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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13 상실한 낙원,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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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락원의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선고가 아니라, 비록 고통스럽고 수고로울지라도 끝내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와 그 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도 남모를 부끄러움을 안고 삶의 그늘에 숨어 계신 벗님들, 평안하신지요.

우리는 흔히 창세기 3장을 ‘인류 타락의 기원’이나 ‘원죄의 시작’으로 읽는 데 익숙합니다. 탐스러운 열매를 따 먹은 인간의 불순종, 그리고 그 대가로 찾아온 죽음의 공포. 이것이 우리가 배워온 교리의 문법입니다. 하지만 송민원 교수님의 깊은 통찰을 빌려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송민원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_복있는사람 참고>

하나님은 분명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열매를 먹은 날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에덴 밖에서 생명을 낳고, 땅을 일구며 치열하게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죽음’이란, 육체의 소멸이 아니라 ‘낙원적 삶의 끝’을 의미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인간은 땀 흘려야만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고, 산고의 고통을 겪어야만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무거운 삶’의 세계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니 창세기 3장은 ‘죽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고단한 생(生)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그들에게 찾아온 첫 번째 변화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부끄러움’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창 3:7). 이전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투명했으나, 이제는 감추고 가려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의 노출 문제가 아닙니다. 나와 너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용납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 가면을 쓰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 바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두른 아담과 하와의 모습 아닐런지요.

두려움에 떨며 나무 뒤에 숨은 인간을 향해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이 질문은 범인을 색출하려는 수사관의 심문이 아닙니다. 길 잃은 아이를 찾는 어미의 애타는 부르짖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숨은 장소를 몰라서 묻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아, 네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가, 그 부끄러움과 두려움의 자리가 과연 네가 있어야 할 곳이냐”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이 질문은 관계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저지른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당장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우리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마련된 그 따뜻한 옷으로 우리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덮어주신 것입니다. 비록 에덴은 닫혔고, 우리는 거친 광야 같은 세상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하지만, 바로 그 고단한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은혜가 덧입혀져 있습니다.

하와(Eve)의 이름이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낙원을 잃은 자리에서도 생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엄숙한 명령이자 축복입니다. 오늘 하루,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질지라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이 나를 짓누를지라도,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시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그 은혜를 의지하여, 오늘이라는 척박한 땅을 기어이 살아내는 ‘생명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3:1-13 숨어버린 자아를 부르는 아픈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

인간의 불행은 스스로 삶의 입법자가 되려는 오만에서 비롯되지만, 하나님은 숨어버린 우리를 정죄하기보다 ‘함께 아파하시는 사랑(Compassion)’으로 먼저 다가와 관계의 회복을 촉구하십니다.

*

참으로 부박(浮薄)한 소음이 영혼을 유폐하는 나날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달려가지만, 정작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라는 실존적 물음 앞에서는 가리산지리산 길을 잃곤 합니다. 창세기 3장은 이 아득한 방황의 시원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혼돈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숨결이 무엇인지를 장엄한 서사로 들려줍니다.

동산의 평화가 깨진 것은 뱀의 교묘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질문은 하나님의 관대함에 의심의 쐐기를 박는 일이었습니다. 송민원 교수는 이를 ‘수직적 명령’의 위반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의 기준이 되어 ‘관계의 근원’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오만으로 읽어야 한다고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타자를 존중의 대상이 아닌 지배와 경쟁의 대상으로 전락시켰고, 우리 영혼은 뿌리 뽑힌 존재가 되어 안식을 잃었습니다.

눈이 밝아진 인간이 마주한 것은 신적 환희가 아니라 벌거벗은 자아의 수치심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여기서 ‘나무’는 우리가 자신을 감추기 위해 쌓아 올린 업적이나 소유, 혹은 종교적 허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먼저 찾아가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몰라서 묻는 추궁이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할 ‘관계의 자리’를 이탈한 자식을 향한 ‘끙끙 앓으시는’ 아버지의 애끓는 호소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신앙에 대한 회의가 안개처럼 밀려올 때 우리는 아담처럼 타인을 비난하는 ‘비난 게임’에 몰두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가 주었기에 먹었나이다”. 타자를 지옥으로 만드는 이 비릿한 욕망은 우리의 영혼을 더욱 가난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회복은 말씀을 온몸으로 씹어 소화하며, 우리 존재의 밑바닥까지 읽어내시는 하나님의 시선 앞에 정직하게 서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기를 기다려 찾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기주의라는 흑암 속에 갇힌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을 비추시는 분입니다. 이기주 작가는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한 시간을 우리라는 찰나의 존재에게 건네주셨고, 심지어 아들의 목숨을 통해 우리와 다시 연결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제 무거운 종교적 강박을 내려놓고, 우리를 존재 자체로 긍정하시는 그 가없는 자비의 부력(浮力)에 몸을 맡깁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길을 잃은 작은 조각배를 비추는 ‘먼 빛의 등대’와 같습니다. 비록 파도는 여전히 거세고 앞은 보이지 않지만, 그 빛을 바라보며 영혼의 기준음을 조율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감옥을 넘어 생명의 항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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