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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01-10 거룩한 정체성을 지키려는 단호한 거절과 이에 따른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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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한 유다와 베냐민 백성은 인근 지역의 대적들, 즉 사마리아 주민들로부터 함께 성전 건축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그들의 혼합주의적인 신앙과 순수하지 않은 의도를 간파하고 단호하게 협력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적들은 유다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페르시아 정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고레스 시대부터 다리오 시대까지 건축을 방해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왕 시대에 이르러서는 편지를 통해 예루살렘 재건이 반역을 꾀하는 행위이며 조공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정치적 모함을 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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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거룩한 정체성을 지키는 단호한 거절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택하신 백성이 세상의 달콤한 유혹 속에서 영적인 정체성을 희석하지 않도록, 순수하고 단호한 믿음을 요구하시며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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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다가와 자신들도 함께 건축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2절). 그들은 자신들 역시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이곳에 오게 한 날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구하고 제사를 드려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족장들은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라고 단호히 거절하고, 오직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그들만이 여호와를 위해 홀로 건축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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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들이 내민 손은 돕는 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성전 건축의 뿌리를 흔들려는 방해의 손이었습니다. 이들은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던 생존자들 혹은 사마리아 주민들로 추정되며, 이들의 신앙은 여호와 신앙과 이방 신앙이 섞인 혼합주의 신앙의 형태였을 것입니다. 귀환 공동체의 궁극적인 목표는 율법에 기초를 둔 새 이스라엘을 형성하여, 거룩한 공동체로서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상관이 없느니라' : 이는 단순한 거절을 넘어 신앙적 정체성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이방 종교의 요소가 섞여서는 안 되며, 오직 언약 백성의 순종과 헌신으로만 세워져야 한다는 배타적 거룩함의 원칙을 확립한 것입니다. 제안이 달콤하고 상황적으로 유리해 보일수록, 공동체 지도자들은 이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마치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세속적인 도움을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의 설계대로 지었듯이,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순종을 최우선으로 삼은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정욕과 죄악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되기를 요구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함의 구실로 삼는 거짓 가르침에 맞서, 믿음의 공동체는 바른 복음을 지키기 위해 거짓 가르침에 맞서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힘과 연합하여 효율을 얻으려 할 때, 우리의 신앙의 본질(예배의 순수성)이 훼손될 위험은 없는지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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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백성된 우리는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철저함과 단호함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종교 간의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신앙의 경계를 허물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진리 수호를 위해 단호히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세상의 가치관이나 유행이 신앙의 순수성을 해치려는 순간이 올 때, 그 달콤한 제안을 분별하고 거절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신앙과 타협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거나 타협하는 것을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이나 편의를 위해 말씀의 기준을 낮추거나 타협하지 않도록,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멈추지 않고 개혁해야 합니다. 이처럼 거룩함을 지키는 것은 안락한 현실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세우는 삶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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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절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방해 공작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반드시 대적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방해를 허락하시지만, 이는 성도의 사기를 꺾기 위함이 아니라 믿음과 인내를 훈련시키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꾀를 헛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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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백성의 단호한 거절 이후, 그 땅 백성은 성전 건축을 방해하기 위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건축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고레스 왕의 시대부터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고문관들)에게 뇌물을 주어 유다 백성의 건축 계획을 지속적으로 좌절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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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의 지속성 : 이 방해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고레스 시대부터 다리오 시대까지) 체계적인 공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곳에는 언제나 반대와 훼방이 따릅니다.

'손을 약하게 하여'와 '뇌물' : 대적들의 목적은 건축 자재를 부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다 백성의 사기와 의지를 무너뜨려 건축을 중단시키려 했습니다. '손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마음을 낙심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결국 공사를 중지하게 하려는 술책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뇌물을 사용했다는 것은 세속적인 권력과 부패한 시스템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훼방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으로, 스스로 진노와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느헤미야서에서도 성벽 재건 시 산발랏과 도비야 일파가 유다 백성을 조롱하고, 나중에는 물리적 위협과 거짓말로 방해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겪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할 때 위협이나 조롱, 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거나 타협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우리는 이 고난을 멈출 이유가 아니라 기도할 이유로 바꾸어,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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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처럼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때, 방해와 훼방이 오히려 하나님의 큰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영적인 증거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낙심하여 손을 놓게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좌절의 심연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비난의 소리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잃지 않으며, 불신앙에 대한 변명으로 순종을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믿음의 기준대로 살려 할 때 주변의 조롱이나 불이익(뇌물로 훼방받는 상황과 유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상황을 보며 주저앉지 말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신뢰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영적 성숙을 위해 노력할 때 배우자나 자녀가 오히려 악한 자의 도구처럼 느껴지는 갈등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만이 구원할 능력이 있으심을 고백하며, 오늘의 순종을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지속적인 비난에 대해 낙심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정직한 자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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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절 정치적 모함과 왕을 향한 거짓 고발

하나님은 세속 권력의 시스템 속에 스며든 불의와 거짓 고발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흐름을 통제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향한 언약을 정확하고 절묘한 때에 이루시는 주권적인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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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6절은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7절 이하는 아닥사스다 왕 시대에 대적들이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는 글을 올린 사건을 기록하며 시간적 간격을 보여줍니다. 특히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상소문의 내용은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고 있으며, 이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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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을 반역으로 왜곡 : 이 단락은 건축 방해의 수위가 지역적인 사기 저하에서 제국의 최고 권력을 이용한 공식적인 모함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대적들은 유다 백성의 성전 재건이라는 종교적 목적을, 왕실의 권위에 반기를 드는 정치적 반역 행위 (성벽 건축)로 교묘하게 왜곡했습니다. 이들은 왕실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재정 손실반란의 위험을 공략했습니다. 실제로 이 성읍(예루살렘)은 예로부터 반란이 자주 일어났던 곳이기에, 그들의 모함은 왕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패역하고 악한 성읍' : 대적들은 예루살렘을 '패역하고 악한 성읍'이라고 칭함으로써, 유다 백성의 모든 행위가 악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역사는 진실을 잠시 방해할 수는 있으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그들의 꾀를 헛되게 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 모함은 성전 재건이 하나님의 때까지 중단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4:24), 하나님은 지체하실 뿐, 결코 당신의 계획을 중단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분입니다.

이는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와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적 죄목으로 고발당했으며, 이는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을 공략한 정치적인 압박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진실이 왜곡되고 부당한 비난에 직면할 수 있음을 깨닫고,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믿음이 필요함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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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권력이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훼손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세속 정부의 법이나 왕의 권한이 하나님 나라의 법과 질서를 어기게 할 때에는, 우리는 보다 권위 있는 하나님 나라의 법을 지키며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부당한 오해나 거짓 고발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사람의 평판에 민감하기보다 하나님의 시선에 민감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권력이 돈이나 안락함을 기준으로 진리를 왜곡하도록 압박할 때, 공의와 진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깨어 있는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선한 일에 불편한 시선과 왜곡된 평가가 따라올 수 있지만, 이는 그 일을 멈출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신뢰하며 기다릴 이유가 됨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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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영원히 살아계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에스라 4장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거룩한 사업에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대적의 방해가 따른다는 

영적인 현실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유다 백성이 거룩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혼합주의의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던 것처럼, 

저희도 세상의 편안함이나 일시적인 이익 때문에 

신앙의 순수성을 희석하려는 

모든 타협의 손길을 단호히 거절할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님, 

손을 약하게 만드는 대적의 계략 앞에서 

저희가 낙심하거나 사기가 꺾이지 않게 붙들어 주십시오. 

부당한 모함과 왜곡된 비난의 소리가 저희를 짓누를 때, 

사람의 판단과 평판보다 당신의 공의로운 시선에 민감하게 하시고, 

잠잠히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게 하옵소서.

저희의 삶이,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와 정직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는, 

참된 소망의 길 위에 서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만이 우리의 산성이요 요새임을 고백하오니, 

오늘 맡은 자리를 단단히 지켜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당신은 지체하실지언정 결코 중단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분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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