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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1-9 무너짐, 그 은혜로운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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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의 붕괴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신의 질투 어린 심판이 아니라, 획일화된 욕망의 감옥에 갇힌 우리를 다양성의 뜰로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해방입니다.

*

시날 평지에 거대한 탑이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벽돌을 굽고 역청을 바르며 한목소리로 외칩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흔히 우리는 이 장면을 하늘 꼭대기에 닿아 신과 맞서려는 인간의 오만함으로 읽어왔습니다. 하지만 성서학자 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조금 다른 시선을 건넵니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흩어짐’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불확실한 광야로 나아가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수평적 명령’이 버거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단단히 옭아매는 ‘수직적 성채’를 쌓고, 그 안에서 ‘하나의 언어, 하나의 사상, 하나의 목표’로 굳어진 안전한 제국을 꿈꾸었습니다.

그것은 얼핏 보면 평화롭고 효율적인 세상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성공’의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든든한 배경을 만들고, 남들이 우러러볼 만한 이름을 남기고, 끼리끼리 뭉쳐 안정을 누리는 삶 말입니다. 그러나 ‘다름’이 용납되지 않는 일사불란함은 폭력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꿈을 꿔야 하는 세상은 질서가 아니라 질식입니다.

하나님은 그 질식할 듯한 회색빛 성채를 허무십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번개를 내리꽂는 대신, 친히 그들의 삶 한가운데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저주라 부르지만, 실은 이것이야말로 눈물겨운 은혜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대방의 눈빛을 살피고 마음을 헤아려야만 비로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의 뜻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명령’의 언어가 무너진 자리에,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경청’의 언어가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계획이 틀어져 낙심한 여러분.

때로 우리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안정이라 믿었던 것들이 흩어지고, 익숙했던 관계가 어긋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획일화된 욕망의 감옥에서 끌어내어, 더 넓은 은혜의 들판으로 내보내시는 과정입니다. 흩어짐은 버려짐이 아닙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어져야 온 들판을 노랗게 물들일 수 있듯, 우리 또한 흩어져야 비로소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벨의 성취가 아니라 ‘거룩한 흩어짐’이 되기를 빕니다. 획일적인 성공을 향해 벽돌을 나르는 노예의 삶을 멈추고, 서로 다른 빛깔과 향기로 어우러지는 하나님의 정원이 되십시오. 무너진 탑의 잔해 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하늘을 봅니다. 그 텅 빈 충만함 속에 하나님의 미소가 서려 있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1:1-9 획일(劃一)의 감옥을 허무시는 은총, 그 다채로운 흩어짐의 미학

바벨탑의 붕괴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획일적인 욕망의 성채에 갇힌 우리를 ‘흩으심’으로써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우러져 하나님의 형상을 다채롭게 비추게 하시는 창조적 은총의 사건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영혼의 고요를 찾아 이 자리에 서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눌려 신앙의 길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신 모든 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흡사 거대한 공사장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벽돌을 굽고, 안정이라는 이름의 역청을 발라 자신만의 성을 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바벨의 구호는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오늘 우리의 욕망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는 바로 이 욕망의 정점에서 하나님의 개입이 어떻게 우리를 참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지를 보여 주는 장엄한 서사입니다.

우리는 흔히 바벨탑 사건을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수직적인 구도로만 이해해 왔습니다. 하지만 송민원 교수는 이 본문을 ‘수평적 읽기’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합니다. 본문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흩어짐’이었습니다.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결의합니다(11:4). 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창 1:28, 9:1)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들은 획일적인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 속에 안주하며, 타자의 낯섦을 제거하고 자신들만의 견고한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다양성이 말살된 사회, 모두가 똑같은 생각과 말을 강요받는 사회, 그것은 질서가 아니라 ‘획일(劃一)의 감옥’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 획일성의 폭력을 두고 보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내려오셨다”고 기록합니다 ( 11:5). 이것은 감시자의 시선이 아니라, 당신의 피조물이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을 안타까워하며 찾아오시는 ‘끙끙 앓으시는’ 아버지의 걸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어 ‘발랄(balal)’은 단순히 혼란스럽게 만들다는 뜻을 넘어, 제사장이 기름과 밀가루를 섞듯 ‘섞다(mix)’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은 굳어버린 단일성의 세계를 휘저어 섞으심으로써, 획일화된 제국의 질서를 깨뜨리고 다시금 다양한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다문화의 토양’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흩어짐은 징벌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생명의 자리로 내보내시는 ‘은총의 파송’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우리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흩어지고,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것 같은 혼돈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한동일 선생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겪는 흩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나만의 좁은 성을 나와 더 넓은 하나님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바벨의 혼돈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시간을 우리 역사 속에 건네주사 우리를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이끄십니다.

이 거대한 은총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그것은 점잖게 앉아 사색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 말씀을 온몸으로 씹고 뜯고 맛보며 내 존재의 피와 살로 만드는 치열한 과정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소화되어 나를 읽어 내고, 나를 해석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묵상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이드거니 씹어 삼킬 때, 비로소 우리는 바벨의 욕망인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인 ‘거룩’을 향해 걷는 순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욕망의 벽돌을 내려놓고, 우리를 흩으시는 하나님의 바람에 몸을 맡깁시다. 흩어진 그 자리, 낯선 이웃과 마주하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용납하고, 낯선 타자를 환대하며, 각자의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할 때, 무너진 바벨탑의 폐허 위에는 오순절의 성령이 임하여 진정한 일치와 평화의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투명한 빛을 일곱 빛깔 무지개로 펼쳐내는 ‘프리즘(Prism)’과 같습니다. 우리는 단일한 흰색 빛으로 남기를 원하며 획일성을 고집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라는 프리즘을 통과시켜 세상 구석구석을 다채롭고 찬란한 생명의 빛깔로 물들이시기를 원하십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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