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세기 1:26-2:3 분주함을 멈추고 ‘나’라는 기적을 마주하는 시간

.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성과로 증명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경이로운 ‘목적’이며, 안식은 이 존귀한 사실을 기억해내는 거룩한 저항입니다.

*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고 삶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신 벗님들, 평안하신지요.

현대인들을 정의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아마도 ‘피로’일 것입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이 시대를 일러 ‘피로사회’라 규정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착취하면서까지 무언가가 되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달립니다. 성과가 곧 존재의 증명이 되는 세상에서, ‘쉼’은 게으름이나 죄악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달리고 있는가?”

오늘 우리가 마주한 창세기의 끝자락(1:26-2:3)은 이 숨 가쁜 질주에 제동을 거는 거대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독특합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여기서 ‘형상(Image)’은 히브리어로 ‘첼렘’이라 하는데, 이는 고대 왕들이 자신의 통치 영역에 세워두던 동상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사랑과 생명을 흘려보내야 할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살아있는 조각상’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 세상이 여러분을 어떤 잣대로 평가하든, 이 근원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깊은 분이든, 혹은 회의에 찬 분이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존재 안에는 지워지지 않는 ‘신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던져진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온 우주의 주인이신 분이 심혈을 기울여 빚어내고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탄성 하신 걸작품(Masterpiece)입니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있기에 살아갈 힘을 얻는 존재입니다.

창조의 완성은 노동이 아니라 ‘안식’으로 정점을 찍습니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유대 사상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안식을 일러 ‘시간의 성소(Sanctuary in Time)’를 짓는 일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쉬신 것은 피곤해서가 아닙니다. 멈춤을 통해 피조물들이 누려야 할 평화와 기쁨의 공간을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무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는 돈이나 성과를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거룩한 저항입니다. 내가 일손을 놓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이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혹시 신앙생활마저 또 하나의 짐처럼 느껴지십니까?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노동’이 아니라 여러분의 ‘존재’를 원하십니다. 엿새 동안의 치열했던 삶을 내려놓고,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세상의 속도계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보십시오. 그 거룩한 멈춤의 시간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고 내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기를 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당신의 품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넉넉한 은혜의 품에 안겨, 오늘 다시 한번 “내 인생은 참으로 살만하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26-2:3 부서진 일상에 깃든 왕실의 품격, 그 거룩한 쉼의 초대

우리는 대단한 성취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지울 수 없는 ‘정체성’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그분의 안식에 참여할 때 비로소 비루한 현실을 축제로 바꿀 용기를 얻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시간의 씨실과 날실이 엮어내는 일상의 무늬를 돌아보건대, 우리 시대의 풍경은 참으로 부박(浮薄)하고 고단하기만 합니다. 거대한 우주의 침묵 앞에 서면 우리는 때때로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자신의 초라한 실존을 마주하며 어지럼증을 느끼곤 합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거나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 창세기의 첫 대목은 우리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으셨다고 증언합니다. 카먼 조이 아임스는 이것이 우리가 가진 지능이나 감정 같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자 왕실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의 문제라고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고안된 존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지상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상징적 현존’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은 우리를 빚으신 토기장이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한동일 선생은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는 선언이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을 ‘하느님’께 두는 가장 아름다운 이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시작은 비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후 “참 좋았다”고 감탄하셨습니다. 이 ‘원복(Original Blessing)’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거운 종교적 의무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 존재로 씹어 소화하며 우리 영혼의 기준음을 주님의 마음에 조율(Tuning)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정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은 피곤해서가 아니라, 모든 무질서를 정돈하시고 왕좌에 앉아 세상을 다스리시는 ‘평화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이기주 작가는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안식을 선물로 주시며, 일주일 중 하루는 나를 증명하려는 고단한 노동을 멈추고 ‘시간 속의 성소’인 안식일의 리듬에 몸을 맡기라 초대하십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삶의 무게에 눌려 “이게 아닌데” 하는 탄식을 뱉고 계십니까? 우리가 마주한 부조리한 현실조차 하나님은 은총의 계기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이기주 작가의 말처럼 “우린 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등불을 밝히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랑의 레가토’를 연주할 때, 우리 삶은 세상을 향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존엄한 형상임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거니시며 우리 삶의 굽은 마디마디를 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밤하늘의 달빛과 같습니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해의 빛을 받아 어두운 밤길을 비추듯, 우리 또한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을 반사하여 이 부박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길을 밝히는 ‘신령한 등불’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9 창세기 9:18-29 뒷걸음질 쳐 덮어준다는 것 new 평화의길벗 2026.01.12 0
128 창세기 9:1-17 구름 속에 걸어둔 평화, 그 아픈 다짐 new 평화의길벗 2026.01.11 0
127 창세기 8:1-22 변하지 않는 인간의 악함마저 덮으시는 ‘은혜의 향기’ 평화의길벗 2026.01.11 0
126 창세기 7:1-24 닫힌 문 뒤에서 견뎌내는 침묵의 시간 평화의길벗 2026.01.09 0
125 창세기 6:1-22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눈물’과 ‘방주’ 평화의길벗 2026.01.08 0
124 창세기 5:1-32 죽음의 행렬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노래 평화의길벗 2026.01.08 1
123 창세기 4:1-26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약함’의 힘 평화의길벗 2026.01.07 2
122 창세기 3:14-24 에덴 밖, 거친 땅에서도 살아야 할 ‘생명’의 소명 평화의길벗 2026.01.05 2
121 창세기 3:1-13 상실한 낙원,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평화의길벗 2026.01.04 2
120 창세기 2:4-25 흙의 비천함을 별의 존귀함으로 바꾸시는 사랑 평화의길벗 2026.01.03 1
» 창세기 1:26-2:3 분주함을 멈추고 ‘나’라는 기적을 마주하는 시간 평화의길벗 2026.01.02 6
118 창세기 1:14-25 존재의 기쁨, 그 넉넉한 생명의 품으로 평화의길벗 2026.01.01 2
117 창세기 1:1-13 흑암을 품어 안으시는 하나님의 숨결 평화의길벗 2025.12.31 3
116 시편 150:1-6 마지막 숨결까지, 삶은 축제이어라 평화의길벗 2025.12.31 6
115 시편 149:1-9 어둠을 베는 찬양, 그 거룩한 역설 평화의길벗 2025.12.29 7
114 시편 148:1-14 피조물의 합창, 그 먹먹한 신비 평화의길벗 2025.12.29 9
113 미가 7:14-20 깊은 바다에 던져진 한 해, 다시 솟아오르는 은총 평화의길벗 2025.12.27 7
112 미가 7:1-13 어둠 속에 앉을지라도 주께서 나의 빛이 되시나니 평화의길벗 2025.12.27 9
111 미가 6:1-16 무엇으로 그분 앞에 나아갈까 평화의길벗 2025.12.25 10
110 미가 5:1-15 작고 비루한 곳에 임한 우주적 신비 평화의길벗 2025.12.24 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 7 Next
/ 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