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8-28 대답에 없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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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은 하나님께 받은 대답의 길이로 자라지 않고,
그 대답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알아듣는 귀에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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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장에서 길을 물어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갈림길에 서서 지나가는 어른을 붙들고 묻습니다. 이 길로 가면 읍내가 나옵니까. 어른은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예, 그 길입니다. 그러고는 짐을 고쳐 메고 가 버리십니다. 가까운지 먼지, 중간에 물이 끊긴 자리가 있는지, 어두워지기 전에 닿을 수 있는지는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속이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물은 것이 그것뿐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대개 내가 던진 물음의 크기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벧엘 언덕을 세 번이나 올라가 길을 물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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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만 명이었습니다. 기브아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 앞에서 온 이스라엘이 한 사람처럼 일어섰고, 그 분노는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삿 20:18). 겉으로 보면 흠잡을 데 없는 순서입니다. 칼을 들기 전에 하나님 앞에 섰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그뿐이었습니다. 짧은 말씀 한 마디를 받아 들고 그들은 산을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만 이천 명이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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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입니다. 물었고 대답을 받았는데 졌습니다. 무엇이 빠졌던 것일까요. 사사기의 첫 장을 펴 보면 보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이스라엘은 똑같이 물었고 하나님은 똑같이 유다를 지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뒤에 한 마디가 더 붙어 있었습니다.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삿 1:2). 이번에는 그 한 마디가 없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들여다보면 더 짧습니다. 동사조차 없이 그저 유다가 먼저, 그것뿐입니다. 싸우라는 명령도 없고 이기리라는 약속도 없습니다. 그들은 대답을 들었으나, 대답에 없던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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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들이 물은 만큼만 말씀하셨습니다. 싸울지 말지를 묻지 않았으므로 싸우라 하지 않으셨고, 이겨도 되겠느냐고 묻지 않았으므로 이기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아낌은 인색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정해 놓은 길 위에 당신의 이름을 함부로 얹지 않으십니다. 묻지 않은 것까지 덜컥 약속해 버리셨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속이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약속을 손에 쥔 채 기다리셨습니다. 둘째 날에도 쥐고 계셨고, 사만 명이 쓰러질 때까지 쥐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온 백성이 벧엘에 올라가 앉아서 저물도록 굶고 울며 여쭈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삿 20:28). 그만두는 길까지 물음 안으로 들어온 그날, 하나님은 쥐고 계시던 것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기도는 내 쪽에서 소리를 크게 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쪽의 소리에 내 소리를 맞추어 가는 일입니다. 음이 맞기 전까지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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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지 않으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아들은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 구하시면서도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셨습니다(마 26:39). 말리이까의 자리를 끝까지 열어 둔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 앞에서 아버지는 말을 아끼셨고, 대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롬 8:32). 묵상의 자리에서 우리가 만나는 분은 말을 아끼시는 분이면서 당신 자신은 아끼지 않으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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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해 전, 저는 작은 카페 하나를 손수 고치고 있었습니다. 천장의 구멍을 메우느라 빠다를 여섯 말이나 발랐고, 날마다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때 공사 일지에 이런 문장을 적어 두었습니다. 그냥 되는 법이 없고,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묻고 또 물은 뒤에 선택과 포기를 통과하고서야 마침내 완성된다고. 선택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기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큰 그림을 모르면 아무리 부지런해도 부질없는 수고가 된다는 것도 그때 배웠습니다. 묵상이란 그 큰 그림 앞에 잠시 서 보는 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시작한 일을 멈추는 데 오래 서툴렀습니다. 멈추자는 말이 믿음 없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드리는 기도 가운데 하나를 골라 끝에 한 마디만 붙여 보십시오. 말리이까. 가정의 큰 결정이든 일터의 작은 선택이든, 그만두는 길까지 함께 올려 드릴 때 그 기도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기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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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서 길을 묻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 길로 가면 됩니까, 하고만 묻지 마시고 한 번 더 물어보십시오. 이 길이 맞습니까, 아니면 돌아서야 합니까. 물음이 거기까지 자라면 대답도 거기까지 옵니다. 오늘 묵상하시는 여러분의 짧은 물음이 길어지고, 아껴 두셨던 약속을 때가 되어 손에 쥐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넉넉히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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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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