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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1-13 때를 기다리는 마음, 세상의 결을 거스르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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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은 세상의 화려한 무대 위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시간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인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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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땅에 살의(殺意)가 안개처럼 자욱합니다.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곳곳에서 번뜩이고, 그분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의 한적한 길을 거니십니다. 초막절이라는 성대한 축제가 다가오자, 예수의 형제들이 묻습니다.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기를 힘쓰소서"(요 7:3-4). 형제들의 말은 합리적입니다. 영향력을 확대하고 대업을 이루려면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중앙 무대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문법이자 속도의 논리입니다.

우리는 늘 '나타냄'의 유혹 앞에 서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옳은지, 내가 얼마나 유능한지, 혹은 내 신앙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증명하고 싶어 안달합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이들은 대개 "왜 하나님은 자신을 더 화끈하게 드러내지 않으시는가"라고 묻고, 더 적극적인 신앙을 원하는 이들은 "내가 어떻게 나를 증명해야 하는가"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요 7:6).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는 인간의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결이 다릅니다. 세상의 때는 늘 나를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때는 나를 비워낼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무기력함을 고백할 때 일하기 시작하신다"고 했습니다. 적극적인 신앙이란 남보다 앞서 달려가는 조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거룩한 멈춤'을 견뎌내는 용기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삶이 정체된 것 같고 하나님의 침묵이 길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꽃이 피기 위해 겨울의 인고가 필요하듯, 우리 영혼이 영원의 빛을 담기 위해서는 고요히 때를 기다리는 순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는 세상이 그를 미워함을 아셨습니다. 그분의 존재 자체가 세상의 악한 행위를 폭로하는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갈수록 세상과는 불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불화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생명의 길 위에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예수를 두고 "좋은 사람이다" 혹은 "미혹하는 자다"라며 수군거립니다. 사람들의 평판에 일희일비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때를 분별하며 그분과 함께 걷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삶의 대지를 고르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 나를 드러내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평안 속에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요한복음 7:1-13 소란한 세상의 정답을 거스르는 은밀한 걸음, 그 ‘아픈 사랑’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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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세상의 인정과 화려한 성공을 구하는 욕망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해와 미움 속에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은밀하고도 고독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끙끙 앓으시는 사랑’을 깊이 호흡하며 그분의 이야기에 내 삶을 포개어 넣는 거룩한 저항입니다.

*

매섭던 겨울의 칼바람이 잦아들고,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기어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경이로운 봄의 길목입니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당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봄이 무사히 우리 곁에 당도한 기적 같은 계절에, 저마다의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삶의 모호함 속에서 때로는 흔들리고, 신앙의 회의 속에서 여전히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들의 시린 마음 위로도 하늘의 따뜻한 볕이 내리쬐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늘 ‘증명’을 요구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그럴듯한 성취를 이루었는지 세상 한복판에서 드러내 보이라고 우리를 닦달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7장의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의 형제들은 주님께 이렇게 채근합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요 7:4).

형제들의 이 요구는 몹시 합리적이고 지당해 보입니다. 능력이 있다면 예루살렘이라는 가장 화려하고 큰 무대로 올라가 만천하에 자신을 증명하라는 세상의 논리, 곧 ‘힘의 논리’입니다. 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에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미 알고 있는 모범답안을 확인하려 하거나,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으려는 욕망을 비워내야 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형제들은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자신들이 세워 놓은 '세속적 성공'이라는 모범답안과 욕망의 틀 속에 예수님을 끼워 맞추려 했기에 참된 생명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욕망의 부추김을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요 7:6). 세상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거스르고, 그 행위가 악하다고 증언하시는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요 7:7). 명절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고 "좋은 사람이다", "무리를 미혹한다"며 수군거렸지만, 억압적인 체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는 이가 없었습니다(요 7:12-13).

세상을 지배하는 언어는 상대를 평가하고 재단하며, 이익을 계산하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언어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미움과 오해 속에서도, 예수님은 형제들의 강요에 떠밀리지 않으시고 "은밀하게"(요 7:10)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사람들의 환호나 박수갈채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을 미워하는 그 세상마저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라는 죽음의 제단으로 걸어 들어가시는, 펄펄 끓는 ‘사랑의 온도’를 품고 가신 것입니다. 주님이 은밀하게 걸어가신 그 고독한 걸음은, 바로 무지함과 두려움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우리를 향한 뼈저린 사랑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소란스러운 세상의 평가와 끝없는 성과주의의 압박 속에서 이 주님의 끙끙 앓는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의 저자들은 묵상에 대해 우리 영혼을 일깨우는 깊은 정의를 들려줍니다. 김기현 목사님은 묵상을 가리켜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저항(Resistance)’”이라고 했습니다. 성공과 과시를 요구하는 세상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아니오"라고 멈춰 서는 거룩한 저항입니다.

또한 권일한 선생님은 묵상은 텍스트를 건조하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라고 정의하며, 권연경 교수는 묵상을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그 먼 여행의 이야기 속에 나의 남루한 인생 이야기를 포개어 넣고, 모호한 삶의 한복판에서도 주님과 깊은 대화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참된 묵상의 길입니다.

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왜 이토록 헌신하지 못할까?”, “내 삶은 왜 여전히 초라할까?”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나를 번듯하게 증명해 보이지 못해 위축되어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번쩍이는 업적을 이뤄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조차 넉넉히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 우리 존재를 깊이 담그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자들의 환호 속이 아니라, 수군거리고 두려워하는 불완전한 무리들 한가운데로 조용히 스며들어오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의 무거운 겨울옷을 십자가 앞에 벗어 던집시다. 신앙은 도덕적인 숙제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낯설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사랑, 나를 위해 기꺼이 오해와 미움을 감당하신 그 십자가의 은혜에 나를 온전히 내어맡기는 것입니다.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상의 자리에서 묵묵히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복된 한 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차가운 재 아래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밑불(Embers)’을 간직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게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과 소리에만 열광하며, 불꽃이 보이지 않으면 다 꺼졌다고 쉽게 수군거립니다. 하지만 참된 생명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깊은 내면에서,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밑불을 꺼뜨리지 않고 묵묵히 품고 있을 때, 우리 영혼은 시대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마침내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사랑의 불꽃으로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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