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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02:01-22> 오라 우리가


예루살렘의 심판과 회복, 악인의 결말에 대한 예언 이후에 다시 회복될 예루살렘의 미래에 대해서 열방과 구체적으로 연결하여 예언합니다. 그래서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야곱 족속을 버리신 이유들을 언급하고, 마침내 여호와의 날이 오면 모든 교만한 것들은 낮아지고 여호와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니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 1-5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이고 열방가운데 평화를 이루게 합니다. 

마침내 여호와의 날이 오게 되면 택한 성과 백성이 높여질 것입니다. 그때에 모든 열방이 거룩한 주님 앞에 나아와서 주의 말씀과 진리의 길을 따라 판단과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일이 성취되면 전쟁을 위한 무기들이 농사를 짓는 도구로 만들어져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거룩한 백성은 끝까지 빛되신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미가서 4:1-3에서도 동일한 말씀이 있습니다. 

*

‘말일’ 또는 ‘여호와의 날’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약속이 성취되는 날 곧 구원과 심판이 행해지는 날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메시아가 도래하는 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날에 여기서 예언된 말씀이 일차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완성의 날은 다시오실 그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출바벨론의 때에 이 말씀이 성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의 소문들이 흉흉하고, 이스라엘은 주변국들의 위협 속에서 내외적인 부패와 부정으로 총체적인 난국에 있었습니다. 이는 신앙과 윤리와 사회 전반에 걸쳐 거룩한 백성, 거룩한 나라의 모습을 지키지 못하고 이방 나라들의 풍습에 휘말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그런 열방의 복이 되기 위함인데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렇게 제대로 택한 백성으로 열방을 향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한 때가 이스라엘의 전역사 가운데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친히 택상 성 예루살렘과 그의 나라를 열방 가운데 높이실 것입니다. 그래서 열방이 주 앞에 나아오고 주의 통치(주의 길과 율법 곧 말씀) 앞에 순종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을 따라 열방 사이에서 판단하고 판결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주의 말씀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전쟁은 그치고 더이상 전쟁의 무기들이 쓸모없게 되는 평화의 나라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택한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의 빛 가운데, 빛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 말씀의 통치에 대한 순종 여부가 심판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

세상에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잘나고 똑똑한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진정한 평화와 정의를 이룰 수 있는 분은 하나님만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때가 되면 모든 열방이 주께로 나아와 주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기준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찌감치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우며, 우리 삶의 우선순위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이 가장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먼저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열방을 주께로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함께 감강해 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시면서 또한 그렇게 행할 능력도 주셨기에 오늘도 우리는 우리 삶의 중심과 우선순위와 방향을 주의 말씀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 6-9절 하나님은 헛된 우상을 섬기는 이들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린 이유들을 다양하게 낱낱이 고합니다. 동방 풍속이 가득하고, 블레셋 사람들처럼 점을 치고, 이방인과 언약하고, 은금과 보화와 마필과 병거들이 자신들을 안전하게 할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님보다 더 의존하고,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고, 자기들 손으로 만든 우상이 가득하여 그것에 경배하기를 천하고 귀한 이들 모두 총체적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

아직 주의 백성이지만 이스라엘을 향하여 ‘야곱 족속’이라고 개명전의 이름으로 부른 이유는 이들이 거룩한 백성이 길이 아니라 개명전의 야곱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런 야곱을 어떻게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는지에 대한 역사를 기억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 족속이 오래도록 불순종으로 일관하게 되면 결국 유기하십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 아닌 것들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영광스러운 주님을 버러지 형상으로 만들어 섬겼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은과 금을 의지하거나, 외교적으로 주변국들 중에서 눈치 보며 줄을 맺는 것으로 버키려고 했고, 병거와 말 곧 군사력이나 경제력이나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서 자신들의 안녕과 안위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 나라들은 그렇게 혹은 병거와 말을 의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만 의지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그러한 것도 모자라 손으로 만든 온갖 우상들로 가득하고 그것들을 스스럼 없이 경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고발한 예언자는 이제 그 시야를 확대시켜 전 인류를 바라봅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이 우상에게 무릎을 꿇고 스스로를 천하고 낮게 만듭니다. ‘천한 자’는 ‘아담’의 번역이고, ‘귀한 자’는 ‘사람/남자’의 번역입니다. 우상에게 엎드려 스스로를 비천하게 만드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에 속합니다. 행위와 그 결과의 내적 관계가 하나님의 개입에 의해 단절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는 예언자는 후반절에서 그분의 공의가 분명하게 드러나길 간구합니다. 그들을 용서하지 말라고. 자신의 부와 권력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경배하는 자들의 배반과 교만은 반드시 상응하는 징계를 받아야만 합니다.

*

예언자들에게 있어 경제적 부와 군사력에 의존함은 하나님 백성 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불신앙에 속합니다. 이스라엘의 안전은 구원자이신 여호와께 의존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개인과 교회의 안녕과 평화는 전적으로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우리 교회의 문화 가운데는 이방의 풍속이 가득하고, 말씀은 점을 치듯 무지하고 허망하고 비상식과 비이성적이며 불합리한 말씀들이 기복주의적으로 아무렇게나 쏟아지고 있고, 기꺼이 비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과 문화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분별해 낼 지각과 상식도 부재합니다. 

가난한 교회도 있고 부한 교회도 있습니다.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가득한 것처럼 부유해지고, 교회도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있다가 보니 어느새 권력이 생겼습니다. 기득권도 있습니다. 그렇게 경제력과 기득권과 힘이 생기다 보니 하나님의 뜻과 말씀보다는 그런 법보다는 주먹이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돈과 사람과 힘을 더 의지합니다. 

어쩌면 지금 예배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가만보면 세상을 향하여 믿음의 힘과 본을 드러내며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힘을 갖고 세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과 폭력으로 행하는 일들 모두 주님이 그토록 반대하시고 멸시한 제국주의와 잘못된 선민사상과 같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셨던 그 방식과 그 길로 행하는 것이 보이는 것 곧 우상들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이들의 행로입니다. 힘을 빼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에 힘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뢰한다면 그 믿음의 힘으로 세상을 향하여서도 넉넉히 이기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방역을 위해 모이지 못하게 한다고 대들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을 탄압이라 반발하면서 들이대는 것은 결코 우리 주님이 사랑하라 말씀하신 방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겉옷을 달라 하는 이들에게 속옷까지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 하는 이들에게 십리를 동행해 가는 것은 그만큼 우리안에 이미 주께서 허락하신 풍성한 사랑이 넉넉한 자만이 역시 넉넉하게 우리의 이웃을 품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비상시국에서 법과 원칙들은 그 의도와 정신을 이해하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믿음을 지키는 일이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것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그토록 주님이 원하시던 이웃 사랑의 말씀을 실천할 때입니다.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을 넉넉하게 품고 너그러이 나누면서 나아갈 때입니다. 예배 한 두번 못드린다고 흔들리는 믿음과 종교라면 아직 많이 부족한 신앙이며, 핍박과 고난의 시기에도 사랑의 삶을 살아갔던 우리 주님과 믿음의 선진들의 길을 다시 깊이 묵상해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 10-22절 하나님은 모든 교만한 것들을 심판하시고 홀로 높임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이사야는 이제 여호와를 배반하는 자들에게 임할 파국적 심판을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이제 재물과 권력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높인 자들의 교만이 땅에 떨어지고 오직 여호와만이 높임을 받는 날입니다. 그래서 모든 오만, 교만, 자만, 거만한 이들은 모두 다 심판을 받아 낮아질 것입니다. 

*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되고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은금과 말과 병거와 세상 권력과 힘 그리고 높은 산과 망대와 우상들을 더 의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된 데는 자신들의 외적 번영과 업적에 도취하여 이를 가능하게 해 주신 분을 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들의 능력과 힘을 올려 놓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어려울 때도 문제이지만 번역하고 잘 되었을 때에도 자고해지고 교만해지고 오만해지기 쉽습니다. 

적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의 위용 앞에서, 그리고 자신들이 지어놓은 온갖 우상들 앞에서, 어느새 자고해져서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주실 여호와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런 것들이 자신들의 안녕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적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용이하게 건축한 것들은 결국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는 전혀 그 역할을 제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우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자신들의 그토록 의지하던 우상들의 얼마나 허망한 것들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심판의 사건이 시작되면 짐승들이 은신처로 사용하는 바위굴과 땅굴로 숨어 피하지만 멸망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만든 우상들의 헛됨을 참담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22절에서 사멸적 존재에 불과한 인간은 신뢰하거나 의존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 인간은 코로 호흡하는 한에서 생명이 유지되는 제한적 피조물일 뿐입니다. 창세기 2:7에 의하면 하나님이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됩니다. 창세기에서는 코에 있는 숨이 먼지에 불과한 인간을 생명체로 만들기 위해 주신 신적 선물로 간주되는데 비하여, 여기서는 인간의 사멸적 한계를 보여주는 부정적 표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 이래로 이러한 교만에 대한 심판과 우상의 헛됨 그리고 인간이 쌓은 업적들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끊임없이 깨어지고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알량한 권력과 성과와 피조물 앞에서 자고하며 교만해지고 오만하고 거만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만하면서 헛된 인생을 의지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날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서지 않으면 우리는 금새 악인의 꾀와 죄인들의 길과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서 여호와의 율법이 아니라 악인의 길로, 교만의 길로, 패망의 길로, 허탄한 길로 행하면서도 그것이 지혜있는 길이라 착각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공동체와 국가든 모두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이라면 모두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임을 알고 고백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며 복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 거둠의 기도

모든 위엄과 광대하심과 영광의 주 하나님 아버지

모든 나라 가운데서 주의 나라 백성으로 택하신

그 은혜와 사랑을 인하여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우리 삶의 기준이요 지침이요 방향이 되는

주의 말씀앞에 나아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의 길로 행하며, 

주의 빛 가운데 거할 수 있기 원합니다. 

혹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만

오직 주만 온전히 의지하며,

헛된 우상에 굴복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 날에 모든 오만과 교만과 거만과 자만 

그리고 기만된 행동들은 심판을 받아

멸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리

곧 멸망의 길, 어리석은 자의 길로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우상들에 마음을 뺏기지 않으며

인생 또한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알고

지금 우리가 온전히 의지하고 의뢰하며

순종하고 따라 살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옵소서. 

만남이 제약되는 시대 속에서도 늘 기도로 소통하고 ,

언텍트 시대에도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과 컨텍하고

사람들과 온택트로 교제하며 사랑하므로 말미암아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온전시 성취해 나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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