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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6:01-23 절망 속에서 피어난 회복의 소망 : 유다 왕국의 최후와 고레스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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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6장은 유다 왕국의 멸망 직전 마지막 네 왕(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의 짧고 불순종했던 통치 역사를 기록합니다. 이 왕들과 제사장, 그리고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예언자의 경고를 비웃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은 갈대아 왕 느부갓네살의 손을 통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셨습니다. 이 포로 생활은 땅이 안식년을 만회하는 70년의 기간이 되었지만, 역대기 사가는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선포합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유다 백성의 귀환과 성전 재건을 명령하는 칙령을 내림으로써,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회복의 소망을 전하며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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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절 지도자들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인내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적 관계를 경시하고 권위에 겸손하지 않은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시지만, 동시에 심판 직전까지도 부지런히 사신(使臣)들을 보내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인내와 긍휼의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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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백성의 추대로 왕이 되었으나 애굽 왕 느고에 의해 폐위되고, 그의 형제 여호야김이 꼭두각시 왕이 되어 11년간 악을 행했음을 보도합니다. 여호야김과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으며,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되어 11년간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시드기야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겸손하지 않았으며, 느부갓네살 왕에게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언약 까지 배반했습니다. 이 악행은 왕에 국한되지 않아,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이방의 가증한 일을 따라 크게 범죄하여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백성과 거하시는 곳을 아끼시어 부지런히 사신들을 보내어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사신들을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여 결국 회복할 수 없는 진노 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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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의 몰락과 불신실의 죄(마알) : 역대기 사가는 유다의 마지막 네 왕의 통치 기록을 압축하여 그들의 비참한 운명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여호아하스 이후의 왕들은 외세(애굽, 바벨론)에 의해 임명되고 폐위되는 주권 상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드기야의 죄는 단순한 정치적 반역을 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언약(충성 맹세)을 파기한 신성 모독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왕과 봉신 사이의 맹세는 신들을 증인으로 세우는 행위였기에, 시드기야의 배반은 곧 여호와에 대한 반역이었으며, 그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증거로 간주됩니다. 이처럼 역대기는 왕들의 불순종과 제사장 및 백성들의 제의적 죄악(성전을 더럽힌 것)을 '마알'(불신실함 또는 성물에 대한 범죄)의 개념으로 보고, 유다의 멸망을 필연적인 언약적 심판 으로 해석합니다.

겸손의 결여와 경고의 무시 : 시드기야의 행동은 겸손의 결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바벨론 왕의 멍에를 지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자신을 낮추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지도자가 스스로의 권위나 판단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때, 그 공동체는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 최종적인 멸망 직전까지도 "부지런히" 사신들을 보내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긍휼과 인내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향해 돌이키지 않는 백성 때문에 애통해하시며, 결국 성전이 황폐해질 것을 경고하신 말씀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형식적 경건(듣는 시늉만 하는 것)이나 마음의 완악함은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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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겪는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경고(말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혹시 세상의 성공 논리나 개인의 탐욕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씀을 입맛대로 해석하거나, 불편한 진리를 전하는 사신들을 '꼰대'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비웃고 멸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가정은 작은 예배 공동체로서, 가장은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하며, 부모의 불순종이 자녀에게 죄의 거울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회개와 정결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세속적인 성공이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유혹 앞에서 흔들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히스기야 왕이 아하스의 악행(28:3)과 므낫세의 가증한 일(33:2)을 버리고 성결을 추구했듯이, 혼합주의적 가치관 (바알 숭배처럼 세상의 풍요를 신으로 섬기는 것)을 교회에서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사회 현상을 분석할 때, 우리는 지도층의 불신실한 언약 파기(거짓 맹세)나 공동체의 유익보다 사리사욕을 우선하는 교만이 결국 사회적 재앙을 초래함을 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정직과 신뢰를 지키는 거룩한 처신을 통해 세상의 불의를 고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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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1절 예루살렘의 멸망과 땅의 안식

하나님은 범죄한 당신의 백성을 향한 진노를 마침내 집행하시어 성전과 왕국을 파괴하시지만, 이는 언약적 징계를 통해 땅에게 안식을 허락하시고 미래의 회복을 위한 섭리의 기간으로 삼으시는 공의롭고 주권적인 심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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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갈대아 왕의 손에 넘기셨고, 느부갓네살은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는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살육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성전의 거룩한 기명들과 보물, 왕궁의 보물을 바벨론으로 가져갔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과 궁전을 헐고 귀한 기명을 훼파했습니다. 칼에서 벗어난 모든 자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의 말씀(70년)이 응하게 하려 하심이며, 땅이 안식을 누리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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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주관자와 땅의 안식 : 멸망에 관한 이 단락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 집행 입니다. 역대기 사가는 갈대아 왕의 행동을 기록하면서도,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일어났음을 명확히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이방 왕 느부갓네살조차도 당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건축했던 성전이 파괴되고 보물이 약탈된 것은, 이전에 하나님이 경고하신 말씀 그대로의 성취이며, 백성들의 불순종과 성전 모독(가증한 일로 성전을 더럽힌 죄)에 대한 최종적인 언약적 저주였습니다.

70년, 상실을 통한 회복의 시간 : 21절은 포로기 70년을 "땅이 안식을 누린" 시간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신학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율법(레위기 25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7년마다 땅에 안식년(소산을 포기하고 땅을 쉬게 하는)을 주어야 했지만, 그들은 물질적 탐욕으로 이 계명을 지속적으로 어겼습니다. 결과적으로 70년의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이 빼앗았던 안식의 시간을 땅이 뒤늦게나마 만회하게 되는, 즉 죄의 대가를 치르는 징계의 기간이 되었습니다. 이는 눈앞의 이익(탐욕)을 위해 진리(말씀 순종)를 저버리는 행위는 결국 더 큰 상실(왕국과 성전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보응 신학의 엄중한 결론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단순히 끝이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섭리적 정지(停止) 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과 훈련을 겪는 과정을 썩지 않을 상을 얻기 위해 몸을 복종시키는 운동선수에 비유했습니다(고전 9:25-27). 유다가 겪은 포로 생활이라는 '징계의 기간'은 이스라엘에게는 고통스러운 '훈련'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탐욕과 우상 숭배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적 정체성을 회복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심판의 철저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회복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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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쉼 없는 질주탐욕적인 성공 추구(세속적인 번영)가 영적인 안식년을 앗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일 중독'이나 끊임없는 소비와 경쟁을 멈추고, 주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비우고 쉬는(안식하는)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안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이며, 우리의 육체와 영혼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에도 평등하고 공의로운 쉼을 보장하는 처신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성경적 안식의 정신을 회복하여,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의 경쟁에서 밀려난 가난한 형제와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생태계와 창조 세계의 안식을 위한 노력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받은 구속의 은혜(애굽에서의 종살이 해방)를 사회 정의로 확장하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고난과 위기가 닥칠 때, 우리는 그것을 심판을 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찰의 시간 으로 해석하고, 땅의 황폐화를 초래했던 우리의 탐욕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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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3절 언약의 신실함과 회복의 시작

하나님은 백성의 죄로 인한 심판 속에서도 언약을 소멸시키지 않으시고, 예레미야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왕(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당신의 백성을 회복시키고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는 약속에 신실한 구원의 주관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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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고레스는 조서를 내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자신에게 주셨으며,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자신에게 명령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다 올라갈지어다라고 초청하며,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는 축복으로 역대기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이 두 절은 문자적으로 에스라서의 첫 부분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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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영원함과 주권적 섭리 : 역대하의 끝은 절망적인 멸망이 아니라, 회복의 소망으로 장엄하게 끝맺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심판 중에도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하셨던 70년 귀환 약속을 신실하게 성취하셨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통치자인 고레스의 마음을 능동적으로 움직이셨습니다. 고레스는 여호와를 '하늘의 신'으로 인정하며, 성전 건축 명령을 자신이 받은 사명으로 공포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역사의 흐름을 주관 하시고, 모든 인간적인 권력을 당신의 구원 계획에 종속시키시는 만물의 주권자이심을 드러냅니다.

'올라가라'는 소명의 초대 : 고레스의 칙령(36:23)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넘어, 포로기 이후 공동체를 향한 역대기 사가의 신학적 초대입니다. 역대기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야기(대상 11:4-5)와 성전 건축 명령으로 시작과 끝을 맺으며 인클루지오(Inclusio 양괄식 감싸기 구조조)를 형성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성전 중심의 예배 회복'이 그들의 새로운 정체성이자 사명임을 강조합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이 초대에 응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다시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멸망 속에서 건져 올린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궁극적인 왕, 예수 그리스도 : 유다의 모든 왕들이 불순종으로 실패했지만, 역대기의 끝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약속을 완성하실 참된 왕(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합니다. 신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부족한 왕들을 넘어, 완전하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시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엡 2:15-16)을 통해 우리는 이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신"의 명령에 순종하셨듯이, 우리는 그분을 따라 자기희생적인 삶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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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절망의 순간에, 우리는 세상의 눈으로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언을 통해 이미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셨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능력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고레스의 칙령을 듣고 '올라갈지어다' 라는 초대에 응했던 백성들처럼, 말씀과 예배가 중심이 되는 삶(성전을 재건하는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봉사를 중단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권력(고레스)을 하나님의 도구로 해석하는 주권적 관점을 견지해야 합니다. 사회의 혼란과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재건하듯, 복음과 예배를 통해 공동체의 거룩함을 회복하고, 나아가 화해와 정의를 실천함으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구태의연한 적용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와 권력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거룩한 처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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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신실함의 하나님,

유다의 마지막 왕들의 비극적인 역사를 통해, 

저희가 주님의 공의와 인내의 깊이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교만에 사로잡혀 주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땅의 안식과 이웃의 쉼을 빼앗았던 

모든 불순종의 죄를 겸손히 고백합니다. 

진노 중에도 저희에게 부지런히 사신들을 보내시고

마침내 언약을 소멸시키지 않으시고 

이방 왕의 마음까지 감동시키시어 

회복의 새 시작을 허락하신 주님의 신실한 사랑에 감격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저희가 

이 세상 속에서 오직 주님만을 왕으로 모시고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권력이나 번영에 불필요한 연합을 맺어 거룩함을 잃지 않게 하시고,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주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시선을 고정하며 

소망 가운데 견고히 서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저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사회가 성전을 재건 하라는 

주님의 초대에 응하여 말씀과 예배를 삶의 중심에 두게 하옵소서. 

저희의 삶이 정의와 공의, 그리고 자기희생의 사랑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거룩한 처신이 되게 하사, 

마침내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왕(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참된 안식과 회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징계였음을 믿으며

이제 저희의 모든 삶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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