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요한복음 3:1-15 밤의 고독을 건너 생명의 새벽으로 : 니고데모의 물음

.

거듭남이란 낡은 지식의 체계를 허물고, 바람처럼 불어오는 성령의 숨결에 우리 존재를 맡겨 '하늘의 방식'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

밤은 깊고 사위는 고요합니다.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율법의 박사인 니고데모가 밤의 어둠을 틈타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당대의 엘리트였고 종교적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영혼은 해결되지 않은 갈증으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니체는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는 심연 또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깨닫는다"고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쌓아온 지식과 지위라는 견고한 성채 안에서 오히려 유폐된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밤의 고독 속에서 자신의 '없음'을 대면했고, 그 허기를 채워줄 참된 '있음'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거듭남이란 문자 그대로 '위로부터(anothen)' 다시 태어남을 뜻합니다. 하지만 땅의 논리에 익숙한 니고데모는 당혹스러워합니다. "늙은이가 어떻게 다시 어머니 태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의 질문은 합리적이지만 비극적입니다. 생명의 신비를 생물학적 틀 안에 가두려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이들은 종종 이 지점에서 멈춰 섭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죽기보다 힘들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거듭남을 '바람'에 비유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바람은 잡히지 않지만, 흔들리는 나뭇잎을 통해 그 현존을 증명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자기 계획과 고집이라는 닻을 올리고, 하늘에서 불어오는 은총의 바람에 인생의 돛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적극적인 신앙이란 내가 더 많은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힘을 빼고 주님의 숨결이 나를 통과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높이 들린 놋뱀의 사건을 상기시키십니다.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이들이 살았듯이, 십자가에 달리실 인자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영생은 죽음 이후의 연대기적 시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잇닿아 사는 생명의 질(quality)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무언가 대단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밤의 존재'들이기에 베풀어지는 가없는 은혜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여전히 밤의 그림자 속에서 서성이는 분이 계십니까? 익숙한 종교적 언어들이 공허하게 들리고, 삶의 무게가 버거워 숨이 가쁜 분이 계십니까? 니고데모처럼 그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세련된 고백보다 정직한 의심을 더 귀히 여기십니다. 낡은 자아를 허물고 성령의 바람에 몸을 실을 때, 비로소 우리는 대지 위로 솟아오르는 새벽빛처럼 찬란한 생명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위로부터 오는 평화가 여러분의 영혼에 깃들기를 축복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요한복음 3:1-15 밤의 적막을 깨우는 바람, 그 거듭남의 신비

.

신앙은 내 노력으로 쌓아 올리는 공든 탑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성령의 바람 앞에 나의 낡은 자아를 허물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

겨우내 웅크렸던 대지가 기지개를 켜고, 마른 가지 끝에 물이 오르는 생동의 계절입니다. 저마다의 사연과 무게를 안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 속에서 여전히 길을 찾고 계신 모든 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화려한 조명으로 불야성을 이루지만, 정작 우리 내면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지위와 학식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그의 영혼은 깊은 밤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위해서였지만, 실상은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근원적 질문,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급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도덕적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어떤 한계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여기서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니고데모는 이 말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여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평생 쌓아온 삶의 방식을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당혹감이자 두려움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한동일 변호사는 “나는 은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라는 자각이야말로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힘이라고 역설합니다. 거듭남은 나의 수양이나 노력으로 도달하는 경지가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은총에 나를 온전히 내어맡길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바람’에 비유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바람은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거듭난 삶이란 내 계획과 통제 아래 있는 삶이 아니라,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성령의 바람에 내 인생의 돛을 맡기는 모험입니다. 이 신비를 우리 일상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세상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한 거룩한 ‘저항(Resistance)’”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아지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묵상은 그 욕망의 질주를 멈추고, 우리 영혼의 창문을 열어 성령의 바람이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묵상은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나의 삶을 포개어 넣는 ‘참여(Participation)’입니다. 니고데모가 자신의 논리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 앞에 머물렀듯, 우리도 말씀 앞에 머물며 내 굳어진 자아를 깨뜨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거듭남의 비밀을 설명하시며 광야에서 모세가 든 뱀 이야기를 꺼내십니다(요 3:14).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봄으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이기주 작가는 “말은 나름의 귀소 본능을 지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그 말씀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라는 죽음의 자리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아픈 사랑’이 담긴 언어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이토록 질긴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여전히 내 안에 변화가 없고, 신앙의 기쁨이 메말라버린 것 같아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까? 혹은 더 적극적으로 헌신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때가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니고데모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기다려 주셨고, 훗날 그는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는 담대한 제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도덕성이나 뜨거운 열정이 아닙니다. 그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처럼, 나의 빈곤한 마음을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의 문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우리를 생명력 넘치는 새로운 존재로 빚어 가실 것입니다.

이제 무거운 종교적 의무감을 내려놓고, 우리를 위해 높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 바라봄 속에 영생이 있고, 그 믿음 속에 세상을 이길 힘이 있습니다. 성령의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비상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거듭난 성도의 삶은 바람이 불어야만 소리를 내는 악기 ‘에올리언 하프(Aeolian Harp)’와 같습니다. 이 악기는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저 창가에 놓여 바람을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와 줄을 건드리는 순간, 그 어떤 연주자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천상의 선율을 울려 냅니다. 우리 인생도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노래가 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0 요한복음 5:16-30 멈추지 않는 사랑, 흐르는 생명의 노래 new 평화의길벗 2026.02.13 0
159 요한복음 5:1-15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절망의 베데스다를 넘어서 평화의길벗 2026.02.12 0
158 요한복음 4:43-54 보지 않고도 믿는 이의 복된 발걸음 평화의길벗 2026.02.11 0
157 요한복음 4:27-42 우물가에서 건져 올린 하늘빛 미소 평화의길벗 2026.02.10 1
156 요한복음 4:15-26 가면을 벗고 마주하는 참된 예배 : "내가 그로다" 평화의길벗 2026.02.09 2
155 요한복음 4:1-14 갈증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생명 : 우물가의 낯선 대화 평화의길벗 2026.02.08 2
154 요한복음 3:22-36 그늘의 기쁨 :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 평화의길벗 2026.02.07 2
153 요한복음 3:16-21 심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 빛으로 걸어 나오는 용기 평화의길벗 2026.02.06 4
» 요한복음 3:1-15 밤의 고독을 건너 생명의 새벽으로 : 니고데모의 물음 평화의길벗 2026.02.05 6
151 요한복음 2:13-25 본질을 잃어버린 성전을 향한 사자후 : "이것들을 여기서 치워라" 평화의길벗 2026.02.04 7
150 요한복음 2:1-12 결핍의 자리에 피어난 예기치 못한 은총 평화의길벗 2026.02.03 4
149 요한복음 1:35-51 존재의 지평을 넓히는 초대 : "와서 보아라" 평화의길벗 2026.02.02 6
148 요한복음 1:19-34 광야에서 들려오는 비움의 노래: "나는 소리일 뿐입니다" 평화의길벗 2026.02.01 5
147 요한복음 1:1-18 빛이 어둠을 만질 때 : 기억의 시원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평화의길벗 2026.01.31 6
146 창세기 21:22-34 평화, 척박한 땅에 심는 영원의 나무 ; 흔들리는 세상에서 영원을 살다 평화의길벗 2026.01.30 4
145 창세기 21:1-21 웃음소리 뒤편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시며 ; 버려진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시선 평화의길벗 2026.01.29 6
144 창세기 20:1-18 편견의 담장을 넘으시는 파격의 은총 ; 반복되는 실패, 변함없는 사랑 평화의길벗 2026.01.29 6
143 창세기 19:24-38 소금기둥 뒤에 남겨진 슬픈 자화상 - 수치스러운 역사도 안으시는 하나님 평화의길벗 2026.01.26 5
142 창세기 19:12-23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평화의길벗 2026.01.26 6
141 창세기 19:1-11 폭력의 시대, 환대가 구원이다다 평화의길벗 2026.01.25 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 8 Next
/ 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