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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8:21-31 비어 버린 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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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은 빼앗길 수 있는 것들로 마음의 자리를 채우는 데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비워진 자리에서도 여전히 남아 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데서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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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 처음 들어서면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보입니다. 사무실도 가게도 그렇습니다. 어디에 무엇을 두었고 무엇을 손 닿는 자리에 모셔 두었는지가, 말보다 먼저 그이가 무엇을 아끼며 살아왔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런데 남의 집에서는 쉽게 읽히는 그것이 내 집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제 책상을 돌아보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먼지가 앉은 자리, 오래 손대지 않은 책들, 어느새 굳어 버린 말버릇과 글의 틀이 그대로 거기 있습니다. 집은 주인을 숨기지 못합니다. 무엇을 아끼는지가 곧 그 집의 얼굴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펴신 한 분 한 분의 마음의 집에,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평안이 가득히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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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 먼저 보여 주는 것은 텅 비어 버린 방 하나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한 사람의 집, 그 한편에 두었던 신당입니다. 어제까지 그곳에는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해마다 은 열 세겔을 받는 레위인 제사장이 그 앞을 지켰습니다. 미가는 그 방을 보며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그 방이 비었습니다.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삿 18:21). 보통은 가족과 재물을 뒤에 두어 지키는데 그들은 뒤를 비워 두었습니다. 등 뒤에서 쫓아올 사람이 있음을, 자기들이 무엇을 들고 나왔는지를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그 뒤에 남겨진 빈 방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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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미가가 이웃을 불러 모아 뒤를 따라붙습니다. 단 자손은 얼굴을 돌려 시치미를 뗍니다.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뻔히 알면서 묻는 물음입니다. 그러자 미가가 터뜨립니다.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삿 18:24). 이 한마디에 그의 신앙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는 신들을 내가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만들었다고 옮긴 히브리어 동사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심히 좋았다고 할 때 쓰인 바로 그 동사입니다. 창조의 동사가 뒤집힌 것입니다. 지어진 자가 신을 지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 신은 사람의 손에 들려 나갈 수 있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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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픈 것은 그가 부르짖은 방향입니다. 이웃들이 모였다고 옮긴 말은 본래 부르짖다라는 동사의 수동형입니다. 이웃이 스스로 모인 것이 아니라 미가가 불러 모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사는 사사기 내내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쓰이던 말이었습니다. 부르짖음은 본래 하늘을 향해 열린 말이었는데, 미가는 같은 목소리로 사람을 향해, 빼앗긴 신상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잃었다고 느낀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남은 것이 참으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은 이백으로 사서 손수 세운 신이었으니, 다섯 사람의 손에 들려 나가는 것도 그만큼 쉬웠습니다. 빼앗길 수 있는 신은 애초부터 신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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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대답은 협박이었습니다.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삿 18:25). 옳은 사람이 아니라 힘센 사람이 이겼습니다. 미가는 상대가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 줄은 전혀 다른 집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삿 18:31). 참된 하나님의 집은 실로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집을 들고 가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 집을 두고 자기들을 위한 신당을 택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주신 아버지가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그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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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도 하룻밤에 비는 방이 있습니다. 공들인 일이 무너지고, 믿었던 사람이 떠나고, 몸과 살림이 한꺼번에 흔들립니다. 그때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 입에서 나온다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내 마음이 어디에 걸려 있었는지 알려 주는 정직한 발견입니다. 한국교회도 건물과 숫자와 이름난 가문을 오래 의지해 왔습니다. 모이는 예배가 멈추었던 몇 해 전, 많은 이들이 같은 물음을 물었고 그 물음 끝에서 멈추어도 남아 계시는 하나님을 다시 배웠습니다. 그 배움을 이어 주는 것이 아침마다 성경을 펴는 조용한 묵상입니다. 거기서 얻는 것은 손에 들고 나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 누구도 손대어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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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래 이어졌다는 것이 참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본문은 그 신상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단 자손에게 있었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내내 이름 없던 그 제사장이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었다고 마지막에야 밝힙니다. 율법을 받은 할아버지의 손자가 우상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피로 물려지지 않습니다. 저도 제 책상 앞에서 같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오래 해 온 일이라고 해서 바른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모든 절차를 그럭저럭 지키고도 안에 든 것이 미심쩍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익숙해진 것들을 말씀 앞에 다시 놓아 보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길들여진 자리를 흔드는 한 줄을 만나는 일,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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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집은 주인이 무엇에 마음을 두었는지 끝내 숨기지 못합니다. 비어 버린 신당이 미가의 마음을 드러냈듯, 우리 마음의 집도 무엇을 가장 좋은 자리에 두었는지 드러냅니다. 다행인 것은 그 집을 다시 꾸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구를 다 바꾸는 큰 공사가 아니어도 됩니다. 손 닿는 가장 좋은 자리에 무엇을 둘지 다시 정하는 일이면 충분합니다. 신상을 치운 자리에 실로를 향한 작은 문 하나를 내면 됩니다. 오늘 하루 그 문을 열어 두시고, 빼앗길 수 있는 것들이 떠난 자리에 끝까지 남아 계시는 분과 함께 걸으시기를,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의 집이 날마다 조금씩 더 환해지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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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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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10M6nVXc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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