙하기 같은 시간 말입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18절).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것은 인간의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어넣으시는 따스한 '바람(성령)'이며, 그분이 보내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굳어진 마음이 녹고, 단절되었던 관계의 강물이 다시 흐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고단한 삶의 길을 걷는 벗들이여.

우리의 하나님은 멀리 계신 관조자가 아닙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의 무너진 곳을 세우시며,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분입니다. 혹시 지금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그분의 손길을 경험할 때입니다.

나의 약함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의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그릇이 됩니다. 내 힘으로 달리려던 '억센 다리'의 힘을 빼고, 별을 세시는 그분의 눈길과 마주하십시오. 그분의 인자하심을 기다리는 그 시간, 얼어붙은 우리의 삶에 생명의 물이 다시 흐르게 될 것입니다.

이 겨울, 당신의 상처가 별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시편 147:1-20 상처 입은 영혼을 싸매시는 거룩한 이름, 그 무한한 긍휼의 비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긍휼로써 가장 연약한 실존의 내면에 현존하시며, 그 은혜만이 우리를 절망의 파국에서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유일한 생명의 힘입니다.

*

우리가 사는 시대는 때로 거대한 혼돈의 장(場)처럼 느껴집니다. 삶의 무게와 불안은 우리 영혼에 깊은 파문을 새기고, 우리는 곧잘 ‘나 홀로’ 남겨진 외로운 실존 앞에 무력하게 서 있음을 절감합니다. 세상은 성공과 강함을 유일한 척도로 삼으라 속삭이지만, 그 질주 속에서 수많은 영혼들은 상처 입고 피폐해지며 길을 잃습니다. 우리는 절박함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경탄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저 현실의 압박에만 순응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편 147편은 우리를 이 장엄한 실존적 질문 앞에 다시 세웁니다. 주님은 하늘의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그 이름을 부르시는 분입니다(시 147:4). 이 광대한 우주적 질서와 지혜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정작 가장 깊은 관심을 두시는 곳은 우리의 상처와 연약함의 자리입니다. 시인은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라고 노래합니다. 이 놀라운 고백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과 무관한 초월자가 아니심을 선언합니다. 히브리적 관점에서 ‘긍휼’(라훔)은 어머니의 ‘자궁’(레헴)과 어원을 같이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몸으로 안고 함께 아파하시는 통애(痛愛)의 사랑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는 죄의 사슬과 욕망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과 허물이 그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스며드는 통로(틈)가 됨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을 세상의 강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드러내시지 않고, “낮은 자들을 붙드시고”(시 147:6) 멸시받고 잊힌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나타내십니다. 우리의 가치가 우리의 소유(돈)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걸작품이라는 사실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한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율례와 말씀을 주시며(시 147:19), 그들을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굴욕과 억압이 없는 공평과 정의의 길, 즉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삶을 가르치는 이정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우리의 삶을 고요히 성찰하고, 세상의 왜곡된 가치(우상)를 버릴 때, 비로소 우리 내면에는 하나님의 평안함과 안식이 찾아듭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여정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받은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응답이어야 합니다. 삶이 아무리 곤고하고 팍팍하다 해도, 우리가 상처 입은 이웃의 곁이 되어주고,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지며, 세상의 헛된 욕망과 분주함에 맞서 사랑을 선택할 용기를 낼 때, 우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긍휼을 삶으로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의 황폐한 곳에 심는 희망의 씨앗이며, 그 씨앗 위로 주님은 어김없이 봄비처럼 임하실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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