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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09:01-07> 구원시대의 새로운 통치자


전에 고통 받던 이들에게 흑암이 사라지고 후에는 갈릴리를 영화롭게 합니다. 그래서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빛이 비치고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즐거움을 더하게 합니다. 이렇게 된 데는 주께서 압제자들을 꺾으시기 때문이며, 새로운 구원자로 태어난 한 아들 곧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이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보존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 단락의 시점

이 단락의 시점이 역사적인지 또는 종말론적(먼 미래적)인지는 불분명하다. a) 1-5절, 특히 1절은 전자를, b) 6-7절은 후자를 지지할 수 있다.

1) 왕하 15:29에 의하면 다메섹과에브라임을 징계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이스라엘에게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왕하 15:29) 빼앗아 앗수르의 영토에 병합시킨다. 1절 후반부에 나오는 지역은 앗수르 왕이 점령한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9:1-7의 신탁은 주전 722/1년의 북왕국의 멸망에 관한 암시가 없기에 9:1의 배경으로 디글랏빌레셀 3세(745-727)와 살만에셀 5세(726-722)에 의한 억압을 가정할 수 있다. 상응해서 전반절에 언급된 갈릴리 북쪽에 위치한 스불론과 납달리의 언급은 이 지역을 놓고 주전 8/9세기에 거듭 전쟁을 벌였던 다메섹의 하사엘(845-802)이나 벤하닷(802-?)에 의한 북 왕국의 굴욕과 위기를 시대사적 배경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2) 태어날(태어난) 아기에게 주어진 네 개의 칭호(6절)는 지상의 왕과 관련해서는 매우 예외적이다. 특히 처음 세 개의 칭호는 일차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해당하는 것들이다. 새로운 구원자의 통치를 기술하는 7절의 내용도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종말론적이다. 이사야가 선포한 신탁에 어울리는 인물을 유다의 역사에서 찾기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 1절에 근거하여 역사적으로 이해하면 히스기야가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지만, 이사야가 히스기야의 출생이나 또는 그의 왕위계승에 그처럼 큰 소망을 품었는지는 불투명하다. 

그가 예언한 아이가 누구였든 간에 본문에 기술된 구원과 회복의 소망은 구약시대에는 극히 부분적으로만 성취되었을 뿐이다. 북 왕국이 디글랏빌레셀에게 빼앗겼던 영토는 다윗왕조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신약의 기자들은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의 출현에 의해 성취되었음을 본다. 마태 4:15-16은 9:1-2의 말씀이 예수의 갈릴리 출현에서 성취됐다고 선포합니다.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누가 1:79에서 9:2를 인용하며,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9:7의 예언이 그녀 아들의 출생으로 성취될 것을 고지합니다(눅1:32-33).


# 1-3절 여호와의 열심이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더하게 하실 것입니다. 

전에 자신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흑암에 속한 백성들이 멸시를 당했지만, 후에는 여호와께서 이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큰 빛을 보게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빛이 비치게 하십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사 추수하는 즐거움,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을 갖게 해 주실 것입니다. 

*

짙은 어둠, 흑암, 멸시의 땅에서 살던 백성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이 빛은 행복과 구원을 상징합니다(cf. 암 5:20, 시 27:1).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정치적 해방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고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더불어 빛은 여호와께서 현현하실 때 동반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떠나셨떤 여호와께서 빛 가운데 다시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구원으로, 어둠의 영역에서 빛의 영역으로,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골로새서) 옮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환희의 기쁨을 주십니다. 이 기쁨은 추수 때 풍성하게 수확을 거둬들이는 기쁨이고,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전리품을 나누는 그런 기쁨입니다. 이는 모두 고대 사회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더불어 이것은 모두 구원의 기쁨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전에 죄에 빠져서 평안 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 힘입어 그 발 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찬송, 내가 매일 기쁘게).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하나님께서는 흑암에 있던 우리를 구원하셔서 빛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빛의 자녀로 세상에서 빛의 전달자로 살라 하십니다.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살전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요일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아멘.


# 4-5절 여호와의 열심이 정치적 해방과 전쟁을 폐지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즐거움의 첫번째 이유는 정치적 해방입니다. 여호와께서 억압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날은 이스라엘이 해방의 기쁨을 맛보는 날입니다. 마치 미디안의 날과 같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사사시대에 기드온을 도와 미디안의 적을 쳐서 진멸하셨던 것처럼 이방의 폭력과 굴욕에 신음하며 고통을 당하는 백성을 해방시키실 것입니다. 두 번째 즐거움의 이유는 전쟁의 폐지입니다. 이스라엘을 침략한 적들이 패하여 퇴각한 후에 쓰러진 적들의 군화와 옷을 소각할 것이라 합니다. 

*

미디안의 날은 사사기 6-7장에 기록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억압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자, 그분께서는 기드온을 택하셔서 미디안의 손아귀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주십니다. 기드온의 호소에 삼만 이천 명이 호응을 하지만, 그분께서는 소집된 용사들 대부분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단지 삼백 명만 기드온에게 남게 하십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들과 함께 한 밤중에 적진을 기습 공격하여 미디안 사람들을 진멸합니다. ‘미디안의 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전쟁하신 날로, 사람의 눈에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구원과 승리가 하나님의 간섭과 도움으로 주어질 것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곧 여호와께서 개입하셔서 놀라운 방식으로 억압당하는 자들을 해방시키시는 날입니다. 

고대 세계는 거듭 파멸적인 크고 작은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전쟁은 사람들이 애써 이룩해 놓은 것을 한 순간에 모두 빼앗아 황폐하게 만들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도 극복하기 힘든 폐해를 남깁니다. 이사야는 이미 2:4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세상을, 불필요한 무기를 농기구로 바꿔 만드는 종말에 있을 평화의 시대를 내다봅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한 걸음 더 나아가 11:6-9에서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완전한 평화공존이 이뤄지는 샬롬의 시대를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적들의 압제로부터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한 이후에는 더 이상 전쟁은 없습니다.

*

신앙은 우리 삶의 왕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의 종노릇 하며 억압받는 데서 자유와 평화를 주시는 주의 나라의 백성으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더 이상 멍에와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가 없습니다. 주께서 꺾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화를 만끽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더이상 전쟁처럼 원치 않는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 평화의 시대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아직도 죄의 종노릇 하건, 탐욕으로 점철된 인생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해방의 기쁨에 서지 못하고, 스스로 전쟁에 거하며 파멸의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평화의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니 그 나라에 영원토록 거하길 기도하며 잠시 당하는 고통 속에서도 이미 허락하신 평화를 누리고 장차 완성될 그 날을 소망가운데 바라보며 묵묵히 지금의 시간들을 감당해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 6-7절 여호와의 열심이 새로운 통치자를 세워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것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의 세 번째 이유는 평화의 나라를 통치하실 한 왕이 탄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합니다. 그 통치와 평강이 무궁하고, 그 나라가 굳게 세워지고,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보존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실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고 전쟁을 없애버리실 뿐만 아니라 어깨 위에 통치권이 놓여 있는 한 아기를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분의 해방과 구원사건이 이 아기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보장됩니다. 왕위 계승권자의 출생과 대관식은 하나님께서 다윗 집안에 주신 약속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왕권의 존속은 땅 위의 질서와 평화를 보장하는 전제조건입니다. 이런 면에서 계승권자의 출생과 대관식은 백성에게 복된 소식이 됩니다. 

기존의 왕들과 구별되는 그의 통치의 본질을 보여주는 네 개의 이름이 미래의 통치자에게 주어집니다. 이 이름들은 이상적인 정치와 통치에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처음 세 개의 이름은 원칙상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고, 네 번째 이름은 지상의 통치자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통치자 사이에 내재하는 긴밀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

1) ‘놀라운 기획자’(펠레요에츠): 개역개정은 두 단어를 동격으로 보면서 ‘기묘자라, 모사라’로 번역하지만 처음 단어를 목적어로 보면서 ‘놀라운 일을 기획하는 자(놀라운 조언자)-한 단어이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능력은 왕이 성공적으로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 필수적입니다. 물론 놀라운 일의 계획과 실행은 원칙상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cf. 시 77:14; 사 29:14).

+

2) ‘전능하신 하나님’(하나님-용사; 엘 깁보르) : 성경은 하나님을 용사로 표현하기도 합니다(cf. 사 10:21; 신 10:17).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용맹의 영을 부여 받기도 합니다(cf. 사 11:2). 왕을 하나님으로 부르는 경우는 시편 45:6이 유일합니다. 지상의 통치자를 하나님으로 부르는 경우가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

3) ‘영존하시는 아버지’(아비아드) : 하나님과 왕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하듯이 왕은 백성과의 관계에서 아버지로 불리기도 합니다(cf. 사 22:21). 왕은 아버지로서 백성을 보호하고 이들의 안녕을 염려합니다. 상응해서 백성은 통치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cf. 시 72:5, 17). 그러나 원칙상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하나님께 적용되는 표현입니다. 영존은 무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긴 시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 만세수를 누리시라는 것은 = 통치권의 안정을 말하고 = 번영을 말합니다. (오래, 예부터, 대대로 이것들이 대부분 영원으로 번역되는 비슷한 예입니다)

+

4) ‘평강의 왕[통치자]’(사르샬롬) : ‘평강’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샬롬’은 전쟁의 대립 개념으로 축소될 수는 없지만, 2-5절에 비추어 보면 우선적으로 이방의 군사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왕은 평화를 수호합니다. 그는 법과 정의에 근거해서 공적 질서를 바로 세워 백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해줍니다. 개역개정이 왕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사르’는 ‘통치자’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운 통치자는 왕 여호

와의 통치권을 대신합니다. 평화의 궁극적 보장자는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

7절은 다윗왕조의 회복, 주권의 회복을 말합니다. 바로 나단 신탁(예언과 약속)의 실천입니다. 광대한 통치권이 미래의 통치자에게 약속됩니다. 그는 다윗의 보좌에 앉아 그의 나라를 영원히 평화롭게 통치할 것입니다(삼하 7:16). 그는 통치권이 흔들리지 않게 굳건히 하고 영속화시킬 뿐만 아니라,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존의 왕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통치자 아래서 평화와 구원을 맛보며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시대는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에 의해서 성취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질투)’이 이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의 해방과 전쟁의 폐지는 메시아의 임무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메시아가 통치하는 평화의 시대가 가능하도록 그 전제조건들을 다 충족시켜 주십니다. 통치권이 주어진 아기는 그분께서 이룩해 놓으신 해방과 구원의 나라를 영원히 평화롭게 통치합니다. 여호와께서 메시아에 의한 미래적/종말론적 통치를 가능하게 해 주십니다. 

*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영존하시며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세우신 그 사랑의 나라에서 사랑으로 통치하시며,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그 나라를 지금 은혜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그토록 열심으로 평화의 나라에서 사랑으로 다스리시며 우리로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하셨고, 또한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며 우리로 정의를 실현하며 살아가도록 세우셨건만 작금의 교회가 이 평화와 정의의 사도로 세상에서 거룩한 주님의 사명과 뜻을 따라 평화의 전달자로 그리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정의를 세워가는 일에 얼마나 자기 희생과 섬김과 사랑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아직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면 여전히 우리는 버리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고 움켜잡은 다른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속히 돌아와서 평강의 왕되신 주님의 인도에 온전히 순종하기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거룩한 백성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빛의 자녀로 살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부르신 대로, 새롭게 하신 대로

빛의 자녀답게 살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정치적 해방과, 전쟁을 폐지하여

화평케 하는 자로, 그리고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요 평강의 왕이심을 믿습니다.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시고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합당하게 반응하며 동역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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