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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4:24-15:9 대적을 위해 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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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그 심판 아래 무너지는 사람 앞에서 웃지 않는 마음을 배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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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한복판입니다. 세상의 모든 수분을 말려 버릴 듯 맹렬하게 타오르던 폭염도 정해진 때가 이르면 서서히 제 기세를 꺾고 물러선다는 것을, 우리는 해마다 이맘때 조용히 배웁니다. 영원히 하늘을 호령할 것 같던 뙤약볕의 위세도 계절을 경영하시는 분의 시간표 앞에서는 속절없이 고개를 숙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낮의 열기가 물러간 자리에 밤이 옵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입니다. 한 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두고, 우리가 약속하고서 끝내 지워 버린 말들이 흘리는 눈물의 반짝임이라고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이 무더위 속에서 저마다의 짐을 지고 하루를 건너온 모든 분의 심령 위에, 그 서늘한 밤하늘 같은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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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하룻밤'입니다.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사 15:1). 수백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성벽과 신전과 곳간이, 해가 한 번 지고 다시 뜨는 그 짧은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걸어 세운 것을 하나님은 하룻밤에 거두실 수 있다는 이 문장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밤에는 또 하나의 소리가 겹쳐 들립니다. 무너지는 성읍의 곡소리 사이로, 그 성읍을 무너뜨린 편에 서 있어야 마땅한 한 사람의 울음소리가 섞여 들립니다. 예언자의 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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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3장부터 23장까지는 주변 나라들을 향한 예언이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실은 한 가지 질문을 향해 있습니다. 역사의 운전대를 누가 쥐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주전 8세기 후반, 앗수르라는 거대한 제국이 근동 전체를 삼키고 있었고, 블레셋과 모압 같은 작은 나라들은 동맹을 맺었다가 흩어지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아하스 왕이 죽던 해는 그 요동의 한복판이었습니다. 작은 나라들은 유다에게 손을 내밀었고, 유다는 또다시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 하는 오래된 유혹 앞에 섰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그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어느 편에 서느냐가 아니라, 온 세계를 경영하시는 분을 신뢰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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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은 하나님의 맹세로 시작합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 14:24). 여기서 '경영'이라 옮긴 말은 단순한 구상이나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왕이 신하들과 오래 의논한 끝에 내리는 국가의 결정, 이미 집행이 시작된 확정된 정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의 결심은 사정이 달라지면 함께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경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자기 땅에서 파하시고, 그 멍에를 이스라엘의 어깨에서 벗기시겠다고 하십니다. 멍에는 무게보다 방향이 무서운 물건입니다. 목에 얹히는 순간 언제 걷고 어디로 갈지를 대신 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멍에를 느슨하게 해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아예 꺾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물음으로 단락을 닫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사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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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블레셋을 향한 말씀은 조금 서늘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아하스가 죽었으니 이제 유다는 힘을 잃었고, 자기들의 시대가 왔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그 환호를 착시라고 말합니다.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고, 그 독사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폭군이 물러가면 더 유능한 폭군이 오고, 한 체제가 무너지면 더 정교한 체제가 들어섭니다. 역사는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여러 번 속여 왔습니다. 부러진 막대기를 보고 터뜨리는 환호는 대개 다음 압제의 서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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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디에 서야 합니까. 예언자는 열방의 사신들에게 건넬 대답 한 마디를 미리 준비해 둡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사 14:32). 여기서 '세우셨다'는 말은 건물의 기초를 놓는다는 뜻입니다. 시온은 사람이 쌓아 올린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이 손수 기초를 놓으신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특별합니다. 강한 자도, 준비된 자도, 성공한 자도 아닌 '곤고한 자들'입니다. 피난처란 본래 그런 곳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몸을 숨기는 자리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화려해지는 것과 교회가 피난처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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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5장, 밤이 깁니다. 모압의 두 거점 알과 기르가 하룻밤에 무너지고, 사람들은 산당에 올라가 울고, 머리카락을 밀고 수염을 깎고 굵은 베를 두른 채 지붕에서 광장에서 통곡합니다. 헤스본과 엘르알레의 부르짖음이 멀리 야하스까지 들리고, 무장한 군인들조차 소리를 높이며 속에서 혼이 떨었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심판의 풍경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예언자의 입술이 열립니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사 15:5). 모압이 누구입니까. 발람을 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 이스라엘이 약해질 때마다 국경을 넘어오던 오랜 원수입니다. 마땅히 통쾌해야 할 자리에서 예언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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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사상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예언자들』에서, 예언자란 하나님의 파토스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파토스란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품고 계신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예언자가 우는 것은 그의 성정이 유난히 여려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선포하는 그 입이 곧 울음이 터지는 입이라는 것, 이것이 예언자라는 자리의 이상함이며 동시에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이 눈물은 훗날 한 사람에게서 온전해집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배척한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고(눅 19:41),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못 박는 손들을 향해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심판이 진짜인 것처럼, 눈물도 진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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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 자신을 봅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의 몰락을 기다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선 사람이,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나와 다른 진영의 교회가 무너질 때 우리는 은근히 시원해하고, 그 시원함에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입니다. 화면 너머의 몰락은 너무 멀어서 아프지 않고, 그래서 우리는 쉽게 조롱을 배웁니다. 그러나 본문의 예언자는 원수의 폐허 앞에서 울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우는 것은 죄를 눈감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모압의 교만을 조금도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따뜻한 것, 그것이 예언자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대개 그 반대로 삽니다. 내 편의 죄에는 너그럽고, 남의 사람에게는 냉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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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아주 작은 훈련 하나를 함께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뉴스를 보다가, 혹은 누군가의 소식을 전해 듣다가 마음이 슬며시 시원해지는 순간이 오거든,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추어 그 사람의 이름을 넣어 한 문장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저 사람의 고통 앞에서 제가 웃지 않게 하소서.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우리 안에 굳어 가는 무엇인가를 녹여 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될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이 숨을 곳이 됩니다. 실직한 가장이 부끄럼 없이 앉을 수 있는 자리, 아이를 잃은 부모가 울어도 되는 자리, 외국인 노동자와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 밥 한 끼를 편히 드실 수 있는 자리. 여호와께서 세우신 시온은 크고 높은 건물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 자기 약함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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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무너짐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별이 보이는 시간입니다. 낮의 열기 속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지워진 말들이 흘린 눈물이 별이 되어 반짝인다는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원수를 위해 흘린 예언자의 눈물은 아마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반짝이는 별일 것입니다.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우리 모두가 남의 몰락 앞에서 웃지 않는 사람, 무너지는 자리마다 함께 울어 주는 사람, 그리하여 어두울수록 더 환해지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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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가 매일성경으로 매일 묵상하는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였습니다. 묵상의 여정에 있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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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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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ETeV2-JS4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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