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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2 결핍의 자리에 피어난 예기치 못한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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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우리 삶의 밑바닥에서 마주하는 '없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결핍의 공간을 주님의 창조적 개입을 기다리는 '빈 항아리'로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

잔치는 무르익고 흥겨움이 정점에 달할 무렵, 예기치 못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요 2:3). 잔치 집에서 포도주가 바닥났다는 것은 단순한 음료의 고갈을 넘어, 기쁨의 중단이자 환대의 위기를 의미합니다. 인생이라는 화려한 잔치상을 차려놓고 기세 좋게 살아가던 우리도 어느 순간 이 '결핍'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열정은 식고, 관계는 메마르며, 존재의 의미마저 가물거리는 '포도주 없는 잔치'와 같은 날들 말입니다.

김현승 시인은 "견고한 고독의 성벽"을 노래했지만, 우리 삶의 결핍은 우리를 고립시킬 뿐만 아니라 깊은 수치심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그 결핍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갑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이 짧은 보고는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기도입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혹은 더 뜨거운 삶을 열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있음'이 아니라 '없음'을 통해 일을 시작하십니다.

주님은 하인들에게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위해 비치된 그 항아리들은 율법의 형식에 갇혀 무미건조해진 당시 종교적 풍경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이 그 빈 항아리에 닿자, 밋밋한 물은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이 기적은 단순히 물질의 변화가 아닙니다. 낡은 시대가 가고, 생명의 환희가 넘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표적(Semeion)'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우리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하셨을 때의 그 은밀한 기쁨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시인 정호승이 "바닥에 주저앉아 본 사람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듯이, 자기 존재의 바닥을 경험한 사람만이 주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포도주'의 맛을 압니다. 세상은 시간이 갈수록 나쁜 것을 내놓지만, 주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고 진한 은혜를 우리 삶의 뒤편에 예비해 두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다만 비어 있는 우리 마음의 항아리를 당신께 내어놓기를 기다리실 뿐입니다. 신앙의 회의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포도주를 담기 위해 낡은 물을 비워내는 거룩한 통증일 수 있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결핍을 당신의 풍성함으로 채우시는 가없는 은총입니다.

오늘도 인생의 잔치판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며 낙심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그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의 물을 채워 넣으십시오. 예기치 못한 순간, 여러분의 메마른 일상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환희의 잔치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은총의 맛을 향유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축제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요한복음 2:1-12 결핍의 항아리를 채우는 은총, 그 맛 좋은 기적의 향연

.

인생의 축제가 멈출 위기 앞에서 맹물 같은 우리 일상을 가장 극적인 기쁨의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개입’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에 내 삶을 온전히 내어맡기는 ‘참여의 묵상’이 필요합니다.

*

잿빛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 대지 깊은 곳에서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계절입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오늘이라는 기적의 시간을 건너오신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 속에서 여전히 길을 찾고 계신 모든 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때로 화려한 잔칫집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언제 포도주가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장소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 잔치는 바로 그 삶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혼인 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주인의 체면이 깎이고 축제의 흥이 깨지는 심각한 결례이자 위기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합니다. 영원할 것 같던 기쁨은 찰나에 지나가고, 건강도, 재물도, 열정도 바닥을 드러낼 때가 옵니다. 한동일 변호사는 “삶이란 내가 원하지 않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물려받은 것들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원치 않게 찾아온 ‘결핍’의 순간, 우리는 당혹감과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바로 그 결핍의 현장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난감한 상황을 주님께 알립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요 2:3). 마리아의 말은 비난이나 강요가 아니었습니다. 곤경에 처한 이웃을 향한 안타까움과, 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뢰가 담긴 따뜻한 언어였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라며 거리를 두시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송민원 교수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질문과 응답의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거절은 무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때가 만나는 접점을 찾기 위한 거룩한 뜸 들이기였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고 이릅니다. 이것이 기적을 부르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십니다. 맹물을 떠다 주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따랐습니다. 이 맹목적일 만큼 순수한 순종,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묵상’의 자세입니다.

묵상은 단순히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속과 새 창조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나라 역사에 즐거이 ‘참여(Participation)’하는 것입니다. 또한 묵상은 “성경이 나를 읽게 하는 시간”이며, 나의 일상을 하나님의 이야기 속으로 편입시키는 ‘번역(Translation)’의 과정입니다. 하인들이 항아리에 물을 채운 행위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상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낯선 세계로 뛰어든 ‘참여의 묵상’이었습니다. 그들이 물을 채우고 떠다 주는 그 행위 자체가 바로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처음에 낸 것보다 더 좋은, 극상품의 포도주였습니다(요 2:10). 김기석 목사님은 이를 두고 “예수님은 맹물 같은 우리 인생을 향기롭고 맛있는 포도주로 바꾸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결핍을 채우시는 것을 넘어,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기쁨을 선물하십니다. 연회장은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요 2:9). 세상은 결과를 보고 놀라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 결과 이면에 흐르는 은혜의 비밀을 아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 안에 기쁨이 고갈되고, 신앙의 타성에 젖어 “나는 왜 여전히 이 모양일까?”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헌신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빈 항아리를 보시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빈 곳이야말로 주님의 은총이 채워질 거룩한 여백입니다.

한동일 선생은 “일어나 가자(Surgite, eamus;라틴어)”라고 했습니다. 주저앉아 있지 말고, 빈 항아리를 채우러 나아갑시다. 우리의 평범하고 지루해 보이는 일상, 반복되는 헌신과 봉사가 바로 물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묵묵히 그 항아리를 채울 때, 주님은 어느 순간 우리 삶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이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우리 삶의 혼돈 속에 찾아오셔서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닦으면 된다” 말씀하시는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의 맹물 같은 하루하루가 주님의 손길에 닿아 맛 좋은 포도주가 되어, 이웃의 갈증을 해소하고 세상에 기쁨을 전하는 아름다운 기적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악기를 ‘조율(Tuning)’하는 것과 같습니다. 줄이 느슨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듯, 우리의 일상이 욕망이나 나태함으로 흐트러질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 음감에 맞추어 우리 마음을 조율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인생은 소음이 아닌, 이웃과 세상에 깊은 울림을 주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선율’을 연주하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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