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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1-22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눈물’과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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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힘을 숭상하는 ‘네피림’의 영웅 서사에 열광하지만, 하나님은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묵묵히 동행하는 노아의 ‘방주’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뉴스에 마음 다쳐 잠 못 이루는 벗님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창세기 6장의 풍경은 낯설지 않습니다. “땅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6). 성경에서 가장 슬픈 구절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한탄하다’는 히브리어 ‘나함(nacham)’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탄식’과 ‘연민’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이 빚으신 세계가 망가지는 것을 보며 차가운 법관처럼 판결문을 쓰고 계신 것이 아니라,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울고 계십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떠했기에 하나님의 가슴에 이토록 큰 멍이 들었을까요? 성경은 그 원인을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합,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네피림’에게서 찾습니다. 송민원 교수님의 통찰을 빌려 이 신화적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이것은 천상적 존재의 타락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대 근동에서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 칭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폭군’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의 딸들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힘으로 약자를 유린하는 것, 성경은 그 상태를 일러 ‘포학(Hamas)’이 땅에 가득했다고 고발합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네피림’, 즉 힘센 용사(Gibborim)와 유명한 자들을 숭배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 남들을 발 아래 두는 것을 성공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힘의 질주를 보며 아파하십니다. 힘이 정의가 된 세상은 하나님이 꿈꾸신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절망의 한복판에 ‘노아’가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를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고 기록합니다. 그가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폭력의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며 그분과 ‘동행’했기에 그는 은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동행이란 무엇입니까? 내 보폭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어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로 방주인 ‘테바(Tebah)’는 동력 장치도, 조향 장치도 없는 궤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인간의 오만(바벨탑)과는 정반대되는 상징입니다. 방주는 내가 운전해서 가는 배가 아닙니다. 오직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하나님의 손길에 내어 맡기는 ‘항복’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지만, 그것은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었습니다. 죄악과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창조적 해체’였습니다. 홍수는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그 눈물 속에 방주는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여전히 힘을 과시하는 네피림들의 목소리로 시끄럽습니다.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해 보여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힘센 용사를 찾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며, 묵묵히 오늘이라는 방주를 짓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광양사랑의교회라는 공동체가,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이 이 시대의 방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둥실 떠서, 서로를 보듬고 생명을 지켜내는 따뜻한 품이 되어주십시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방향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테바(방주)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믿음 안에서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6:1-22 무너진 관계의 폐허에 흐르는 하나님의 ‘아픈 숨결’

우리 삶을 잠식하는 폭력(Hamas)의 물결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기보다 ‘끙끙 앓으시는’ 아픔(Naham)으로 먼저 다가와 우리를 당신의 은총인 방주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

안녕하십니까? 시간의 씨실과 날실이 엮어내는 일상의 무늬를 돌아보건대, 우리 시대의 풍경은 참으로 고단하고 소란스럽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가지만, 정작 우리 영혼은 쫓기는 듯한 불안 속에 유폐되어 길을 잃곤 합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거나 “세상이 이토록 무질서한데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라고 묻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우리를 심판의 공포가 아닌, 창조주의 애끓는 ‘사랑의 언어’ 앞으로 인도합니다.

송민원 교수는 창세기 6장의 홍수 원인을 ‘수직적 명령 위반’이 아닌 ‘수평적 관계의 파괴’라는 시선으로 읽어낼 것을 제안합니다. 성경은 당시 세상을 향해 “포악함(Hamas, 폭력)이 땅에 가득했다”고 진단합니다. 여기서 ‘하마스’는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 거친 것이 아니라, 타자를 존엄한 형상이 아닌 수단으로 취급하고 서로의 관계를 깨뜨리는 사회적·구조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카인에게서 시작된 이 폭력의 연쇄가 라멕을 거쳐 온 땅을 뒤덮었을 때, 하나님은 그 무너진 질서를 보며 “한탄(Naham)”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한탄’을 변덕스러운 후회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것이 죄를 간과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을 향한 가없는 사랑 사이에서 빚어진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의 대상으로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걸작품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현실을 보며 ‘끙끙 앓으시는’ 분입니다. 칼 야스퍼스가 말한 ‘한계상황(Grenzsituation)’처럼,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실존의 벼랑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차가운 법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아픈 사랑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말씀 묵상’입니다. 묵상은 ‘동물적인 치열함’입니다. 그것은 촛불 아래 정적으로 앉아 있는 행위가 아니라,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 말씀을 전 존재로 씹고 삼켜 내 피와 살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마음이라는 기준음에 우리 영혼을 조율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자를 경쟁자가 아닌 ‘대응하는 존재’로 긍정하는 ‘원복(Original Blessing)’의 세계에 당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방주는 세상을 정복하는 군함이 아니라, 폭력의 물결로부터 생명을 보존하는 ‘은총의 공간’입니다.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은혜(Hen, 호의)’를 베푸셨기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무거운 종교적 강박을 내려놓고, 우리 삶의 혼돈 속에 질서의 빛을 비추시는 주님의 손을 잡으십시오. 이 아슬아슬한 희망의 길 위에서, 우리 삶은 세상을 정화하는 한 줄기 맑은 샘물이 되어 흐를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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