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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5:1-20 부르짖은 자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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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은 받은 대로 갚아 내는 힘의 크기로 세워지지 않고, 불길 한가운데서 제 목마름을 인정하고 부르짖는 입에 하나님이 터뜨려 주시는 샘물로 다시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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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시골집 마당 한켠에는 무쇠로 만든 손펌프가 서 있었습니다. 목이 마르다고 손잡이를 아무리 눌러도 처음에는 헛바람 소리만 납니다. 그때 옆에 받아 둔 물 한 바가지를 펌프의 목구멍에 부어 주어야 비로소 땅 밑의 물이 딸려 올라옵니다. 그 한 바가지를 마중물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중물은 물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이미 깊은 곳을 흐르고 있던 물길과 목마른 사람을 이어 줄 뿐입니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부을 것이 없어서 물을 못 얻는 날이 있다는 것을, 그 무쇠 펌프는 조용히 가르쳐 줍니다.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어지지 못해서 목이 마른 날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른 자리에도 그 한 바가지가 부어지기를, 힘으로 눌러도 올라오지 않던 곳에서 깊은 물이 솟아오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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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앞자락은 온통 불입니다. 곡식 밭이 타고, 한 집이 타고, 사람의 마음이 탑니다. 밀 거두는 계절에 삼손은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안고 아내를 찾아갔지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습니다. 장인이 딸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린 뒤였습니다. 닫힌 문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삿 15:3). 화해의 선물을 들고 갔던 손이 그대로 불을 드는 손이 됩니다. 그런데 이 불의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 뜻밖에도 샘 하나가 솟아오릅니다. 오늘 묵상은 불에서 샘까지 이어지는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불이 먼저 있고 샘이 나중에 있다는 순서가, 오늘 우리가 들여다볼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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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삼백 마리의 꼬리를 둘씩 묶고 그 사이에 홰를 달아 몰아넣자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이 한꺼번에 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불살랐고, 삼손은 다시 그들을 크게 쳤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두 편의 말이 똑같다는 점입니다. 블레셋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삿 15:10) 하고, 삼손은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삿 15:11) 합니다. 하나님의 사사와 하나님의 원수가 한 문장을 나누어 쓰고 있는 것입니다. 되갚음의 불 속에서 사람은 가장 미워하는 상대를 가장 많이 닮아 갑니다. 상대를 이기려고 그의 방식을 빌려 쓰는 순간, 이긴 쪽도 진 쪽도 같은 얼굴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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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은 이내 한 사람에게로 몰립니다. 블레셋이 레히에 진을 치자 유다 사람 삼천 명이 모였는데, 그들이 내려간 곳은 원수의 진영이 아니라 삼손이 숨은 에담 바위 틈이었습니다.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삿 15:11). 원수의 다스림에 길들여진 사람은 자기를 건지러 온 이를 도리어 분란의 원인으로 여깁니다. 한 사람만 묶어 넘기면 모두가 조용해진다는 셈이 새 밧줄 두 가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평온은 샘이 아니라 마른 우물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던 뒷날 대제사장의 셈법이 여기서 벌써 연습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하나뿐입니다. 삼손은 끌려갔고, 주님은 스스로 걸어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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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인 삼손이 레히에 이르자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 임하시고,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떨어집니다. 그는 나귀의 새 턱뼈로 천 명을 쓰러뜨리고 노래합니다.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삿 15:16). 그런데 그 노래 어디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주신 분은 잊히고 받은 힘만 남았습니다. 그는 그곳을 턱뼈의 산이라 이름합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주도권을 쥐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줄에서 그 사람이 물 한 모금이 없어 쓰러질 지경이 됩니다. 천 명을 이긴 힘이 목마름 하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 대목에서 묵상은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가장 강했던 날의 바로 다음 줄에 가장 약한 순간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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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삿 15:18). 이름을 붙이던 입이 마침내 부르짖는 입이 됩니다. 이 기도가 훌륭해서 응답된 것은 아닙니다. 민족의 곤경이 아니라 제 한 몸의 곤경 앞에서 터져 나온 외침이고, 방금까지 자기를 자랑하던 바로 그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마른 땅의 우묵한 곳을 터뜨려 물을 내십니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목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샘의 이름에는 삼손의 공로가 아니라 부르짖음이 새겨졌습니다. 엔학고레, 곧 부르짖은 자의 샘입니다. 하나님은 잘 드린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죽게 된 사람에게 응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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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도 되갚음의 들불 속에 있습니다. 화면 너머로 날마다 분노가 옮겨붙고, 한 사람을 과녁 삼아 모두가 돌을 던진 뒤에야 잠시 조용해집니다. 교회 안의 다툼도 누가 먼저였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저마다 받은 만큼 돌려주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가정에서는 서운한 한마디가 며칠의 침묵으로 돌아오고, 일터에서는 한 번 틀어진 사이가 두고두고 앙갚음의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불을 한 번 더 지피는 것이 아니라, 타는 자리 한가운데서 내가 목마르다고 먼저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 한마디가 마중물입니다. 내가 옳다는 말보다 내가 목마르다는 말이 먼저 나올 때, 막혀 있던 물길이 열립니다. 날마다의 묵상이 우리를 데려가려는 자리도 바로 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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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은 언제나 내가 가진 것 가운데 가장 적은 것이었습니다. 한 바가지로 깊은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까닭은 그 물이 이미 아래에서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음도 그렇습니다. 내 부르짖음이 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흐르고 계신 은혜와 나를 이어 줄 뿐입니다.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고 성경은 적어 두었습니다. 턱뼈의 산이라는 이름은 잊혔어도 부르짖은 자의 샘은 세대를 건너 남았습니다. 사람이 세운 이름은 지워지고 하나님이 응답하신 자리만 남는 것이, 성경이 되풀이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장 마른 자리에도 한 바가지의 고백이 부어져, 마르지 않는 샘이 터져 오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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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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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F60f1yTxv2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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