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21-31 도가니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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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찌끼의 민낯을 외면하지 않고 말씀의 도가니 앞에 나를 내어 맡기는 거룩한 항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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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의 눅눅한 습기가 방 안에 가득 차오르면, 구석에 가만히 놓아두었던 오래된 은그릇 모퉁이에 슬며시 파란 녹이 슬어가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겉모습은 여전히 번듯해 보이지만, 본래의 순결함을 잃어버린 채 서서히 빛이 바래가는 그 그릇을 닦아내며, 문득 우리 영혼과 이 시대의 자화상을 겹쳐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응시하고자 하는 이사야 1장 21-31절의 말씀은, 이렇듯 겉은 화려하나 속으로 변질되어가는 예루살렘 성읍을 향해 쏟아내시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탄식과, 그 찌끼를 기어이 녹여내 순결한 은으로 다시 빚어내시려는 맹렬한 은총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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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하나님의 저릿한 한숨을 받아 적듯 첫머리를 떼어놓습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사 1:21-22). 창기가 되고 찌끼가 되었다는 것은 본질의 상실, 즉 돌이킬 수 없는 변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스스로의 길을 걷던 신실함은 사라지고,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채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위선의 세계를 폭로하는 고발입니다. 고관들은 도둑과 짝하며 뇌물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고아와 과부의 눈물을 차갑게 외면합니다(사 1:23). 박완서는 인간다움을 상실한 우리 사회의 뻔뻔함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이 생겨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탄식 섞인 일침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은 찌끼가 되었고 물 섞인 삼류 포도주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제단에 제물을 바치며 스스로 의인이라 착각하는 굳어버린 양심, 그것이 바로 이사야가 목도한 예루살렘의 실경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잊어버리는 순간, 존재의 타락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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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은 이 변질된 성읍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끼를 잿물로 씻듯이 맑게 청결하게 하며 네 혼합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사 1:25). 우리는 흔히 내 힘으로 일구어낸 종교적 성취나 번듯한 외양을 무기 삼아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고 자랑하려 듭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진짜 복은 나의 얄팍한 자아가 철저하게 깨어짐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고 빚어져 가는 영적 형성의 과정에 있습니다. 제련의 과정은 아픕니다. 뜨거운 가마솥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고통이 따릅니다. 라틴어 명제처럼 "Monstra tuas fragilitates", 당신의 약함을 드러내라, 하나님은 우리의 숨겨진 치부와 연약함을 도가니 속에서 적나라하게 폭로하십니다. 그러나 이 폭로와 깨어짐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파괴가 아닙니다. 온갖 탐욕과 허장성세의 찌끼들을 잿물로 깨끗이 씻어내어, 마침내 우리를 "의의 성읍, 신실한 고을"(사 1:26)로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맹렬하고도 애끓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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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련의 손길에 온전히 머물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참된 묵상이란 내 메마른 정서를 위로해 줄 달콤한 종교적 경구를 사변적으로 소비하는 감상적 유희가 아닙니다. 묵상은 우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와 스스로 택한 동산의 헛된 그늘을 말려버리는 정직한 말씀의 숫돌입니다(사 1:29). 상수리나무와 동산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풍요와 번영을 빌며 머리를 조아리던 우상의 처소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내 삶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악착같이 붙잡으려 하는 돈, 지위, 배경, 타인의 평판이라는 세속적인 성채들입니다. 우리가 고요히 말씀 앞에 엎드릴 때, 묵상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던 무명의 백태를 투명하게 벗겨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던 상수리나무가 결국 잎사귀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사 1:30)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자각하게 만듭니다. 참된 묵상은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세상을 지배하려던 오만한 날갯짓을 단호히 멈추고, 오직 나를 도가니 속에 넣어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온 존재를 잠잠히 내어 맡기는 거룩한 항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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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 안에 낀 찌끼와 물 섞인 포도주 같은 모순을 감추기 위해, 남들보다 더 완벽한 신앙의 이력서를 짜내느라 영혼의 진액이 다 마르고 피로해지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은 스스로의 반복되는 실패와 깨진 자리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가치 없는 찌끼에 불과하다며 깊은 회의와 절망의 그늘 속에 홀로 주저앉아 눈물짓고 계신가요? 우리의 구원과 거룩함은 우리의 무결함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이기적으로 변하고 본질에서 미끄러지는 우리의 이 가련한 연약함조차 다 아시면서도, 기어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도가니 같은 십자가의 화덕 속에 밀어 넣어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신 하나님의 압도적이고 맹렬한 사랑에 온전히 얹혀 있습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등불 같은 우리를 끄지 않으시고, 잿물보다 더 깨끗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 기어코 신실한 성읍으로 세워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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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더러운 파란 녹이 잔뜩 끼어 빛을 잃어버린 은그릇이 장인의 뜨거운 도가니와 잿물을 거쳐 찬란하게 회복되는 눈물겨운 제련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처세술은 은그릇에 녹이 슬어 찌끼가 꼈을 때, 그저 번쩍거리는 얄팍한 은박지로 겉만 교묘하게 감싸 내 가치를 남들에게 입증해 보이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포장하느라 늘 팽팽한 긴장과 불안 속에 갇힌 채 속절없이 녹슬어갈 뿐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은장장이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가짜 그릇으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그 번듯한 은박지를 사정없이 벗겨내시고, 우리를 말씀의 뜨거운 제련용 도가니 속에 가차 없이 집어넣으십니다. 우리의 헛된 탐욕과 위선의 찌끼들이 잿물 속에 하얗게 녹아내리는 뼈아픈 부서짐을 지나, 마침내 도가니의 불길이 가라앉고 맑은 은물결 위에 은장장이이신 주님의 다사로운 얼굴빛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은그릇은 본래 지녔던 가장 찬연하고 눈부신 구원의 빛을 발하며 세상을 환히 밝히는 하나님 나라의 고귀한 성물로 찬란하게 되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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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초록이 빗물에 씻겨 한없이 팽팽해지는 이 7월의 여름날, 껍데기만 요란한 세상의 매정한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안의 찌끼를 폭로하고 씻어내시는 주님의 말씀의 도가니 앞에 고요히 엎드리는 묵상의 자리를 지켜내며,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십자가의 붉은 은혜에 잇대어 곁에 있는 지친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투명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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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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