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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53-8:20 정죄의 돌을 내려놓고, 생명의 빛으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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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타인을 향한 서슬 퍼런 심판의 돌을 내려놓고, 나를 비추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빛 안에서 새로운 삶의 걸음을 내딛는 용기입니다.

*

이른 아침, 성전 마당의 고요가 거친 발소리에 깨어집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율법이라는 이름의 날카로운 돌들이 들려 있었고, 눈빛에는 누군가를 정죄함으로써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음흉한 활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여인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아니라, 예수를 덫에 빠뜨리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여인의 수치심 위로 세상의 비정한 정죄가 쏟아집니다.


예수는 그들의 고발에 즉답하는 대신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이 침묵은 서두르는 폭력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거룩한 지연(遲延)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던지신 한마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짧은 문장은 타인을 향해 꼿꼿이 서 있던 이들의 시선을 자기 내면의 어둠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니체가 말했듯,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율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돌을 들었던 이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둘 자리를 떠납니다. 늙은이로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그들은 비로소 타인의 죄보다 깊은 자신의 허물을 대면한 것입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 여인과 예수만이 남았습니다. 정죄하던 이들은 사라졌으나, 진정으로 죄가 없으셔서 돌을 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인 예수께서 여인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은 대개 교회의 '배타적인 정죄'에 상처 입은 이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정죄로 사람을 고치려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무조건적인 용서와 환대로 그 영혼의 빗장을 여십니다. 우리가 더 적극적인 신앙생활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를 향한 이 눈물겨운 '용납'의 은혜를 충분히 맛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삶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정죄하거나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히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빛이 오면 어둠은 스스로 물러갑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고단한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우리가 걸어갈 새로운 내일을 축복하십니다.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던지려 했던 돌을 내려놓게 하고, 대신 그 손으로 넘어진 이웃의 손을 잡게 합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땅에 글을 쓰시던 주님의 침묵을 기억합시다. 그분의 자비로운 빛이 우리 영혼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정죄의 사슬을 끊고 생명의 길을 걷는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그 눈부신 빛의 여정으로 우리 함께 걸어갑시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요한복음 7:53-8:20 단죄의 돌을 내려놓게 하는 경이로운 침묵, 생명을 잉태하는 빛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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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타인의 허물을 정죄하며 나의 의를 증명하려는 세상의 폭력적인 흐름에 저항하고, 우리의 수치스러운 밑바닥까지 내려와 따뜻한 눈길로 안아주시는 주님의 빛 안에 머무는 ‘경이로운 참여’입니다.

*

매섭던 겨울의 칼바람이 잦아들고,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기어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경이로운 봄입니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당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봄이 무사히 당도하는 이 기적 같은 계절에, 저마다의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 속에서 여전히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언제나 잣대를 들고 누군가를 평가하려 듭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냄으로써 나의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려는 폭력성이 우리 일상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8장의 예루살렘 성전 뜰은 바로 그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는 참담한 현장이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살기등등한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 8:5).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이라는 정해진 ‘정답’을 무기 삼아,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동시에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던져진 그들의 말은 사람을 얼어붙게 하고 옭아매는 가장 차가운 얼음장이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 거친 숨소리와 적의가 교차하는 그 살풍경 속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뜻밖의 행동을 하십니다. 주님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들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시고, 조용히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요 8:6). 김기석 목사님은 이 장면을 묵상하며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처절한 바닥까지 당신의 몸을 낮추심으로, 여인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가장 안전한 공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돌이 날아오면 기꺼이 함께 맞겠다는 듯, 주님은 여인의 수치와 절망의 눈높이로 내려가 곁에 머무르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다그치자, 주님은 마침내 몸을 일으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 8:7). 이 한마디는 정죄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그들의 내면을 향해 던져진 벼락같은 성찰의 빛이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은 어른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둘씩 돌을 내려놓고 떠나갔습니다.


마침내 광장이 텅 비고 예수님과 여인 단둘만 남았을 때, 주님은 여인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 8:11). 김기석 목사님은 종종 원주의 고(故) 지학순 주교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합니다. 지 주교님이 밤거리를 걷다 성매매 여성들과 마주쳤을 때, 그는 윤리적인 잣대로 그들을 경멸하거나 정죄하는 대신, 마치 사랑하는 손녀딸을 보듯 따뜻한 미소로 지갑을 털어 용돈을 쥐여 주셨다고 합니다. 그 어떠한 판단도 없는 온전한 환대의 눈빛. 예수님이 여인을 바라보신 시선이 바로 이러했을 것입니다. 이 시선은 여인의 가슴 속에 얼어붙어 있던 죄의식을 녹이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게 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대목에서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주님의 빛은 우리의 추악한 죄를 폭로하여 망신을 주기 위한 서치라이트가 아닙니다.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고 상처를 싸매어 다시 살게 하는 따뜻한 봄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따뜻한 생명의 빛을 우리 삶으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의 저자들은 묵상에 대해 우리 영혼을 일깨우는 깊은 정의를 들려줍니다. 김기현 목사님은 묵상을 가리켜 세상의 속물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거룩한 “저항”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깎아내리고 돌을 던지려는 얄팍한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멈춰 서는 일입니다. 권일한 선생님은 묵상을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나의 남루한 인생을 포개어 넣는 일이라고 정의하며, 박영호 목사님은 하나님의 역사에 나를 온전히 던지는 “참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타인을 향해 쥐었던 정죄의 돌멩이를 툭 내려놓고, 나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엎드리신 예수님의 그 십자가 이야기 속으로 나를 던져 참여하는 것입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변한 게 없고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회의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까? 더 뜨겁게 헌신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위축되어 계십니까? 한동일 선생은 “나는 은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라는 자각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일어서서 거룩해질 수 있는 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Surgite, eamus - 일어나 가자).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결백하고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 입고 수치스러운 자리에 있을지라도, 우리를 위해 끙끙 앓으시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맹렬하고도 부드러운 은총입니다.


이제 남을 향한,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한 무거운 정죄의 돌멩이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의 짐도 벗어버리십시오.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 안으시는 주님의 생명의 빛을 향해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가는 복된 한 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차갑고 단단한 얼음장을 녹이는 ‘봄날의 따스한 볕’과 같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망치로 내리치면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부드럽고 따사로운 봄볕이 묵묵히 내려앉으면 얼음은 어느새 소리 없이 녹아내려,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틔워내는 맑은 시냇물이 됩니다. 정죄의 망치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총의 햇살을 머금고 살아갈 때 우리 영혼의 굳은 결빙도 녹아 마침내 누군가를 살리는 생수가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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