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2:24-33 교만을 이기고 겸비함으로 얻는 영원한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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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여호와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이적을 보이시며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후 마음이 교만하여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와 유다, 예루살렘에 진노를 내리셨습니다.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스스로 겸손히 뉘우치자,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거두시고 그의 생전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큰 부와 영광을 누렸으며, 바벨론 사신들의 방문을 통해 시험을 받았으나, 결국 그의 선한 행적은 높이 평가받으며 존귀하게 장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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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6절 교만은 죽음을 부르는 병이지만, 겸손한 회개는 긍휼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교만으로 은혜를 잊은 자에게는 엄중히 진노하시지만, 스스로 겸비하여 회개하는 자에게는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자비의 심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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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여호와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이적을 통해 그에게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그와 유다,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겸손히 행동하자,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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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 사건과 교만의 죄를 병렬적으로 제시하며, 기도와 응답의 주제와 함께 교만과 징계라는 역대기의 핵심 보응 신학을 드러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적으로 응답하셨으나, 병에서 나은 후 곧바로 교만에 빠집니다. 여기서 교만은 단순히 오만함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영적인 망각과 배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공로로 착각할 때(성공에 도취될 때) 교만이 찾아옵니다. 실제로 유다의 선한 왕들조차 강성해진 후에 교만으로 인해 심판을 받은 사례가 많았습니다 (웃시야, 아마샤).
이러한 교만은 히스기야 개인의 죄에 그치지 않고, 유다와 예루살렘까지 진노가 임하게 하는 공동체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지도자 한 사람의 교만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갖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곧바로 회개라는 회복의 길을 제시합니다. 히스기야와 백성들이 스스로 겸비하여 마음을 뉘우치자,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유보(delay)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 결정이 철회될 수는 없더라도, 회개와 겸손을 통해 재앙이 연기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약성경에서도 겸손 은 구원과 직결되는 핵심적인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눅 14:11; 18:14). 죄를 숨기지 않고 아뢰는 자에게 복이 있다 는 다윗의 고백처럼 (시 32:5), 고난 중에도 주님을 찾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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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왕 중 하나로 평가받는 히스기야조차 번영의 순간에 교만하여 넘어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형통할 때일수록 더욱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현대 사회에서 교만은 물질적 성공이나 명예, 또는 자기 확신(Self-confidence)의 형태로 위장하여 찾아옵니다. 우리는 나의 모든 성취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고백하고, 이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교만에 빠지지 않는 지름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예기치 않은 고난(병, 재정적 어려움)이 닥칠 때, 그것이 혹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결과는 아닌지 겸손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가정 내에서 평안할 때 (번영의 시기) 영적인 훈련이나 말씀 묵상을 소홀히 하는 태도(교만의 첫걸음)를 버리고,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하며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겸손함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는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권면이나 책망)을 쓴소리로 여기고 거부했던 아사 왕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스스로 겸비하여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임한 영적, 사회적 재앙(진노)을 미루시고 치유와 회복을 베푸실 수 있음을 믿고 중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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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31절 축복은 시험의 도구이며, 오직 하나님 신뢰만이 참된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부와 영광의 축복을 주시어 영광을 받으시지만, 이 축복을 통해 인간의 중심을 알고자 시험하시어, 오직 당신만을 의지하는 신뢰의 신앙 을 요구하시는 주권적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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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는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은금과 보석, 향품, 방패 등 온갖 보배로운 물건을 위한 국고와 창고를 세웠으며, 양 떼와 소 떼를 위한 성읍들을 세웠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형통(성공)하였습니다. 바벨론 방백들이 이적에 관심을 가지고 히스기야에게 사절단을 보냈을 때,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시험 하려고 그를 떠나 홀로 두셨습니다. 이는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모두 알고자 하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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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 저자는 히스기야의 부와 영광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이는 그의 교만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왕임을 나타내는 데 기여합니다. 그의 축복(창고, 수로 공사 등)은 하나님의 은총의 표식들이었으며, 그가 행한 모든 일이 성공했다는 것은 역대기 보응 신학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축복의 절정에서 시험이 찾아옵니다. 바벨론 사절단의 방문(왕하 20:12)은 히스기야의 병과 연관되지 않고, 이적에 관심을 가진 이방인들의 호기심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히스기야를 떠나 홀로 두셨는데, 이는 히스기야의 심중(心臟)에 있는 것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시험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스스로에게 맡겨두는 상황이며, 이때 인간은 하나님 편에 설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부귀를 과시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열왕기 기사).
이 내러티브는 참된 지혜와 영적인 분별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요함은 정권을 강화하는 구실이 되거나 개인적인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삼상 16:7)이시므로, 우리의 외적인 성공보다 내면의 진실함을 중요하게 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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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번영신학을 경계하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선물 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상이 권력이나 명예에 매료될 때, 우리는 그 권세가 공의롭게 사용되는지 에 초점을 맞추어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얻은 재능, 물질, 지위가 하나님과의 관계 를 시험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신의 보물을 자랑했던 히스기야의 실패는, 우리가 SNS나 일상생활에서 허탄한 자랑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공로로 대체하려는 유혹을 물리쳐야 함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청지기 의식을 확고히 하여, 주신 모든 것을 이웃과 나누고 하나님 나라의 선을 위해 사용할 때, 교만에 빠지지 않고 겸손히 처신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물질적 풍요나 외적인 규모를 하나님의 임재나 축복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없는 부와 강성은 위태롭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공동체의 번영이 하나님을 잊게 하는 올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세상의 지혜와 기술(솔로몬의 무역처럼)을 건전한 방식으로 활용하되, 거룩함을 잃지 않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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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33절 참된 선한 삶은 끝까지 겸손히 행하여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다윗 언약에 신실하시어 끝까지 겸손과 순종을 지키려 노력하며 선한 일을 행한 왕에게 영원한 존귀와 영광으로 보상하시는 인애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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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의 모든 선한 일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 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들(다윗의 자손)의 묘실 중 가장 높은 곳에 장사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경의를 표하였으며,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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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 저자는 히스기야의 생을 "모든 선한 일" 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마무리합니다. 여기서 '선한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단순히 착한 행위를 넘어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과 헌신을 의미하며, 그의 신앙 개혁 (성전 정화, 유월절 준수), 기도, 하나님 신뢰, 순종 등의 실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에 빠지고 일시적으로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최종적인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가 다윗 자손의 묘실 중 가장 높은 곳 에 장사되었다는 기록은 그에게 주어진 영예로운 평가이며, 그의 선한 공적을 치하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는 왕들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했던 악한 왕들(요아스, 여호람, 아하스)과는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이처럼 역대기에서 삶의 마침표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데, 초기의 선함(요아스)보다 끝까지 신실함 을 지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영원한 영광임을 보여줍니다.
역대기 저자가 히스기야의 생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포로 후기의 독자들에게 인간의 불완전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다윗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을 이루신다는 소망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지만, 그 은혜에 합당하게 거룩한 백성으로 순종하며 처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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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의 경주에서 '끝까지의 신앙'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두 번의 실수나 실패가 우리의 운명을 완전히 결정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용기 입니다. 세상의 평판이나 일시적인 성공에 연연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선하게 행한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영원한 평가를 얻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말씀과 순종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선한 유산을 남겨야 합니다. 부모의 작은 실수(산당을 온전히 제거하지 못했던 여호사밧의 예)가 자녀와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명심하고, 날마다 말씀 앞에 서서 겸손히 성숙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비판에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개인의 영광 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과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공동체의 영적 건강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가 행해야 할 '선'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선한 행위 (헤세드)를 통해 영광을 얻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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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지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역대하 32장 말씀을 통해 저희의 삶의 모든 순간이
오직 당신의 주권적인 은혜 아래 있음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위기 속에서 기도할 때 응답하시고 이적을 베푸시지만,
축복 속에서 교만하여 은혜를 망각 하는 저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희의 마음속에 숨겨진 허탄한 자랑의 끈과
하나님보다 의지하는 모든 우상의 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할 용기를 주시고,
스스로 겸비하여 늘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전심의 예배자 가 되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주신 재능과 부요함이
저희를 시험하는 올무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영광과 이웃의 선을 위해 지혜롭고 책임감 있게 사용되는
청지기의 사명 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저희가
가정과 교회와 세상 속에서 말씀에 대한 순종 을 최우선으로 삼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처신하게 하소서.
저희의 삶의 마침표가 세상의 명예가 아닌,
주님과 성전에 선을 행한 선한 행위 로 인정받아,
영원한 존귀와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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