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25-40 비워진 뼈로 날아오르는 은총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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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육체를 혐오하고 혼인을 금함으로써 스스로의 영적 우월함을 증명하려던 왜곡된 이원론을 직시하고, 고대의 문자를 오늘 내 삶의 가치관을 혁신하는 생생한 음성으로 바꾸어 내는 거룩한 깨어남을 통해, 지나가 버릴 이 세상의 덧없는 기쁨과 슬픔에 얽매이지 않도록 우리 내면을 가볍게 비워 내시어 영원한 자유의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온전히 내어 맡기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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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긴 장마를 예고하듯 잔뜩 습기를 머금은 후텁지근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스치고 지나가는 초여름입니다. 견고해 보이던 일상이 예기치 않은 비바람에 허물어질까 두려워 세상의 썩어질 동아줄을 붙들고 남몰래 한숨짓고 계신 분들, 그리고 내 가치를 내 힘으로 입증해 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팍팍한 강박 속에서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무거운 집착의 짐을 가볍게 비워 내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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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고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영원히 안전할 수 있다고 다그칩니다. 고린도전서 7장 후반부의 풍경은 그토록 헛된 종교적 우월감으로 자신을 치장하려던 고린도 교회의 왜곡된 영성을 향해, 사도 바울이 어떻게 세상의 덧없음을 폭로하며 십자가의 참된 자유를 선포하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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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영은 선하고 육체는 무가치하다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이 깊이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이들은 육체의 본성을 극단적으로 억압하고 혼인마저 금욕하는 것만이 영적으로 가장 고상하고 우월한 길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을 은근히 무시하며, 자신들의 금욕적 실적을 과시하는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혼인 자체를 부정하거나 육체를 혐오해서 독신을 권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시선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의 긴박성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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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바울의 이 장엄한 선언은 세상을 비관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슬픔과 기쁨, 소유와 성취는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그 외형은 지나가는 것이기에, 썩어 없어질 세상의 가치에 우리 인생의 무거운 닻을 내리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슬픔에 영혼이 함몰되거나, 기쁨에 취해 교만해지거나, 물질을 소유했다고 영원한 안전을 보장받은 것처럼 착각하는 세속의 어리석은 집착을 단호히 끊어 내고,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우리 영혼을 온전히 개방하라는 거룩한 자유의 초청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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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지나가는 세상의 껍데기에 목을 매는 우리의 낡은 관성을 깨뜨리고 자유로운 순례자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있습니다.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정민영 선교사는 묵상을 가리켜 번역이라고 정의합니다. 참된 묵상이란 2천 년 전 고대 근동의 문자를 화석처럼 읽어 내는 죽은 독서가 아닙니다. 묵상은 성경에 기록된 과거의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시간으로 번역되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세계관과 가치관을 혁신하고 우리 존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 평생의 여정입니다. 세상의 소유와 관계에 얽매여 무거워진 우리의 마음이 말씀의 빛 아래 고요히 머물 때, 우리를 옥죄던 세속의 두려움은 무너져 내립니다. 그리고 비로소 지나가는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홀가분한 하늘의 언어로 우리의 일상이 실시간 번역되는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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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고린도 교인들처럼 남다른 금욕이나 종교적 헌신으로 내 영적 우월함을 증명하려 피곤한 수고를 거듭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은 덧없이 지나가 버릴 세상의 재물과 쾌락, 인간관계에 집착한 나머지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 짙은 우울과 불안의 감옥에 갇혀 계신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얄팍한 이원론의 핑계 뒤에 숨어 교만하게 굴던 고린도 교인들의 그 남루한 바닥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헛된 집착의 한복판에 찾아오시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의 무거운 정죄와 불안을 남김없이 씻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세상의 소유나 종교적 실적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헛된 기쁨과 슬픔에 매몰되어 비틀거리는 우리의 일상조차 넉넉히 품어 안으시어, 기어코 하늘의 자유를 누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그 압도적이고도 맹렬한 긍휼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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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무거운 신앙 여정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의 비행과 같습니다. 땅을 딛고 사는 짐승들은 강해지기 위해 자신의 뼛속을 묵직한 골수와 지방으로 가득 채웁니다. 세상은 우리에게도 뼛속까지 세속의 소유와 탐욕을 꽉꽉 채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위협합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새는 이륙하기 위해 기어코 자기 뼛속을 텅 비워 내어 가벼운 공기 주머니로 만듭니다. 위대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묶인 무거운 짐승으로 빚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지나가는 세상의 기쁨과 슬픔, 소유에 집착하여 무거워진 우리의 뼈대를 말씀이라는 은총의 바람으로 고요히 비워 내십니다. 우리가 내 것을 움켜쥐려던 헛된 힘을 빼고 주님의 손길에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의 텅 빈 연약함 속으로 성령의 맹렬한 능력이 가득 채워지며, 세상의 어떤 두려움도 얽맬 수 없는 가장 자유롭고도 눈부신 은혜의 창공을 향해 찬연히 날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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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호흡이 짙어지는 이 초여름, 지나가는 세상의 외형에 영혼의 닻을 내리려는 낡은 관성을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말씀이 내 삶을 혁신하도록 실시간의 번역을 이루는 깊은 묵상의 자리에 엎드리며, 헛된 집착을 비워 낸 그 홀가분한 은총의 자유로 곁에 있는 이웃의 짐을 다정하게 나누어 지는 넉넉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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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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