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3:01-25 므낫세와 아몬 : 죄와 겸손의 극명한 대조
최악의 죄악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긍휼, 그리고 겸손히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회복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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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12세에 왕위에 올라 55년간 유다를 통치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가장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그는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으며, 자신의 아들들까지 불살라 바치는 등 유다 백성을 이방 민족보다 더 심한 죄악으로 이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셨으나 듣지 않자,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므낫세는 환난 가운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크게 겸손하여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다시 왕위에 앉히셨습니다. 므낫세는 회복 후 우상들을 제거하고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왕이 되어 부친의 악행을 본받았으나, 므낫세처럼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다가, 그의 신하들의 반역으로 암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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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절 거룩을 훼손하는 최악의 죄악과 공의로운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임재와 언약을 모독하고 백성을 타락시킨 최악의 죄악에 대해 반드시 공의로운 진노를 발하시며 경고하시는 엄위하신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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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는 12세에 왕위에 올라 55년간 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들을 본받았습니다. 그는 부친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을 위한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 했습니다. 특히,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을 쌓고, 심지어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한 제단들을 쌓았습니다. 므낫세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신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으며, 점치고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는 등, 여호와의 진노를 격발하는 악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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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의 통치는 유다 역사상 가장 암흑기 로 평가됩니다. 역대기 기자는 므낫세가 행한 악행을 열거하며 그 죄악의 가증함을 강조하는데, 이는 단순히 우상숭배를 넘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특히 므낫세가 행한 죄는 다음과 같은 심각성을 지닙니다.
첫째, 성전 모독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영영히 두리라"고 말씀하신 거룩한 장소였음에도, 므낫세는 그 두 마당에 이방 신들을 위한 제단을 쌓아 하나님의 현존 신학을 정면으로 훼손했습니다.
둘째, 인신 제사입니다.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 행위(몰렉 숭배)는 가장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우상숭배였으며, 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셋째, 그의 악행은 개인을 넘어 유다와 예루살렘 공동체 전체를 타락 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극한의 죄악에 대해 단호한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역대기 신학은 개인의 행위에 따라 은혜와 심판을 즉각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며, 므낫세의 악행은 유다의 멸망을 야기한 주요 원인으로 신명기 사가에 의해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가르쳤습니다(고전 3:16). 므낫세가 물리적인 성전을 더럽혔듯이, 우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세상의 우상(탐심, 정욕, 교만)으로 채울 때,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거룩한 성전을 모독하는 행위가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의 수호자이시며, 죄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경고하시고 진노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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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모든 가치가 곧 므낫세가 세운 '이방 제단'과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방 제단은 물질적인 성공, 무분별한 쾌락, 또는 자녀의 출세를 위한 지나친 교육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가정을 면밀히 살피고, 하나님을 찾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이러한 우상숭배의 씨앗을 단호하게 제거하는 영적 청결함을 실천해야 합니다.
므낫세의 악행은 지도자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를 패망보다 더 심한 타락으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교회는 세속적인 문화나 기업의 논리에 물들어 예배의 순수성을 잃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성전 문을 닫는 행위와 유사)를 엄격히 경계해야 합니다. 사회 현상을 분석할 때, 극심한 폭력이나 도덕적 타락은 단순히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명령(율법)을 버렸을 때 발생하는 영적 재앙임을 인식하고, 교회는 시대적 죄악을 고백하는 겸손한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천인공노할 죄악을 저지르고 이에 부역한 자들이 적반하장 안하무인으로 뻔뻔해지고, 법을 다루는 이들이 무범 불법 초법적인 일을 자행하고도 국민을 기만하고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의 득세를 바라보며 우리가 부르짖고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더 나은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물려 줄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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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0 환난 속의 겸손한 회개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이 아무리 깊더라도, 환난 가운데 스스로 크게 겸손히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와 회복을 베푸시는 한량없는 자비의 구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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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경고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아니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유다를 치게 하셨고, 그들은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므낫세는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했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의 간구를 들으사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 왕위에 앉게 하셨습니다. 므낫세는 이 일을 통해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습니다. 이후 므낫세는 외성을 쌓고 이방 신들과 우상을 제거했으며,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유다 백성에게 여호와를 섬기라고 명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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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의 회개와 회복 기사는 역대기서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 중 하나인 '회복의 소망'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열왕기서가 므낫세의 죄악을 유다 멸망의 불가피한 원인으로 강조하며 끝나는 것과 달리, 역대기 기자는 최악의 죄인인 므낫세마저 회개하고 용서받았음을 기록함으로써, 포로 후 귀환 공동체에게 아무리 악한 자라도 겸손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다는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크게 겸손하여'라는 표현(히브리어 카나 kana, "무릎을 꿇다, 종속되다, 복종하다")는 그의 회개가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앗수르의 굴욕적인 처벌(쇠사슬에 묶임, 코에 갈고리)을 통해 자신의 무능함과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했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겸비함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긍휼이 죄의 깊이보다 훨씬 깊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죄에 대한 징계(바벨론 포로)는 피할 수 없었으나, 회개를 통해 재앙의 궁극적인 심판은 유보(delay)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고의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는 새 언약의 은혜를 선포합니다(딤전 1:15).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가르치셨는데(눅 14:11), 므낫세의 회복은 이 영원한 진리가 구약의 가장 악한 왕에게도 적용되었음을 실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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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 환난(고난)이 닥칠 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앗수르 군대 지휘관들처럼 회개로 이끄시는 손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거나 타인을 원망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므낫세처럼 '크게 겸손하여' (철저히 복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교만은 죄를 합리화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재정적, 정서적 위기가 닥칠 때, 인간적인 수단(인맥, 물질)에 먼저 의존하는 대신, 가족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영적 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나 개인의 실패 앞에서도 '가망 없는 인생은 없다'는 소망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보다 깊기에, 교회는 용서와 회복을 구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중보해야 합니다. 오늘의 사회에서 죄악의 결과로 인한 고난과 재앙이 임할 때, 교회는 스스로 겸비하여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영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 회개는 단순히 후대의 재앙을 연기시키는 것(히스기야의 예)을 넘어, 궁극적인 영원한 회복을 바라보게 합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인간은 어느새 강퍅해지고 굳어집니다. 그러면 보고 듣고 말해야 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바닥까지 내려가 모든 치부를 다 드러내고 회복불능까지 치닫게 됩니다. 그 때는 더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게 되면 모든 소망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주님의 음성에 응답할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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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5절 회개를 거부하는 교만과 공의로운 심판
하나님은 부친의 악행을 본받아 더욱 범죄했음에도 스스로 겸손히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교만을 고집하는 자에게는 냉철한 공의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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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22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2년간 다스렸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며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 아몬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비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했습니다. 결국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그를 궁중에서 죽였고, 백성들이 아몬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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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의 이야기는 므낫세의 회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문학적 장치이자 신학적 결론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아몬의 통치 기사(2년)를 매우 간결하게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삶의 결정적인 요소가 회개 거부라는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므낫세가 극한의 환난을 겪고 겸손해져 왕위를 회복했지만, 아몬은 아버지의 죄는 따라 하면서도 겸손함(카나 kana)을 본받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범죄했습니다. 역대기 저자가 아몬의 죽음과 관련하여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였다'는 구절을 추가한 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교만이며, 이것이 곧 그의 파멸을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므낫세의 회복이 용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아몬의 죽음은 하나님을 버리는 자에게 심판이 반드시 임하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무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아몬의 짧은 통치와 비참한 최후는 인생의 끝(삶의 마침표) 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아무리 선하게 시작해도 끝이 악하면 심판을 받으며 (요아스의 예), 악하게 살았어도 마지막에 회개하면 구원의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므낫세의 예).
겸손은 타인을 용납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태도입니다. 아몬은 아버지의 회개를 보고도 여전히 자신이 우상을 섬기는 길을 고집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종말론적인 심판의 날에 악을 행한 자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마 7:23). 성도는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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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의 경주에서 '끝까지 신실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몬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겸손(카나)은 단순히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전적인 복종 (종속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었던 멘토(므낫세의 후반기 회개)의 긍정적인 면을 배우려 노력해야 하며, 회개라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회를 거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는 아몬처럼 자기 방법과 욕심에 따라 움직이지 않도록, 하나님 중심의 확고한 신앙 의지를 가지고 세속적인 우상에게서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권력층이나 리더십이 실패하고 무너지는 현상을 볼 때, 이는 종종 하나님의 징계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기 확신과 교만을 버리지 않고, 겸손히 성찰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임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흥망성쇠를 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인정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며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삶을 통해 거룩한 처신을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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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
역대하 33장 말씀을 통해 인간의 죄악이 하늘에 닿을지라도,
환난 속에서 겸손히 당신을 찾는 자에게는 용서와 회복을 베푸시는
당신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습니다.
므낫세처럼 가장 악한 죄인에게도 소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혹 므낫세의 교만이 있다면,
아버지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스스로 크게 겸손하여
주님께 무릎 꿇는 용기를 주옵소서.
회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교만임을 아몬의 파멸을 통해 기억하며,
저희의 삶에서 우상과 악행의 모든 찌꺼기를 철저히 제거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오직 당신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최우선으로 삼고,
세상의 유혹과 타협을 단호히 거절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게 하옵소서.
저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고,
공의와 사랑으로 처신하여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증거하게 하소서.
저희가 신앙의 경주를 마칠 때까지 겸손함과 신실함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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