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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01:01-11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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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부르며,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합니다(1절). 이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가 끝까지 일하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2-4절). 시험을 헤쳐 갈 지혜가 부족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되,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라고 권합니다(5-8절). 끝으로 가장 흔한 시험인 가난과 부를 들어, 낮은 형제는 높음을, 부한 자는 풀의 꽃처럼 지나갈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9-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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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열하루 동안 야고보서를 읽습니다. 지난 여섯 주 동안 읽은 사사기는 왕이 없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의 끝을 보여 주었습니다. 야고보서는 그 물음에 답하듯 첫 줄부터 누가 주인인가를 밝힙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문장이 왕의 부재였다면, 야고보서의 첫 문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고백입니다. 주제로 보면 자기 소견을 따르던 마음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이음입니다. 왕이 없던 땅에서 흔들리던 백성의 이야기 뒤에, 왕을 모신 나그네들이 시험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편지가 놓였습니다.

# 수신자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입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씨앗을 흩뿌린다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뒤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새 이스라엘이 된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나그네였고, 대부분 가난한 날품팔이와 소작농이었으며, 부유한 지주들에게 억눌리고 법정으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이 편지의 모든 권면은 그 낮고 고단한 자리에서 읽어야 합니다. 시험과 가난과 차별은 이 편지에서 비유가 아니라 수신자들이 날마다 겪던 현실이었습니다.

# 야고보서는 사건을 이어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권면과 잠언으로 짜인 지혜의 편지입니다. 짧은 명령문이 줄을 잇고 주제가 되풀이되며 깊어집니다. 그리고 거의 줄마다 산상수훈이 울립니다. 박해 가운데 기뻐하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땅에 보물을 쌓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 본문에 고스란히 비칩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은 이가 그 말씀을 흩어진 교회의 일상으로 옮겨 놓은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험, 지혜, 부라는 세 주제를 미리 꺼내 놓는 서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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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 신앙은 정치다

성부 하나님은 그분을 형으로만 알던 사람을 아들의 종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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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자신을 주의 형제라 소개하지 않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부릅니다. 한때 형님을 미쳤다고 여겨 붙들러 갔던 동생이 이제 그분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 위에 그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합니다. 짧은 인사 안에 편지의 권위와 수신자의 형편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혈연의 이름 대신 종의 이름을 고른 데서 그가 누구를 왕으로 모셨는지가 드러나고, 주소 없는 주소에서 흩어진 교회의 처지가 보입니다(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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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었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동안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고, 한때는 그분이 미쳤다는 말을 듣고 붙들러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편지 첫 줄에서 그는 주의 형제라는 칭호를 내려놓습니다. 그 이름만 썼어도 누구도 그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겸손해서라기보다 예수님을 전혀 다르게 보게 되었기 때문에 그 칭호를 쓸 수 없었습니다. 혈연으로 정의하기에는 그분이 너무도 존귀하신 분이었습니다. 종이라는 말은 주인에게 온전히 속한 사람을 뜻합니다. 동시에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은 모세와 다윗과 선지자들에게 붙은 영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야고보는 그 두 뜻을 함께 짊어집니다.

주와 그리스도라는 두 칭호는 초대교회 복음 선포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가 그것입니다(행 2:36). 주라는 말은 섬김을 받으실 분, 다스리실 분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신앙은 결국 누가 나와 천지 만물의 주인인가를 아는 일이며, 그 주님을 영접하고 믿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정치를 누가 왕인가의 문제라고 정의한다면 신앙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정치입니다. 사사기가 왕이 없던 시대로 막을 내렸다면, 야고보는 첫 줄에서 왕이 누구신지를 고백하며 입을 엽니다.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라는 주소는 오늘의 눈으로 보면 모호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정확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열두 지파를 다시 세우시려고 열두 제자를 부르셨고, 이제 이방인까지 포함한 새 이스라엘을 세상 곳곳에 흩으셨습니다. 흩어짐은 패배가 아니라 파종입니다. 광야를 지나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의 공동체, 그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을 알아갈수록 종 됨이 복이요, 하나님나라 백성을 세우는 일에 부르신 사명이 은혜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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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을 무엇이라 소개합니까. 직함과 학력과 소속으로 자기를 증명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야고보는 누구와 가깝다는 사실보다 누구에게 속했는가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나의 가장 앞에 붙는 이름이 주의 종이 될 때, 나머지 이름들은 제자리를 찾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로, 일터에서 상사와 동료로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서 내가 섬기는 주인이 누구인지 드러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종의 자유입니다. 종에게는 자기 이름을 지킬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교회 역시 주님의 몸이요 그분의 백성을 양육하는 곳입니다. 그 일을 여전히 맡겨 주신 것에 감사하며, 모든 사역과 삶의 주인이신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역시 이 땅에서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세상에서 느끼는 낯섦과 소외감은 하늘 시민이 피할 수 없는 정체성의 일부이니 너무 서러워하지 맙시다. 오늘 아침 묵상의 자리에서 먼저 물어봅시다. 지금 내 삶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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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절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가라

성자 예수님은 시련의 용광로에서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빚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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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형제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명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내가 끝까지 제 일을 다 하도록 두라고 덧붙입니다. 그러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기쁨에서 시작해 온전함으로 끝나는 흐름입니다. 시험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보다 시험을 어떻게 여길지,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를 먼저 말합니다(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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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원문에서 야고보서 본론의 첫 낱말은 모든 기쁨입니다. 순전한 기쁨, 전적인 기쁨을 뜻합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밖에서 오는 고난과 안에서 일어나는 유혹을 함께 담고 있고, 여러 가지라는 말은 오색실처럼 갖가지라는 뜻입니다. 질병과 실직과 가난과 관계의 깨어짐이 다 시험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것을 기쁘게 느끼라고 하지 않고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여기라는 동사는 감정이 아니라 판단과 해석의 말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첫걸음은 그 일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읽는 눈, 곧 묵상에서 시작됩니다. 남이 내린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의 빛 아래서 내 시험을 새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의 근거는 앎입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련으로 옮긴 말은 금을 녹이는 도가니, 순도를 가려내는 시험대를 가리킵니다. 불은 금을 없애지 않고 불순물을 태웁니다. 인내는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짐 아래 머물며 끝까지 목표를 이루어 가는 힘입니다. 이 기쁨은 고통을 모른 체하는 무심함이 아니라 마지막 날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을 내다보는 사람의 기쁨입니다.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는 주님의 말씀이 여기서 울립니다(마 5:11-12).

4절에는 온전하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인내가 온전한 일을 이루게 하라는 것이고, 그 결과 온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온전함은 흠 하나 없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목적에 이른 성숙, 언행심사가 하나로 맞물린 상태입니다. 구비하다는 말은 모든 부분이 다 갖추어졌다는 뜻입니다. 노아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 부른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그 아들의 형상으로 빚어 가십니다. 십자가에서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이 그 온전함의 얼굴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결과를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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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말씀을 남에게 건넬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시험의 결과에 대한 소망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의 고통과 아픔은 결코 쉽게 기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파하는 성도에게 곧바로 기뻐하라, 주님의 뜻이다, 온전케 되는 여정이다 하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야고보는 그 결과를 확신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고, 우리는 먼저 함께 우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오늘 시험의 여정에 있는 성도가 있다면 다만 함께 아파하고 그 사정을 들어 주며, 인내할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지친 식구의 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일터에서 실패한 동료를 재촉하지 않는 것도 그 길입니다. 우리교회가 시련을 지나는 지체에게 정답을 들이밀기보다 곁을 지키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시험을 지날 때는 이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여겨 보는 묵상의 자리로 삼읍시다. 지금은 알 수 없어도 이 아픔이 훗날 어떤 무늬로 완성될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 신뢰가 기쁨의 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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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절 시험을 이기는 지혜와 기도

성부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는 자녀에게 꾸짖지 않으시고 망설임 없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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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가 끝까지 일하려면 부족함이 없어야 하는데, 정말 부족한 것은 지혜입니다. 야고보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합니다. 다만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요동하는 물결 같고,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로 단락이 끝납니다.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받는 사람의 태도가 나란히 놓였습니다(5-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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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건강과 시간과 돈과 사람이 채워지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가장 먼저 채워져야 할 것이 지혜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지혜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상황을 보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지혜를 구하라는 말은 그것이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꾀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며,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립니다. 넘치는 소유도 지나친 결핍만큼 시험이 될 수 있음을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후히 주신다고 옮긴 낱말은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말로, 단순하게, 망설임 없이, 한마음으로 준다는 뜻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이 말은 8절의 두 마음, 곧 영혼이 둘로 갈라진 상태와 정확히 맞섭니다. 하나님은 줄까 말까 저울질하지 않으시고, 주고 나서 생색을 내거나 꾸짖지 않으십니다. 옛 지혜서는 조금 주고 많이 꾸짖으며 오늘 빌려주고 내일 갚으라 하는 어리석은 자를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정반대이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주님의 약속이 그 뒤에 있습니다(마 7:7-11).

그렇다면 응답을 막는 것은 하나님 쪽이 아니라 구하는 사람 쪽입니다. 의심하는 자로 옮긴 말은 자기 자신과 다투는 사람,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과 신뢰하지 않는 마음 사이를 오가는 사람입니다. 한 발은 하나님께, 한 발은 세상에 걸친 채 둘 다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바람 부는 대로 밀리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상황이 바뀔 때마다 믿음도 섰다 넘어졌다 합니다. 기도는 나의 무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긍정하는 일입니다. 한마음으로 주시는 아버지 앞에 한마음으로 서는 것, 그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 두 마음은 4장에서 다시 나와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는 부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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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닥친 고난을 들여다보면 결국 주님과의 관계가 근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을 온전히 아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아가기 위해 기도하고, 그렇게 알게 된 뜻에 순종하기 위해 다시 기도합니다. 믿음의 가족들이 겪는 시련 가운데 질병이 가장 어렵습니다. 오늘날 질병은 돈과도 얽혀 있어 늘 시험 앞에 서게 합니다. 그럴수록 이 일을 통해 연단하시는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2016년 이 본문을 묵상하던 무렵의 어느 새벽, 알지 못하는 분이 우리교회 예배당에 다녀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녀가라 하셨다며 쪽지와 헌금을 두고 가셨습니다. 기도와 섬김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고, 그분의 기도에 좋은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며 내가 더 기도해야 한다는 주님의 사인으로 들었습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지혜가 부족할 때 먼저 사람을 찾기 전에 꾸짖지 않으시는 아버지께 구합시다. 그리고 기도한 뒤에는 다시 계산기만 두드리며 두 마음으로 서성이지 말고, 응답하실 분을 신뢰하며 기다립시다. 우리교회의 기도 자리도 그런 한마음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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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절 돈 사랑은 일만 악의 뿌리

성령 하나님은 시드는 풀의 꽃 대신 영원한 것을 자랑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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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시험의 첫 예로 가난과 부를 듭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부한 자는 풀의 꽃처럼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면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듯, 부한 자도 자기 일을 하다가 쇠잔해집니다. 부의 덧없음이 단락을 맺습니다. 세상의 저울로 보면 뒤집힌 말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눈으로 보면 각자의 참된 자리를 알려 주는 말입니다(9-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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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기도를 말하던 야고보가 갑자기 가난과 부를 꺼내는 것이 어색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흩어진 성도에게 가장 실제적이고 뼈아픈 시험은 경제적 빈곤과 부자들의 착취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너무 살기 어려워 신앙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을 받고, 부한 사람은 풍요가 우상이 되는 유혹을 받습니다. 야고보는 이 주제를 2장의 차별, 4장의 허탄한 자랑, 5장의 부자에게 주는 경고에서 거듭 다룹니다. 오늘 본문은 그 모든 이야기의 씨앗을 미리 심어 둡니다. 앞 단락의 두 마음이 가장 흔히 갈라지는 자리가 바로 돈 앞이라는 점에서 이 연결은 자연스럽습니다. 말과 돈은 언제나 사람이 하나님 대신 붙잡아 온 힘이었습니다.

낮은 형제가 자랑할 높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 신분입니다. 세상은 그를 날품팔이로 보지만 하나님은 그를 믿음에 부요한 자, 나라를 상속받을 자녀로 보십니다. 부한 자가 자랑할 낮아짐은 돈으로 막을 수 없는 유한한 실존을 깨닫는 겸손입니다. 복음은 세상의 저울을 뒤집습니다. 풀과 꽃의 비유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다는 이사야의 노래에서 왔습니다(사 40:6-8). 팔레스타인의 동풍은 사막의 열기를 몰고 와 하루 만에 들꽃을 말려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쇠잔하리라는 말은 길을 가던 중에 스러진다는 뜻으로, 한창 일하던 자리에서 갑자기 끝나는 인생을 그립니다.

그래서 지혜자 아굴은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라고 기도했습니다(잠 30:8). 너무 가난하면 낙심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너무 부하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기 쉽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처럼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향한 마음의 방향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이 이 대목과 겹칩니다. 부요하신 이로서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가 참된 높음과 낮아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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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문제는 결코 가장 큰 문제가 아니며, 사람과의 관계가 더 큰 문제라고 자주 말합니다. 있는 것으로 족하게 살고, 비교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살며, 오늘 주어진 자리에서 복을 누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압박이 많은 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의 벼랑으로 내몰기도 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믿음만이, 그 하나님을 아는 지혜만이 그 벼랑 끝에서 다시 설 용기를 줍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부부와 자녀와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가족과 이웃을 잃어버리지 않고 잊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돈 이야기가 사랑의 언어를 밀어내지 않게 하고, 일터에서 이익보다 사람을 먼저 보게 합시다. 우리교회 안에서도 가진 것으로 서로를 재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의 분주함은 돈 때문인지, 믿음의 시련인지 오늘 점검해 봅니다. 돈이 내 결정의 몇 번째 자리에 놓여 있는지 정직하게 살펴보고, 시들 꽃 대신 영원한 말씀을 자랑하는 하루를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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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형으로만 알던 분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시고

저를 주님의 종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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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시험이 몰려올 때

믿음의 시련 가운데서도 기뻐할 이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파하는 지체에게 정답보다 곁을 먼저 내어 주게 하시고

인내가 끝까지 일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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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 없이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아버지,

지혜가 부족한 저희가 두 마음을 내려놓고

한마음으로 구하게 하옵소서.

병과 빚의 무게 앞에서도 

주의 뜻을 찾는 기도를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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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꽃처럼 지나갈 것을 자랑하지 않고

시들지 않는 말씀을 붙들게 하시며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가정마다

만물의 주인 되신 주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우리교회가 흩어진 나그네의 자리에서도

주님을 왕으로 모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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