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3:09-22 예언자들에 대한 말씀들 1 ; 거짓 예언자를 분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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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예언자들로 인해 예레미야의 마음이 상하고 뼈가 떨리고 취한 자같이 괴롭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간음과 악행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서도 악을 행합니다. 이들에 대한 재앙을 선포합니다. 또한 예루살렘 선지자들의 간음에 대해서도 그들의 사악이 온땅에 퍼짐으로 쑥과 독한 물을 마시게 하여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묵시가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 악인에게 평안을 빌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지 않는 자, 스스로 열심인 자, 하나님께서 이르지 않아도 말하는 모든 이들이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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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레미야 21:1-24:10 유다 멸망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왕과 예언자들
21:1-23:8 유다 왕들에 대한 신탁
21:1-10 예루살렘과 시드기야의 절망적 상황
21:11-12 유다 왕실에 주는 훈계와 위협
21:13-14 안전을 자신하는 예루살렘에 대한 신탁
22:1-5 왕[과 백성]에게 주는 경고
22:6-9 [왕궁과]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22:10-12 살룸(여호아하스)에 대한 신탁
22:13-19 여호야김에 대한 신탁
22:24-30 고니야에 대한 신탁
23:1-4 목자들에 대하여
23:5-6 ‘의로운 가지’
23:7-8 새로운 출애굽
23:9-40 예언자들에 대한 말씀들
23:9-12 예언자들의 타락과 그 결과
23:13-15 사마리아의 예언자들과 다를 바 없는 예루살렘의 예언자들
23:16-22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23:23-24 가까이 계신 하나님 – 멀리 계신 하나님
23:25-32 거짓 예언자들에 대하여
23:33-40 야훼의 짐
24:1-10 두 무화과 광주리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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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2절 하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기를 원하십니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자와 제사장들로 인해 절망합니다. 이들의 간음과 악행과 불의함과 사악함이, 많은 백성들도 간음하게 하고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하고 광야의 초장들이 마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악행을 아시고 밀어내고 엎드러지게 벌하며 재앙을 내리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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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와 제사장들은 지도자들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왕과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삶에 대해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이들입니다. 왕의 통치에 대해 감시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도록 조언해야 하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잘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 일들도 이들의 몫입니다. 제사장은 돌봄으로 선지자는 사람과 권력과 여타 조건에 휘둘리지 않으며 제사장과 왕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해야 하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욕심을 부리고 행악하게 되면 서로 견제하고 바르게 세워지기는 커녕 함께 타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왕이 타락하면 제사장은 그런 왕의 녹을 먹기에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선지자는 왕의 위협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하기 보다 눈치를 보면서 입에 발린 말만 하게 되는 예가 그렇습니다.
예언자와 제사장의 간음은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왜곡하는 일들을 말합니다. 결국 성전마저도 더럽히는 결과 이를 사악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악행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벌하는 해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악행은 공동체와 나라가 몰락하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들이기에 이들에 대한 처벌은 더 엄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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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책임,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로서의 책임, 영적 지도자라고 하는 책임, 그리고 여러가지로 이제 주위에 챙겨야 하는 책임을 맡은 일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아집니다.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돌봄의 사명들이 부모와 선배와 이웃으로서 많은데, 어느것 하나 소홀함이 없어야 하는데, 탐욕은 충성보다 불충으로 흐르기 쉬운 것 같습니다. 오늘 주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배우고,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길 힘쓰며, 살아낸 말씀으로 섬겨야 할 이들을 말씀으로 살려 내는 일에 충성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섬김을 위해 맡겨진 이들을 죄악에 미끄러져 엎드러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질 수 있도록 거룩함과 주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낼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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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9-12(예언자들의 타락과 그 결과) - 묵상도움글
예루살렘 예언자들의 타락과 무능력을 고발하는 이 단락은 예언자의 말(9-10절, 12a절)과 야훼의 말씀(11절, 12b절)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언자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에 경악하며 고통스럽게 반응합니다(9절; cf. 4:19; 8:18, 23; 10:19; 14:17; 사 13:1-8). 야훼를 통해 알게 된 예루살렘의 악한 실상과 그 결과에 예언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탈진합니다. 마음이 부서지고 뼈가 떨며 술 취한 사람처럼 됩니다. ‘내 마음이 상하며’는 ‘내 마음이 내 안에서 부수어지고’로 옮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 10-11절은 탄식의 원인이자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을 보여줍니다. “이 땅에 간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10aa절). 간음은 백성의 도덕적 타락뿐만 아니라(cf. 9:1-8)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적 타락(→ 2:20, 23-25; 3:8-9; 5:17)을 포함하는 비유적 언어입니다. 백성의 타락으로 땅은 저주를 받아 결실을 거절합니다(10ab절).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악을 추구하며, 불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합니다(10b절). 그들의 애씀에는 옳음이 없습니다. 일반 백성만 악을 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마지막까지 신실해야 할 예언자들과 제사장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 불경스럽게 처신한다고 탄식하듯 고발하십니다(11절). 이들은 밖에서뿐만 아니라 성전에서도 악을 행합니다(11b절; → 7:11).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마저 죄악에 완전히 장악됩니다. 부패한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에 대한 심판 선언이 이중적으로 주어집니다(12절). 먼저 예언자가 죄의 필연적 결과로 심판을 언급합니다.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어두운 가운데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어냄을 당하여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12a절). 죄인의 길은 미끄러운 통로와 같아서 멸망의 어둠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후반절에서는 이들의 죄악에 야훼가 심판으로 응답하십니다. 징벌의 해에 야훼께서 그들에게 재앙을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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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5절 하나님은 악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혹독한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사마리아 선지자들의 우매함이 결국 북이스라엘을 망하게 했는데, 이제 예루살렘 선지자들도 이러한 역사적 전철을 밟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이들이 행한 가증한 일은 간음과 거짓말과 악행하는 자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켜 준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악인들이 그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들에게 쑥과 독한 물 곧 혹독하고 쓰라린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들의 악행이 자신들 뿐 아니라 온 땅 곧 온 백성들에게 퍼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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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들의 악행을 더 엄중하게 묻는 이유는 그들의 선악에 대한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맡은 이들은 더더욱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역사와 현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언행심사에 있어서 늘 지혜롭게 처신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배웠다면 이제 그러한 잘못된 역사적 전철을 밟지 않도록 깨달아야 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거짓 예언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우매하게도 하나님 아닌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면서 결국 백성들도 그릇 행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거짓 선지자들과 말씀을 맡은 이들의 불충으로 인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선지자들도 똑같은 전철을 밟으며 가증한 일을 행합니다. 영적인 간음과 거짓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악행하는 자들의 손을 강하게 곧 그들의 죄악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합리화시켜 정당성을 부여해 줍니다. 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악행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분별력을 상실하고 죄에 대해 무감각 해지게 만든 것입니다. 이들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쑥과 독한 물을 마시게 하는 일입니다. 이들을 이렇게 엄중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이미 이들의 영향력이 온 땅에 퍼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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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세우는 용기입니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권력에 맞서는 것이 용기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인의 욕심과 보신(保身)을 위해서 진실을 호도하고, 불의한 권력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고, 불의하고 탐욕스러웠습니다. 이들 선지자들의 배임
(背任)으로 하늘의 뜻을 땅에 전달할통로가 사라져버렸고, 거룩한 땅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더러워졌습니다. 지금 교회와 세상에 참 선지자의 날선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까? 선지자를 억입히는· 교회 ,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소리가 실종된 사회가 부패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매일성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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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3-15(사마리아의 예언자들과 다를 바 없는 예루살렘의 예언자들) - 묵상도움글
사마리아의 예언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야훼의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습니다(13절). [‘바알을 의지하고’는 ‘바알의 이름으로’로, ‘우매함’은 ‘혐오스러운 것’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언자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위정자들과 백성을 경고하고 고발하기는커녕 거꾸로 저들을 멸망으로 오도하였습니다. 주전 722/1년의 북왕국 멸망에 예언자들의 책임이 컸음을 보여줍니다. 사마리아의 예언자들과 유사한 내용으로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책망을 받습니다(14-15절). 바알을 숭배하며 혐오스런 짓을 범했던 사마리아의 예언자들에 비하여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나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들은 간음을 저지르고 거짓을 말하며 ‘가증한 일’(소름 끼치는 짓)을 범하였습니다(14a절). 신앙과 윤리에서 타락한 예언자들은 행악자들의 악행을 고발하기는커녕 이를 합리화시켜 줍니다(14a절).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는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신학적 옷을 입혀 이들의 죄악에 신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불법과 거짓으로 벌어들인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선포해줍니다.] 하나님의 [거짓] 예언자들이 악을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 속한 것으로 선포해주기에 아무도 제 악에서 돌아서지 않습니다. 야훼께서 보시기에 이들과 이들을 따르는 예루살렘 주민들의 악행의 정도는 [부패의 심각성과 심판의 철저성을 상징하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교될 정도로 심각합니다(14b절; cf. 사 1:9-10). 야훼는 예루살렘의 타락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예언자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야훼께서 이들에게 쓴 쑥을 먹이시고 독이 든 물을 마시게 하실 것입니다(15a절). ‘쑥’과 ‘독한 물’은 이들이 겪어야 할 재앙의 혹독함과 쓰라림을 상징합니다(cf. 8:14). 예언자들이 특별히 심판에 떨어짐은 이들이 바로 예루살렘 부패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악(불경죄)이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에게서 나와 온 땅에 퍼졌습니다(15b절). 예언자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기는커녕 그분을 배반하였기에 이들의 악한 영향으로 백성들도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예언자들을 고발하고 심판을 선언하기에(14-15절) 앞서 한 세기 훨씬 전인 주전 722/1년에 멸망 당한 사마리아 예언자들의 부패(13절)에 관해 언급함은 물론 우연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은 사마리아의 멸망과 예언자들의 역할로부터 가르침을 끌어냈어야 함에도 어리석게도 이들은 똑같은 길을 갑니다.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무능하고 부패한 자들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선포에 귀를 막고 이들의 달콤한 말을 따른다면 예루살렘도 사마리아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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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2절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분별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하십니다. 그들은 헛된 것을 가르치고,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을 여호와의 묵시로 예언하고 있기에 이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 평안할 것이라 하고,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이들에게는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 거짓 예언을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계시해 주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에 있는 말을 신탁이라 주장합니다.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그들을 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달음질)이고,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합니다. 정작 하나님은 이들의 악행에 대해 돌이키게 하게 했을 터인데 그렇지 않았기에 이렇게 분별과 돌이킴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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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을 분별하는 기준은 먼저 예언의 기원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고, 여호와로 말미암은 소망인가? 하나님의 결정을 눈과 귀로 보고 들었는가?입니다. 이어서 예언의 내용에 있어서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평안을 말하고, 완악한 이들에게 재앙이 없을 거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백성을 회개시켜 악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에게 재앙이 없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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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한다는 것이 참 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몰라서도 못하고, 알아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렇고, 당사자와의 관계로 인해서도 부정하고 불의한 일들을 행함에도 평안과 재앙이 비켜갈 것이라는 일을 쉬이 말합니다. 일정 부분 이러한 말에 대한 사항들이 과제처럼 남겨져 있습니다. 백성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이와 같이 자신들의 입맛에 맛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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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 ‘평안'올 말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안전’을 약속합니다. 이들은 여호와가 주재하시는 천상 회의에 초대받지도 못했고, 회의의 결과를 듣지도 못했으며, 보냄을 받지도 않은 무면허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지자로 자처하고, 자기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이 참선지자의 말에는 귀를막고, 이들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말을 즐겨 듣다가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르렀습니다.(매일성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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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6-22(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 묵상도움글
특히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인 주전 7세기에서 6세기로 넘어가는 기간에 이스라엘의 예언은 위기에 직면합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서로 야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신탁을 선포했습니다. 이들의 선포가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동일한 사안을 놓고 서로 상충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의지에 속하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어떻게 참된 예언(자)과 거짓 예언(자)을 구별할 수 있을까? 본문은 이에 대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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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는 예언의 기원과 관련된 내용이다.
a) 거짓 예언자는 야훼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제 마음에서 나온 이상(묵시)을 말하며 사람들에게 헛된 소망을 심어준다(16절). 야훼께서 보내지 않았는데도 달려나가 야훼의 이름으로 예언합니다(21절).
b) 거짓 예언자는 ‘야훼의 어전 회의’에 참석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했음에도, 마치 회의에 참석했던 것처럼 그분의 의지를 선포합니다(18절과 22a절). 하나님의 결정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경험이 없음에도 예언을 합니다.
‘여호와의 회의’(소드 야훼 ; 야훼의 어전회의)는 고대적 사고에 속하는 표상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상의 왕이 신하들과 국사를 의논하듯이 하늘 왕궁에서 왕이신 하나님께서 신하들과 함께 민족이나 개인의 운명과 역사를 결정하신다고 보았습니다. 이 표상이 사용된 대표적인 예로 열왕기상 22:19-22; 욥기 1:6-12; 2:1-6; 시편 89:5-7을 들 수 있습니다(cf. 사 6:8; 욥 15:8). 참된 예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거나 보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어전회의에 참석하여 그 곳에서 무엇이 결정되는지를 보고 듣기도 합니다. 아모스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소도)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3:7) 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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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두 기준은 예언의 내용과 관련됩니다. 예언자의 임무와 그의 행위와의 관계로부터 거짓 예언자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c) 거짓 예언자는 야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분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평안(샬롬)을 선포하며, 자기 마음의 완악함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에게 어떠한 재앙도 닥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17절). 야훼를 무시하고 악한 생각과 폭력으로 자신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자들을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로 만들어줍니다.
d) 거짓 예언자는 백성을 회개시켜 악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22b절). 백성의 악한 행실을 보고도 고발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오히려 이들에게 평안을 선포합니다. 한 마디로 거짓 예언자는 청자들이 듣기 원하는 좋은 말을 제 마음 속에서 만들어내 선포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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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 예언자
예언의 기원과 관련해서 : 제 마음에 나온 것을 가르치는 자(16),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듣지 않은 자(18)
예언의 내용과 관련해서 : 여호와를 멸시하는 자에게 평안을 선포하는 자(17), 악한 길과 행위에서 돌아서게 하지 않는 자(22)
예언자의 행태와 관련해서(21) : 보내지 않아도 달음질 하는 자(열심이 있다), 이르지 않아도 말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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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누가 거짓 예언자인지, 참된 예언자요 목자인지 판별하기 힘듭니다. 더불어 누가 참교인인지 아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판별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상당한 두려움을 수반하는 일이기도 랍니다. 함부로 회개하라 선포하지도 못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언자나 되니 이런 예언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맞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맞더라도 해야 한다. 내가 모른 상태에서 모르기 때문에 고발을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 교인들이 정상이 아닌 신앙에 대해 침묵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거짓 목자가 됩니다(변명의 여지가 없는).
교인의 영적 상태를 판단해야 거기에 맞는 꼴을 줄 수 있습니다. 영적 이탈에 교정을 해 줘야 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경고해 줘야 합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는데 어려움을 겪는 교인들은 적극적으로 위로하며 권면해 줘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는 신앙적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계시를 받지만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각 개인의 신앙의 현재 형편이 어떤지 분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거듭 길러내고 키워내야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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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날마다 주님을 알아가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주님이 주신 영적 부요와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배우고 익히고 살고 살아내는 일에 열심으로 임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전함에 있어 가감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권력에 맞서는 용기도 주소서.
말씀을 가감없이 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분별력도 주옵소서.
날마다 주의 말씀을 잘 배우고 묵상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고 기억하며 살아내게 하옵소서.
더불어 그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도
열심을 품게 하옵소서.
불순종한 역사적 전철을 밟지 않고
신실하게 주의 교양과 훈계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도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순정하게 전하게 하옵소서.
참과 거짓을 잘 준별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