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야고보서 02:01-13 사랑은 차별하지 않는 것

*

말씀을 행하는 참된 경건을 말한 야고보는 이제 그 경건이 가장 먼저 시험받는 자리, 곧 성도들의 모임 안으로 들어갑니다.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금가락지와 아름다운 옷을 보고 좋은 자리를 내주며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을 발등상 아래로 내모는 차별을 해서는 안 됩니다(1-4절).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는데, 성도들은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습니다(5-7절).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이웃 사랑이라는 최고의 법을 어기는 죄입니다(8-11절). 그러므로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하고 행해야 하며,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12-13절).

*

# 어제 본문은 참된 경건이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끝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경건이 실제로 어디서 시험받는지를 보여 줍니다.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임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가난한 한 사람 앞에서입니다. 듣고 행하라는 권면이 이제 자리를 권하는 손짓과 입술의 말로 구체화됩니다. 2장 전반부는 1장에서 꺼낸 부와 가난의 주제를 다시 붙들어, 4장과 5장에서 부자들을 향해 쏟아질 엄한 경고로 가는 길을 놓습니다.

# 흩어진 열두 지파의 성도들은 대부분 가난했습니다. 날품을 팔고 남의 땅을 부치며 살았고, 약속한 소작료를 맞추지 못하면 지주에게 법정으로 끌려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공동체에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찾아오면 눈길이 먼저 그쪽으로 쏠렸을 것입니다. 그의 호의가 공동체의 형편을 펴 줄 것 같은 기대 때문입니다. 당시 회당에서는 부를 하나님의 복으로 여겨 부자에게 상석을 내주는 일이 흔했고, 그 습관이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어올 위험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모인 교회일수록 부자의 호의는 더 크고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구약 율법의 오랜 줄기입니다. 재판할 때 가난한 자의 편도 세력 있는 자의 편도 들지 말라는 말씀 바로 곁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놓여 있습니다(레 19:15, 18).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신 10:17).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눅 6:20)과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는 팔복(마 5:7)이 본문 전체에 울립니다.

*

# 1-7절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성부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

야고보는 다시 내 형제들아 부르며,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사람을 차별하는 일은 함께 갈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회당에 금가락지를 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장면을 그려 보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는 서 있든지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는 것은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셨는데 성도들은 도리어 그들을 업신여겼습니다(1-7절).

.

차별로 옮긴 말은 본래 얼굴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얼굴과 차림을 보고 그를 받아들이거나 밀어낸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얼굴을 들어 준다는 히브리 표현을 옮긴 것으로, 특히 재판 자리에서 쓰였습니다. 1절의 영광의 주라는 칭호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빛나는 임재를 가리키던 영광이라는 말을 예수님께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2절의 아름다운 옷도 본래 번쩍이는 옷, 빛나는 옷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단락 안에 두 빛이 마주 서 있습니다. 회당 사람들은 옷의 광채에 눈이 부셔 정작 영광의 주를 보지 못했습니다. 4절의 차별하며는 1장 6절에서 의심하다로 옮긴 동사와 같습니다. 주님 앞에서 쓰는 저울과 사람 앞에서 쓰는 저울이 다르니 그것이 두 마음입니다. 여기와 거기라는 짧은 두 낱말이 공동체를 둘로 가르고, 하나님께만 있는 판단의 권세를 사람이 가로채 스스로 재판관이 됩니다.

5절에서 야고보는 들을지어다 하고 다시 부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던 쉐마의 부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셨다는 말은 수가 가장 적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택하신 그 사랑의 연장입니다(신 7:7). 세상에서 가난한 자라는 말은 세상의 눈으로 보아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그들의 가난과 남루한 옷만 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믿음에 부요한 사람, 나라를 상속받을 사람으로 보십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하나님이 높이신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굽실거린 부자들은 바로 성도들을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이었고, 성도들이 세례받을 때 그 위에 일컬어진 아름다운 이름, 곧 예수님의 이름을 비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차별은 작은 실례가 아니라 결국 박해하는 편에 서서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주님께서 지으시고 값 주고 사신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버린 이를 택하사 부요하게 하시는 역설의 방식으로 다스리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늘 챙기시는 주님의 긍휼은 가난한 인간의 실존을 꿰뚫어 보신 하나님의 배려와 은혜입니다. 영광의 주이신 예수님도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이 오셨습니다(사 53:2). 야고보 자신도 한때 형이셨던 예수님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여 믿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권면은 겉모습 너머의 영광을 뒤늦게 알아본 사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영광의 주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계셨던 낮은 자리에서 그분을 알아보는 눈을 얻는 일입니다. 그 눈을 얻은 사람은 남루한 옷 속에서도 하나님이 택하신 상속자를 봅니다.

.

우리는 누구나 눈이 마음보다 빠른 사람들입니다. 눈은 한순간에 값을 매기고, 마음은 그 값을 따라 움직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의 차림과 말씨와 타고 온 차를 보고 어느새 마음속 자리를 정해 버립니다. 나의 사람 대함은 빈부의 격차와 지위의 높낮이, 배움의 많고 적음과 신분의 차이에 따라 차별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가정에서는 잘하는 자녀와 더딘 자녀를 다른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지, 형편이 넉넉한 친척과 어려운 친척을 다르게 대하고 있지 않은지 살핍시다. 일터에서는 도움이 될 사람에게만 웃고, 내게 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심하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우리교회 예배당 문을 처음 열고 들어오는 분이 어떤 옷을 입었든 가장 따뜻한 자리로 안내받는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헌금의 크기나 직분의 이름, 오래 다닌 햇수가 자리를 정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 남는 모임이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주일에는 내가 늘 앉던 익숙한 자리를 처음 온 분께 기꺼이 내어 드리고, 아직 이름을 모르는 교우에게 먼저 다가가 이름을 물어봅시다. 새로 온 분이 어색해 보이면 곁에 앉아 주보를 펴 드리고 찬송가 장을 짚어 드립시다. 예배가 끝난 뒤 그분이 혼자 서 있지 않도록 식탁으로 모시고 함께 밥을 먹읍시다. 교회 밖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게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가 무심코 매기는 마음속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주님의 눈으로 다시 배치하는 연습을 날마다 해 봅시다. 겉옷을 보던 눈을 거두고 그 사람의 얼굴과 이야기를 보려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우리가 밀어내지 않는 것, 그것이 영광의 주를 믿는 믿음의 첫 표지입니다. 우리의 환대가 주님의 환대를 닮아 갈 때 세상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미리 보게 됩니다.

*

# 8-11절 차별은 죄를 짓는 일이다

성자 예수님은 이웃 사랑이라는 최고의 법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

야고보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며 율법이 그를 범법자로 정죄합니다.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됩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살인하지 말라고도 하셨으니, 간음하지 않았어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입니다(8-11절).

.

최고의 법으로 옮긴 말은 문자 그대로 왕의 법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세우신 법, 하나님 나라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앞 5절에서 하나님이 가난한 자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말했으니, 그 나라의 왕이 주신 법이 이웃 사랑이라는 흐름입니다. 야고보가 인용한 레위기 19장 18절은 재판에서 차별하지 말라는 15절 바로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차별 금지와 이웃 사랑을 한 몸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에게 가난한 사람은 무엇보다 이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요 우리 곁에 앉아야 할 사람입니다. 8절과 9절은 지키면과 차별하면을 나란히 세워, 같은 자리에서 두 길이 갈린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차별이라는 말은 9절에 동사로 다시 나와 1절과 단락을 하나로 단단히 묶습니다.

10-11절은 율법을 조문의 묶음으로 보는 생각을 바로잡습니다. 열 가지 중 아홉을 지켰으니 대체로 괜찮다는 계산은 율법 앞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다는 말이 열쇠입니다. 율법이 하나인 것은 그 율법을 주신 분이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범하는 것은 조문 하나를 어긴 것이 아니라 그 법을 주신 분의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하시고 형제에게 노하는 것을 살인과 나란히 놓으신 주님의 말씀이 여기서 울립니다(마 5:18, 22).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은 이미 그 사람을 내 세상에서 지우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차별은 사소한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일입니다. 율법을 범하고서 어찌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차별과 숭배와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긍휼과 사랑의 대상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며 우리 신앙의 목표입니다(롬 13:10). 사랑할 수 있는 성도가 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 온전한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관된 원칙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켜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원칙을 가장 온전히 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왕의 법을 입으로만 가르치지 않으시고 세리와 죄인의 식탁에 앉으셨고, 마침내 원수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최고의 법은 그 십자가에서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 사랑은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먼저 사랑받은 사람이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응답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는 누구도 좋은 자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큰 죄는 두려워하면서도 작은 차별은 쉽게 넘깁니다. 지금 내가 차별하며 대하는 사람이 있는지 정직하게 물어봅시다. 나의 대인관계에서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향한 나의 태도는 어떤지, 말투와 표정과 시간을 내어 주는 일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지 살펴봅시다. 가정에서는 식탁의 대화 속에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농담이 섞여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아이들은 우리가 하는 말보다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이웃을 배웁니다. 부모가 경비원에게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자녀에게는 가장 오래 남는 설교가 됩니다. 일터에서는 청소하는 분과 경비하는 분, 아르바이트하는 젊은이에게 건네는 인사가 상사에게 건네는 인사와 같은 온도인지 살펴봅시다. 온라인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향해 쉽게 던지는 말도 살펴봅시다. 화면 너머에도 하나님이 지으신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안에서도 오래된 교우와 새로 온 교우, 봉사를 많이 하는 분과 그렇지 못한 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지 함께 돌아봅시다.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랑의 법은 그 선을 지우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이번 주에는 내가 무심히 지나치던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안부를 묻고, 그 사람을 위해 한 번 기도합시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를 내 이웃의 자리에 앉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차별받았던 기억도 떠올려 봅시다. 그때의 서러움을 기억한다면 같은 서러움을 다른 사람에게 안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별의 상처를 아는 사람이 차별 없는 사랑의 가장 좋은 증인이 됩니다. 또 내가 속한 모임의 단체 대화방이나 소식지에서 늘 같은 몇 사람만 칭찬받고 늘 같은 몇 사람만 잊히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이게 하는 것도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서로의 형편을 묻는 그 작은 걸음이 왕의 법을 지키는 길입니다. 사랑은 거창한 결심보다 오늘 한 사람을 향해 몸을 돌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

# 12-13절 긍휼은 심판을 이긴다

성령 하나님은 자유의 율법으로 우리를 빚으사 긍휼을 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고 권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단락 전체를 짧고 단단한 잠언 한 줄로 맺습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차별하지 말라는 금지가 긍휼을 행하라는 적극적인 초대로 바뀌면서 단락이 닫힙니다(12-13절).

.

자유의 율법은 1장 25절에서 이미 나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계명을 중심으로 새롭게 밝혀 주신 율법, 우리를 묶지 않고 살리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자유롭다는 말이 심판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심판받을 자처럼이라는 말은 우리 삶이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셈해질 것을 기억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짝은 그냥 넘길 말이 아닙니다. 회당 문간에서 여기 앉으소서와 거기 서 있으라고 했던 그 입술을 떠올리게 하고, 3장에서 다룰 혀의 문제를 미리 내다보게 합니다. 차별은 먼저 말로 드러나고, 긍휼도 먼저 말로 드러납니다. 입술은 마음의 자리를 가장 먼저 알려 주는 창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은 오늘 문간에서 건네는 한마디도 그분 앞에서 건네는 마음으로 건넵니다.

13절은 2인칭 권면에서 3인칭 격언으로 갑자기 바뀝니다. 본래 따로 전해지던 잠언을 야고보가 단락의 매듭으로 놓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긍휼 없는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옵니다. 긍휼을 보이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받을 심판에서도 긍휼을 기대할 수 없다는 엄한 경고입니다. 만 달란트를 탕감받고도 동료의 백 데나리온을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가 그 뜻을 그림처럼 보여 줍니다(마 18:33). 그런데 마지막 말은 경고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자랑한다는 말은 맞서서 이기고 개가를 부른다는 뜻입니다. 심판이 끝 말이 아니라 긍휼이 끝 말입니다. 긍휼을 행하는 사람은 심판대 앞에서 떨지 않고 오히려 담대히 섭니다. 긍휼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고 하나님이 당신을 소개하시는 첫 낱말입니다. 여호와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당신을 알리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출 34:6).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고 온전케 하는 일을 잘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도 잘하는 사람입니다(요일 4:20).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살아야 할 우리의 언행심사는 결국 최후의 심판 앞에 서게 됩니다. 그날 우리를 세우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심판을 이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심판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먼저 긍휼을 베푸셨고, 성령께서 그 긍휼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이웃의 아픔에 함께 울게 하십니다. 그래서 긍휼을 행하는 일은 심판을 피하려는 계산이 아니라 이미 받은 긍휼의 열매입니다. 사랑과 긍휼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그 사랑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때 얻는 이름입니다.

.

우리는 판단하는 데는 빠르고 긍휼히 여기는 데는 더딥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율법을 다 이룬 것이니, 긍휼의 마음을 품고 이 한 주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나는 누구를 판단하는 말을 했고, 누구에게 긍휼의 말을 건넸는지 저녁에 돌아봅시다. 가정에서는 실수한 식구에게 따지는 말보다 먼저 감싸 주는 말을 건넵시다.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일터에서는 일이 더딘 동료를 몰아세우기 전에 그의 사정을 한 번 더 물어봅시다. 긍휼은 상대를 내려다보는 동정이 아니라 그의 자리로 내려가 함께 앉는 마음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보다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일을 더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넘어진 베드로를 꾸짖기보다 숯불을 피워 아침을 먹이시고 다시 부르셨습니다. 우리교회가 심판의 목소리보다 긍휼의 목소리가 먼저 들리는 공동체, 실패한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주에는 내게 섭섭하게 했던 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 봅시다. 내가 받은 긍휼이 얼마나 컸는지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그 긍휼을 이웃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앞에서 너그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긍휼을 입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기억합시다. 또한 우리 지역의 가난한 이웃, 홀로 사는 어르신, 낯선 땅에 와서 일하는 이웃들을 위해 우리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기도하며 찾아봅시다. 긍휼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손과 발로 완성됩니다.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걸어 주는 병원 길, 서류 한 장을 대신 읽어 주는 수고가 모두 긍휼의 얼굴입니다. 긍휼이 심판을 이기는 그 승리가 우리의 작은 하루에서부터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내가 건넨 긍휼 한 조각이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을 다시 믿게 하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

# 거둠의 기도

영광의 주님,

주의 종으로 주님을 믿게 하시고

주의 긍휼과 사랑을 힘입어

주의 나라 백성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

세상에서 가난한 저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금가락지와 아름다운 옷에 눈이 멀어

주께서 택하신 사람을

발등상 아래로 밀어내지 않게 하옵소서.

.

주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며

서로 사랑하라 하신 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긍휼로 대하게 하옵소서.

왕의 법을 지켜

온전한 자로 자라 가게 하옵소서.

.

판단하는 입술보다

긍휼을 건네는 입술이 되게 하시고

심판을 이기는 주의 긍휼을

우리교회와 저의 하루에 채워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야고보서 02:01-13 사랑은 차별하지 않는 것 new 평화의길벗 2026.10.17 19
1299 야고보서 01:19-27 경청과 행함과 경건 평화의길벗 2026.10.16 19
1298 야고보서 01:12-18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평화의길벗 2026.10.15 32
1297 야고보서 01:01-11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평화의길벗 2026.10.14 42
1296 사사기 21:13-25 왕이 없던 시대의 끝, 참 왕을 기다리는 베들레헴 평화의길벗 2026.10.13 21
1295 사사기 21:01-12 벧엘의 울음, 맹세는 지키고 생명은 버린 셈법 평화의길벗 2026.10.12 39
1294 사사기 20:29-48 여호와께서 치신 싸움, 사람이 넘어선 칼끝 평화의길벗 2026.10.11 58
1293 사사기 20:08-28 누가 먼저냐 묻던 입이 말리이까를 배우기까지 평화의길벗 2026.10.10 61
1292 사사기 20:01-07 한 사람 같이 모인 분노, 먼저 여쭙지 않은 정의 평화의길벗 2026.10.09 53
1291 사사기 19:22-30 문지방에 놓인 두 손, 침묵을 깨고 말하라 하시는 하나님 평화의길벗 2026.10.08 74
1290 사사기 19:11-21 이방 성읍을 피해 들어선 광장, 안심하라 말한 한 나그네 평화의길벗 2026.10.07 78
1289 사사기 19:01-10 마음에 말하러 간 길, 해 기운 뒤에 나선 걸음 평화의길벗 2026.10.06 51
1288 사사기 18:21-31 빼앗긴 신 앞의 탄식, 실로를 비껴간 성소 평화의길벗 2026.10.05 49
1287 사사기 18:01-20 기업을 버린 발, 값을 좇아간 제사장 평화의길벗 2026.10.04 63
1286 사사기 17:01-13 여호와의 이름으로 세운 신당, 값을 치르고 사려는 복 평화의길벗 2026.10.03 69
1285 사사기 16:15-31 밀린 머리털 위에 다시 돋는 은혜, 무너진 다곤의 집 평화의길벗 2026.10.02 56
1284 사사기 16:01-14 성문을 멘 어깨가 베틀에 묶이기까지, 한 올씩 내어 준 구별됨 평화의길벗 2026.10.02 56
1283 사사기 15:01-20 되갚음의 사슬 끝에서 터뜨리신 부르짖는 자의 샘 평화의길벗 2026.09.30 65
1282 사사기 14:01-20 내려가는 걸음, 뒤따르는 손 평화의길벗 2026.09.29 67
1281 사사기 13:15-25 이름을 묻는 손, 기묘자라 하신 분 평화의길벗 2026.09.28 7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65 Next
/ 6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