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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10-30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 속에 흐르는 은총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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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화려한 업적의 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비루해 보이는 일상을 견디며 생명을 이어가는 거룩한 순명(順命)입니다.

*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면 우리는 문득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가벼운지 자각하곤 합니다. 우주라는 광활한 시공간 속에서 고작 백 년도 못 채우고 스러지는 우리의 삶은, 파스칼의 말처럼 '생각하는 갈대'와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간은 자꾸만 무언가를 남기려 합니다. 내 이름이 잊히지 않도록, 내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눈에 보이는 성과를 쌓아 올리려 애씁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바벨탑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바벨탑의 소란스러움 뒤에 아주 낯설고 지루한 침묵의 기록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바로 창세기 11장 10절부터 이어지는 '셈의 족보'입니다. "누구는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고, 죽었더라." 이 건조한 반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송민원 목사는 저서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이 족보가 바벨탑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라고 통찰합니다. 바벨의 사람들이 '벽돌'로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할 때, 하나님은 '생명'을 낳는 이들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주목할 점은 이 족보 속 사람들의 수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홍수 이전 900세를 살던 신화적 시간은 사라지고, 600세, 400세, 200세로 수명은 급격히 단축되어 비로소 우리와 같은 역사적 인간의 시간으로 들어옵니다. 화려함은 사라지고, 삶은 점점 더 연약해집니다. 게다가 이 족보의 끝은 어디입니까? 바로 데라의 아들 아브람, 그리고 "임신하지 못하여 자식이 없는" 사래(창 11:30)에게서 멈춥니다. 생명을 낳는 것이 유일한 과업인 족보가 '불임'이라는 절벽 앞에서 멈춰 선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앙의 자리를 고민하는 벗님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이 족보의 끝자락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남들처럼 번듯한 탑을 쌓지도 못했고, 갈수록 기력은 쇠하고, 내 삶은 아무 열매도 없는 불임의 상태인 것만 같은 허무함 말입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 인간의 가능성이 끝난 자리, 더 이상 내 힘으로 미래를 만들어낼 수 없는 그 '빈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는 시작됩니다.

바벨탑은 무너졌으나, 묵묵히 아이를 낳고 기르며 줄어드는 시간을 살아낸 셈의 후손들을 통해 구원의 강물은 아브라함에게까지 흘러왔습니다. 신앙은 내가 무엇을 이루어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비루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생명을 긍정하고 견뎌내는 그 '살아냄'을 귀하게 보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흘리는 남모르는 눈물과 한숨, 그리고 버거운 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그 시간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이 스며드는 거룩한 틈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은혜가 머무는 처소입니다. 그러니 부디, 흔들리는 생의 한복판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고 이 신비로운 은총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시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1:10-30 잊힌 이름들 사이에 흐르는 은총의 지하수

셈의 족보는 무미건조한 이름들의 나열이 아니라, 바벨의 혼돈 이후에도 면면히 흐르는 생명의 맥박이며, 삭막한 일상과 불임의 절망 속에서도 기어코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기억의 은총’입니다.

*

계절의 순환 속에서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며 오늘이라는 기적의 영토에 당도한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함께 펼쳐 든 창세기 11장 후반부는 “누가 누구를 낳고, 얼마를 살다가 죽었더라”는 문장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족보입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 낯설고 오래된 이름들의 나열이 과연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 회의가 밀려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메마른 족보의 행간을 가만히 응시하면, 그곳에는 소란스러운 역사의 뒤편에서 묵묵히 생명을 이어오신 하나님의 ‘곡진기정(曲盡其情, 사정을 자세히 헤아림)’하신 마음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송민원 교수는 이 족보가 단순한 명단이 아니라,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우주적 역사와 12장부터 시작되는 아브라함의 구체적인 역사를 연결하는 ‘다리(Bridge)’와 같다고 말합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가 뿔뿔이 흩어지는 혼돈을 겪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족보에 등장하는 ‘낳고, 살고, 죽었다’는 동사들은, 깨어진 세상 속에서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한동일 선생은 “삶이란 내가 원하지 않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물려받은 것들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족보 속의 인물들은 바벨의 혼돈이라는 시대를 물려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자녀를 낳고 기르며 하나님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이 무명(無名)의 생존자들이 있었기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역사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기주 작가는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셈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이 긴 시간 동안, 당신의 영원한 시간을 인간의 유한한 역사 속에 기꺼이 건네주셨습니다. 특히 족보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데라는 아들 하란을 잃는 슬픔을 겪고, 며느리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는 ‘불임’의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11:28). 성경이 족보의 끝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결핍과 상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절망의 자리, 더 이상 생명이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그 벼랑 끝에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우리네 일상이 쳇바퀴 돌듯 무의미해 보이고, 삶이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남은 것은 빈손뿐이라는 허무함이 우리 영혼을 잠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건조한 이름들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묵상’의 깊은 우물을 길어 올려야 합니다.

묵상은 말씀을 온몸으로 씹고 뜯고 맛보며 내 존재의 피와 살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이 족보를 이드거니 씹어 묵상할 때, 비로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나의 평범하고 비루해 보이는 일상이 실은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드라마를 이어가는 소중한 ‘연결 고리’임을 말입니다. 묵상은 텍스트를 읽는 것을 넘어, 그 말씀이 나의 삶을 읽어내도록 허락하는 용기입니다.

이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그 먼 여행을 기억합시다. 족보 속의 이름들이 다음 세대에게 생명을 건네주었듯,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생명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나아가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대단한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와 말을 건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화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사랑하고, 견디고, 살아내십시오. 그 소박한 몸짓들이 모여 하나님의 역사는 흐릅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존엄한 형상임을 잊지 않을 때, 우리 삶은 세상을 정화하는 맑은 샘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메마른 대지 아래 흐르는 ‘지하수’와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갈라진 흙과 모래뿐인 황무지 같아도, 그 깊은 곳에는 생명을 살리는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어, 때가 되면 기어코 메마른 뿌리를 적시고 찬란한 생명의 꽃을 피워내는 법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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