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4-24 에덴 밖, 거친 땅에서도 살아야 할 ‘생명’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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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추방은 끝이 아니라 ‘무거운 삶’의 시작이며, 가죽옷을 입혀 내보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여전히 우리를 ‘땅을 섬기는 자’로 살게 하시는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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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고 오늘도 땀 흘려 일상의 거친 땅을 일구시는 평화의 길벗 여러분,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의 이야기를 흔히 ‘비극적 결말’로 읽습니다. 하나님의 엄명을 어긴 죄, 그로 인한 저주와 죽음, 그리고 낙원에서의 영원한 추방. 이 도식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송민원 교수님의 세밀한 눈길을 따라 본문을 다시 읽으면, 그곳에는 절망이 아니라 비장한 ‘삶의 시작’이 꿈틀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 열매를 먹은 날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리신 판결문(창 3:14-19)을 꼼꼼히 뜯어보면, 놀랍게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해산의 ‘수고’와 얼굴에 흘려야 할 ‘땀’, 그리고 엉겅퀴가 나는 땅을 일구어야 하는 고단한 ‘삶’의 무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즉각적인 사형 선고를 내리신 것이 아니라, “이제 너희는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 삶의 엄중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역설적인 희망은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짓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그는 아내를 ‘하와’, 곧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불렀습니다. 죽음의 심판을 받은 자리에서 ‘생명’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 밖에서도 생명은 계속되어야 하며, 우리는 기어이 살아남아 생명을 낳고 길러야 한다는 숭고한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이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창세기 3장 23절은 하나님이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땅을 갈다(abad)’는 말은 창조 때 인간에게 주신 ‘땅을 섬기고 돌보는’ 사명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비록 장소는 낙원에서 거친 들판으로 바뀌었고, 땅은 가시덤불을 내며 저항하겠지만, ‘흙(아다마)’을 섬겨 생명을 피워내야 할 인간(아담)의 소명은 결코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려도 숨길 수 없었던 부끄러움과 수치를 하나님이 친히 덮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을 향한 마지막 배려이자, 거친 세상에서 상처 입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발 디딘 곳은 에덴이 아닙니다. 땀 흘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수고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는 척박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버려진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며 “가서 이 거친 땅을 섬기라”고 등을 떠밀어 주십니다. 비록 힘겨울지라도, 서로의 부끄러움을 덮어주며 생명을 일구어내는 그 자리,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땅을 섬기는’(labor) 여러분의 손길 위에, 에덴의 동쪽에서도 여전히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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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4-24 내보냄의 은총, 살갗 옷에 깃든 하나님의 아픈 사랑
창세기 3장의 추방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의 고향인 흙(Adamah)으로 돌려보내 ‘섬김’의 사명을 잇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이며, 우리의 수치와 연약함을 덮어 주시는 ‘살갗 옷’의 은총으로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시겠다는 눈물겨운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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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고단한 시절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가지만, 정작 우리 영혼은 쫓기는 듯한 불안 속에 유폐되어 가리산지리산 길을 잃곤 합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성도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징계가 두려워 나무 뒤로 숨어 계시지는 않습니까? 창세기 3장의 마지막 대목은 우리를 정죄하는 '법정의 언어'가 아니라, 길 떠나는 자식의 발등상을 보며 ‘끙끙 앓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송민원 교수는 이 본문을 '수직적 형벌'이 아닌 '수평적 생명'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를 즉시 소멸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담은 아내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의 "하와"라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관심이 '죽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이어져야 할 '삶'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에덴에서 내보내신 것은 그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근원인 '땅(Adamah)'을 갈고 섬기게(Aboda) 함으로써, 창조 본연의 사명을 다시 시작하게 하려는 ‘재창조의 파견’입니다.
하나님은 추방당하는 인간을 위해 짐승을 잡아 ‘살갗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 살갗 옷에는 인간의 수치를 덮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섬세한 자비와, 그 옷을 짓기 위해 대신 흘려야 했던 생명의 아픔이 배어 있습니다. 삶은 내가 원하지 않은 것들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주할 척박한 현실을 대신 앓으시며, 우리를 존재 자체로 긍정하시는 은혜의 부력(浮力)으로 우리를 떠받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거운 종교적 강박을 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온몸으로 씹어 소화하며, 우리 삶의 구부러진 마디마디를 주님의 마음에 조율하는 것입니다. 묵상은 단순히 성경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그 먼 여행에 응답하여 우리도 타자의 고통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존재의 도약’입니다.
이제 무명의 백태를 벗고 우리 삶을 바라봅시다. 비록 에덴을 떠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들판에 섰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주님이 지어 주신 살갗 옷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옷을 입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척박한 땅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찬연히 피어날 사명의 자리임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밤하늘의 성좌(星座)와 같습니다. 별 하나는 미약해 보일지라도, 서로의 빛을 반사하며 연결될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길’을 보여 주는 법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