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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1-18 새겨지는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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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도 그분의 새김을 받아 이웃의 언덕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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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전선이 한반도 허리에 정체되면서 후텁지근하고 무거운 대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7월의 어느 날입니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도 흐르지 않는 먹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우리네 삶의 기상도 역시 이처럼 꽉 막혀 있는 것 같을 때가 참 많습니다. 성실하고 의롭게 살아보려 애쓰지만, 세상의 부조리한 질서 속에서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하는 실존적 의문과 짙은 회의감 때문에 가만히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숨짓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연약함과 신앙의 메마름 때문에 깊은 밤 홀로 괴로워하며 가녀린 숨을 내쉬는 이들의 심령 위에, 침묵의 장막 뒤에서 기어코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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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편의 시인은 첫 대목부터 참아왔던 탄식을 격정적으로 터뜨립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이보다 더 정직한 질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시편은 우리에게 언제나 정제된 거룩함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의 지독한 결핍과 서운함을 가감 없이 발설하도록 허용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부재 경험을 억누르기만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곧 기만적인 영성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시인이 "어찌하여 숨으시나이까"라고 대들 듯 물을 수 있는 까닭은, 역설적으로 그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에 온전히 매여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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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육체적 곤경보다, 그 환난을 비웃으며 교만을 떠는 악인들의 서늘한 실천적 무신론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머리와 입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척하면서도, 그들의 사상과 행동에서는 하나님을 말끔히 소거시킨 채 살아갑니다.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도다"(시 10:11). 그들은 자본과 권력이라는 단단한 우상을 손에 쥐고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사냥감 삼아 웅크립니다.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대대로 재앙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며 이웃을 밟고 올라섭니다. 역사학자 발터 벤야민은 "역사는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승자들의 전리품 전시장과 같았다"고 쓸쓸히 적었습니다. 악인들은 눈앞의 일시적인 성취가 영원할 것처럼 미쳐 날뛰며, 역사의 저울을 제 이익을 위해 휘어놓으려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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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냉혹한 세상 앞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말씀을 늘 읊조리는 묵상입니다. 지준회 목사는 묵상을 가리켜 영혼의 판 위에 하나님의 약속과 법을 깊이 새기는 "새김"이라고 명명합니다. 세상의 악인들은 자기 마음에 탐욕과 오만의 질서를, "하나님은 보지 않으신다"는 냉소적인 불신의 규칙들을 새겨 놓습니다. 그 마음에 무엇이 새겨져 있느냐가 곧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결정하는 법입니다. 참된 묵상이란 성경 구절에 단순한 먹색 밑줄만을 그어두는 정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날카로운 은총의 정날로, 나의 뒤틀리고 모난 완고한 심장에 하나님의 긍휼과 십자가의 사랑을 아프게 조각해 넣는 새김의 성사입니다. 매일 아침 말씀의 정을 잡고 내 속에 똬리 틀고 있는 교만과 이기심을 쪼아내며,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섭리만을 심장 한복판에 새겨 넣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악인들의 요란한 번영 앞에서도 "인생은 한갓 숨결일 뿐"이라는 영원한 진리를 응시하는 굳건한 내적 기둥을 선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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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새김의 자리에서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봅니다. 시편 10편의 이야기는 절망의 하소연에서 끝나지 않고 마침내 하늘의 공의를 굳게 붙드는 든든한 신뢰로 눈부신 전환을 이룹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들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시 10:12, 14). 하나님은 세상에서 의지할 곳 없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 기가 죽어 차마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흐느끼는 이들의 그 가녀린 소원을 들으시고 그 마음을 준비시키시며 귀를 기울이시는 다사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구원과 참된 안돈은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강해져서 완벽한 안전구역을 구축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넘어지고 의심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의 흙먼지 같은 연약함조차 당신의 찢기신 살과 보혈로 넉넉하게 덮어주시어 기어코 영원한 하늘의 상속자로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그 집요하고도 맹렬한 은총에 온전히 잇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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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차갑고 단단한 구리판 위에 날카로운 도구로 그림을 새겨 넣는 동판화의 정교한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동판의 매끄러운 겉면만을 바라보며, 아무런 흠집 없는 미끈하고 단단한 자아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 자랑하며 상처 입은 동판을 폐기하려 듭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편평하고 얄팍한 평면으로 남겨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시련과 부조리라는 고통의 다이아몬드 바늘을 통해 우리 자아의 구리판 위에 깊고 아픈 선들을 새겨 넣으십니다. 세상은 이 새겨짐의 아픔을 보고 "네 인생은 망가졌다"고 조롱하겠지만, 그 아픈 새김의 홈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짙고 붉은 은총의 잉크가 스며들게 됩니다. 우리가 내 잘남을 증명하려 빳빳하게 서 있던 고집을 멈추고 창조주의 거대한 인쇄기 아래 우리 존재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의 상처 입고 찢겼던 그 남루한 일상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하나님 나라의 명작으로 하얗고 부드러운 종이 위에 눈부시게 찍혀 나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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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무더위가 세상의 분주함과 어우러져 우리 영혼의 안색을 흐리게 하는 이 계절, 내 목소리만을 높여 강함을 증명하려는 세상의 모질고 매정한 문법을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그저 하루의 첫 시간, 내 마음에 주님의 사랑의 법을 깊이 새기는 묵상의 자리에 가만히 엎드리며, 나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끝까지 품어주신 그 십자가의 넉넉한 은혜를 힘입어, 내 곁에 있는 지치고 압제당하는 연약한 이웃의 비빌 언덕이자 고향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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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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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NfXyn8xyJ1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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