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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8:1-22 변하지 않는 인간의 악함마저 덮으시는 ‘은혜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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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는 인간의 본성을 바꾸지 못했지만, 상한 심령을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는 하나님의 ‘아픈 결심’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 살아갈 영원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희망의 기척을 살피느라 여윈 가슴을 쓸어내리는 벗님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물 위에서의 시간은 더디게만 흐릅니다. 150일간 세상을 뒤덮었던 물이 줄어들기까지, 방주 안의 공기는 얼마나 무겁고 탁했을까요.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시간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없고, 사방이 꽉 막힌 듯한 먹먹한 침묵의 시간 말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8장은 그 침묵을 깨뜨리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창 8:1).

여기서 ‘기억하다(zakar)’는 단순히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누군가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개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니 바람이 불었고, 물이 줄어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기억이 곧 우리의 구원입니다.

방주의 문이 열리고 뭍으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제를 드렸을 때,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창 8:21)라고 기록합니다. 송민원 교수님의 예리한 통찰을 빌려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가슴 서늘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흠향하신 것은 타오르는 고기의 냄새가 아닙니다. 죽음의 위기를 건너온 인간이 떨리는 손으로 바친 ‘예배의 마음’, 즉 창조주를 향한 피조물의 겸손한 복귀를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하나님의 독백이 충격적입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창 8:21).

잠깐 멈추어 생각해 보십시오. 홍수의 목적은 본래 인간의 죄악을 씻어내고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홍수 이후의 인간은 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수가 끝난 직후에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진단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홍수라는 거대한 재앙조차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여전히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해졌기 때문에 저주를 멈추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여전히 악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방식을 바꾸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심판과 징벌’이라는 기계적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과 악함을 끌어안고 가시는 ‘은혜와 긍휼’의 방식을 선택하셨습니다. 노아의 제사가 향기로웠던 것은 그 제물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부족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넉넉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하나님은 무지개를 띄우시고, 자연의 질서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이 평범한 일상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유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인내와 성실하심이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홍수를 겪고도 여전히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완벽하게 변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악하고 약한”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에, 심판 대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덮어주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해지려는 강박이 아닙니다. 다만 방주 문을 열고 나와 젖은 땅에 제단을 쌓았던 노아처럼, 비루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그 상한 마음의 향기를 하나님은 세상 어떤 향수보다 기쁘게 받으십니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계절처럼 성실하신 그 사랑에 기대어, 오늘 다시 살아가십시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8:1-22 비린 욕망의 파고를 넘어, 다시 ‘아다마(Adamah)’에 닿는 은총의 항해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우리의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생명을 살려내려는 압도적인 의지이며, 우리는 말씀을 묵상의 여정을 통해 이 가없는 은총에 우리 삶의 기준음을 조율하며 살아야 합니다.

*

안녕하십니까? 아득한 슬픔이 안개처럼 깔린 이 시대를 건너가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때때로 우리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작은 조각배처럼 위태롭기만 합니다. 성공과 소유라는 거센 파도에 밀려 정작 우리 영혼이 머물러야 할 안식의 항구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창세기 8장의 이야기는 바로 그 깊은 상실의 바다 한복판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고 증언합니다(8:1). 여기서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는 단순한 인지 활동이 아닙니다. 송민원 교수는 이것을 기어코 생명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개입’으로 읽어냅니다. 하나님은 폭력(Hamas)으로 점철된 인간 세상을 보며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Naham)을 느끼셨지만, 그 폐허 위에서 다시금 생명을 이어갈 ‘틈’을 만드십니다. 한동일 선생은 삶이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물려받은 것들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노아 역시 홍수라는 거대한 비극을 물려받았지만, 하나님의 기억하심 덕분에 그 잿더미 속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노아가 방주 문을 열고 내보낸 비둘기가 물어온 감람나무 잎사귀는 단순한 식물의 조각이 아니라, 죽음의 지배가 끝나고 생명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희망의 전언’입니다(8:11). 이기주 작가는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시간을 멈추시고 당신의 영원한 시간을 우리라는 유한한 존재에게 다시 건네주셨습니다.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8:21). 이것이 바로 죄보다 먼저 우리를 덮고 있는 ‘원복(Original Blessing)’의 신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에 대한 회의가 밀물처럼 밀려올 때, 혹은 지친 일상이 우리를 짓누를 때 고요히 말씀의 여울가에 앉으십시오. 날마다 주님의 마음이라는 기준음에 우리 영혼을 조율할 때, 비로소 우리는 비루한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장엄한 신비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해서 존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기에 충분히 존귀합니다. 이제 무거운 종교적 의무를 내려놓고, 우리 삶의 구부러진 마디마디를 펴시는 주님의 손을 잡으십시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폐허 속에서도 생명을 노래하는 명랑한 순례자가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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