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01:01-10 왕을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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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하여 지자 시종들이 회복을 위해 조치하지만 차도가 없습니다. 이에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하여 사람들을 모읍니다다. 이에 가담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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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왕을 위하여 섬긴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이 나이가 많아 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시종들은 처녀를 찾아 다윗의 기력을 회복시키려 하지만 다윗은 기어이 회복되지 않는다.
시종들이 왕을 위하여 아름다운 처녀를 찾아서 몸을 회복시키려 했지만 허사로 돌아간다. 다윗의 생사화복이 사람들의 수고에 달려있지 않다. 더욱 왕인 다윗의 몸상태는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렇게 국력이 기울어져 가는 상황이 오기 전에 진즉에 다윗은 후계자를 세워야 했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인지, 왕위 세습에 대한 위로부터의 인허가 없었는지, 자신에게 왕위 계승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주위의 시종들이 염려할 만큼의 상태에 있다. 결국 이런 왕의 모습을 보고서 처방을 행하고 있는 이들의 의도는 긍정적으로는 다윗의 기력을 회복해서 국력을 지키려고 하는 의도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윗의 건재가 결국 자신들의 위치도 견고해 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방편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허사로 돌아간다.
사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강건하면 좋겠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 다만 기력이 쇠하여져서 더이상 스스로 무엇인가를 행할 수 없을 때까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아는 믿음을 갖고 싶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과 세속적인 수단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삼가해야 할 것이다. 수넴 여인을 치료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들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자신들의 욕심을 지키고 이루기 위해서 사람도 방법도 무리수를 두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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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절 자기를 위하여 자고하게 된 자녀는 부모의 책임도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스스로 높여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한다. 그래서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을 준비한다. 그의 용모는 준수하였고 다윗은 아도니야를 말로 섭섭하게 한 일이 없다고 한다.
상식적인 우선순위로는 아도니야의 왕위 계승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자고하려 하는데서 결국 무리수가 따른 것이다. 아버지 다윗이 아직 살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는 왕이 거느릴 수 있는 군사를 동원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기름부어야 할 왕을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고 하니 문제가 된 것이다. 왕위 계승 또한 시간과 때와 절차가 있을 터인데 아도니야는 탐욕으로 결국 무리한 일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아도니야가 이렇게 된 것을 6절에서는 그의 외모가 준수하였으나 아버지가 그의 행실에 대해서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였음을 증언한다. 오늘에야 말로 섭섭하게 하지 않은 것을 인격적인 행동이라고 칭찬할 만 하지만 지금 성경의 저자는 이러한 다윗의 미온적인 행동이 결국 아도니야가 자고하고 자만하고 교만하게 된 것이 아닌가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에 필요한 지혜가 있다. 자녀 양육의 기본적인 애정과 질서 그리고 목표와 방법등은 여러 문화적인 차이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주님의 방법을 따라 길러가야 할 것이다. 문제는 다윗은 자신의 윤리적 결함(밧세바 사건)으로 인해서 자녀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아버지로서 제대로 훈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결국 이러한 자신의 도덕적인 부족함들이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데 가시가 될 수 있음도 볼 수 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아도니야는 결국 아버지와 위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탐욕과 이기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반역을 도모하는 이가 된다. 이렇게 무례한 모습이 된 데는 자녀 교육에 대한 부분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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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0절 평소의 신실한 삶이 미혹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아도니야를 따른 요압, 제사장 아비아달, 따르지 않은 제사장 사독과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을 소개한다. 이어서 아도니야는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않는다.
아도니야를 따른 이들은 아도니야의 이러한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충분히 권면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은 아도니야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도니야가 초청하지 못한 이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아도니야가 이들을 초대하지 않는데는 이미 이전부터 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회유와 반란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어떤 사람의 성향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신실한 사람, 충성된 종, 공갈 협박 뇌물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것은 하루이틀만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아도니야가 초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이들은 협력의 대상이 아니아 숙청의 대상이고 다윗의 충신들이라고 하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반복해서 이들을 초청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불렀는데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이들은 불러도 오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초청을 하지 않은 것이다.
충성된 종으로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러 미혹과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충성되고 신실한 종, 자녀, 제자, 성도, 교회가 되는일은 짧은 시간이 이뤄지지 않는다. 오래도록 꾸준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라야 비로소 세상도 제자인줄 알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해지고 거룩이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주어진 시간들 하루하루를 거룩으로 점철해 가는 일이라야 충성되고 신실한 자로 성숙해 지는 것이다. 그런 이들의 삶을 성령 충만으로보고 이런 이들에게는 그 어떤 미혹과 유혹이 오더라도 능히 이겨낼 힘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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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하는 일에 신실한 섬김, 자기를 위하여는 이기적 자아가 산산이 부서질 때까지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온유해져서 우리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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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 주님을 위한다는 명분만 세우고
정작 이기적인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높이고 교만하여
왕이 되려는 어리석음 범치 않도록 하옵시고
영원한 영광의 왕 되신 우리 주님만이 참된 왕이심을 믿습니다.
변함없이 신실한 삶으로 미혹과 유혹이 근접하지 못하게 하옵시며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매일매일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